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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규암
시네마 규암
  • e부여신문
  • 승인 2019.11.0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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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현의 부여 역사 산책

필자가 난생 처음 극장에서 영화를 본것은 초등학교 4학년때인 1962년 봄이었다. 선생님의 인솔로 10리 자갈길을 걸어 도착한 ‘규암극장’은 완전 ‘시네마파라디소(시네마천국)’였다.
신라의 불교를 일으킨 순교자 이차돈(異次頓)을 그린 영화였는데 이차돈이 참수를 당할때 목에서 흰피가 나오는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란 기억이 어렴풋이 남는다.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에 다니면서 통학로에 있는 규암극장은 ‘허리우드 키드’의 안방이었다. 그때는 비오는 날이 제일 좋았다. 버스값으로 받은 돈을 아껴 하교길에 규암극장을 들를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해병‘. ’상록수‘. ’빨간 마후라‘ 는 그 시절에 본 방화였다.
그러나 60년대 후반에 들면서 극장가의 풍경도 바뀌는데 바로 외국영화의 대거 수입때문이다. 헐리우드 대형영화사들이 뛰어난 영상과 탄탄한 스토리를 갖춘 초거작들을 내놓게 되니 바야흐로 전쟁. 역사. 성서물의 전성시대 이다.
50년대에 만든 ‘벤 허’. ‘십 계’. ‘쿼바디스’ 와 60년대작 ‘클레오파트라’. ‘천지창조’. ‘지상최대의 작전’같은 스펙타클 대작들이 그 시절 규암극장의 스크린을 거쳐갔다.
이들 영화는 대부분 런닝타임이 3~4시간이 넘지만 여기서는 상영회수를 위해 2시간 이내로 때려 맞추다 보니 중간 중간토막쳐저 줄거리가 헷갈리지만 그 정도 가지고 불만을 드러내면 진정한 영화매니아(?)가 아니다.
그때 극장풍경중 빼놓을수 없는것은 첫날 마지막 상영때 영화가 중반을 지날쯤 되면 극장의 출입문을 모두 개방하는 것이다. 언뜻보면 입장료가 없어 들어오지 못한 관객들을 위한 배려 같지만 실제는 이 맛배기에 감질난 손님들이 이튿날은  돈내고 들어오게 꼬드기는 잔머리(?)가 숨겨져 있다.
또 한가지는 홍보수단이다. 보통 3일을 주기로 영화가 바뀌다보니 포스터를 주변마을에 붙이지만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간판맨을 이용한다. 접이식 판넬에 포스터를 부착하고 이를 짊어진 장정이 징을 치면서 온동네를 돌아다니는 방법인데 최소한 규암면의 모든부락은 물론이요, 인근 은산. 구룡. 장암면까지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닌다. 특이한점은 그분이 듣지 못하는 장애인 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흥행작인 경우는 특별히 차량을 이용한 가두방송을 하는데 택시지붕에 확성기를 올려놓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규암면민 여러분! 오늘도 국가재건사업에 얼마나 노고가....”로 시작하는 상투적인 선전멘트가 온동네를 휘젖는다.
그러면서 달리는 차창밖으로 간간이 전단지를 뿌려대면 그것을 주워 화장지로 사용하려는 시골아이들이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따라가는 진풍경이 가관 이었다.
그 시절 영화의 또 다른 인기장르는 ‘마카로니 웨스턴’으로 불리는 이태리풍 서부극과 ‘느와르’로 통하는 프랑스 범죄영화의 유행이다.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황야. 석양의.... 시리즈’와 ‘아랑 드롱’이 등장하는 ‘태양은. 암흑가....시리즈’가 대표적으로 유명했다.
그렇다고 규암극장이 맨날 영화만 돌린게 아니다. 이근방 유일의 문화공연장이다 보니 연예쇼는 물론 인형극이나 마술. 악단연주회도 가끔 있었는데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이 인형극으로 올려졌고 ‘벤쳐스’ 악단을 본딴 무명의 기타4중주단이 ‘해뜨는 집(House of The Rising Sun)’. ‘상하이 트위스트’ 같은 고난도의 일렉기타 연주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그 시절에 시골청년이 동네처녀를 사귀어 극장구경에 동행할 정도면 그 연애의 절반(?)은 성공인 셈인데 그 바람에 가끔은 엉뚱한 사고가 생기기도 한다.
안타까운 사건은 1962년 5월 일어난 “처녀꾀어 난행 살해“ 사건이다. 극장구경 온 미모의 처녀를 짝사랑한 극장수표원 청년이 그녀를 백마강변으로 유인, 강제로 추행하려다 반항하자 살해하고 강물에 유기한 엽기적인 치정살인극 이었다.
이 때문에 한동안 처녀들의 극장출입을 막으려는 부모와 딸들의 싱강이가 벌어저 수익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
필자가 규암극장에서 마지막 본 영화는 1971년 가을에 상영된 아랑 드롱. 장 가방 주연의 ‘시실리안’이다.
‘장 가방’이 두목인 시실리패밀리에 보석털이전문범 ‘아랑 드롱’이 합세, 기상천외한 솜씨로 크게 한몫 챙기지만 감히 두목의 며느리를 건드리는(?) 바람에 어이없게 총을 맞고 시궁창에 쓰러지는 마지막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 잘생긴 아재가 나오는 영화의 마지막은 늘 허무한 죽음이다. 미남박명(美男薄命)인가?) 반복되는 저음의 하프&기타선율이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과 쓸쓸함을 깔아주는 ‘엔리오 모리꼬네’의 테마뮤직도 귓전에 맴돌고.....
청량한 가을바람이 부는 엊그제 오후, 영사기가 멈춘지 오래인 옛 규암극장 앞을 서성거려 본다.
빗장이 굳게 잠긴 극장안에서는 지금 한창 ‘엘마 번스타인’의 장중한 주제음악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빛바랜 스크린에는 바닷물이 갈라지는 어마무시한 장면이 펼쳐진다. ‘십 계(十戒)’가 한창 상영중이다.
 (부여역사문화연구회 이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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