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08 12:02 (월)
밴드부 유감
밴드부 유감
  • e부여신문
  • 승인 2020.05.06 15: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진현의 부여역사 산책
코넷

 

필자의 고교시절인 70년대초 모교(부여고등학교)의 명물중 하나는 밴드부, 브라스밴드(Brass Band-관악기와 타악기로 구성된 20명 내외의 합주단)였다.

그 당시로는 시골 고등학교에 밴드부가 있는 경우가 이례적인데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수없다.

다만 일제의 황민화(皇民化)정책의 일환으로 1939년 부여에 관페대사(官幣大社)급 신궁(神宮)을 조영하면서 전위대역할을 맡을 총독부 직할의 중견청년수련원(中堅靑年修練院)이 개원되고 해방후 그 자리에 들어선것이 모교이며 수련원의 남겨진 악기로 관악부를 창단해 이어온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어쨌든 60년대말 쯤에는 밴드부의 활약상이 돋보이는데 교내는 물론 지역의 크고작은 행사때 마다 분위기를 돋구는 감초역할을 톡톡히 하는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밴드부의 화려함은 시가행진때 행렬의 선두를 이끄는 일이다. 잘생긴 콘닥타친구의 재치있는 손놀림도 멋지지만 덩치큰 누런빛 금관악기에 트럼펫의 날렵한 선율이 그런데로 어울어지면 그뒤로 교련복차림에 목총을 메고 따르던 우리들 까지 덩달아 신바람이 나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행사도 많았지만 벌렸다하면 꼭 학생을 동원하고 그 선두에는 밴드부가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백제문화제 같은 큰행사에서 주인공은 부여여고에서 뽑은 최고의 미녀, 백제공주(百濟公主)지만 구경꾼들의 눈과 귀를 잡아놓는 일은 단연, 밴드부의 막중한 임무였던 것이다.

그때 신나게 뽑고 나가던 레퍼토리는 2차대전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 ‘콰이강의 다리’ ‘지상최대의 작전’ 주제가나 ‘수자(J.P.Sousa)’의 행진곡시리즈에 ‘워싱턴 광장’ ‘육군 김일병’등 팝과 가요를 넘나드는데 지금 생각해도 어깨춤이 절로나는 명연주시리즈였다.

그러나 이렇게 화려한 명성 뒤에는 꼭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법, 우선 이 밴드부에 들어가는 절차가 극히 비음악적(?)이라는 점이다.

지금과 달리 음향기기나 악기보급이 거의 없던 그시절에 음악적 재질을 갖춘 신입생을 가려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밴드부에 들어가면 공부와는 당분간 담을 쌓아야 된다고 알려져 성큼 나서는 친구가 없다. 천상 연고있는 선배들의 ‘그럴싸한 회유+강압적인 스카우트’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래도 좀 위안이 되는것은 집합이나 작업. 청소등 각종 부역(?)을 면제해주는 특혜였다. 어쨌든 자의반 타의반 이영광의 대열에 합류하면 스파르타식 정신+실기훈련이 뒤따르는 모양인데 제일 중시 하는것은 역시 짬밥 순서이다.

특별한 소질이 없는한, 1학년 처음에는 수자폰. 튜바. 큰북같은 멜로디와는 좀 거리가 먼 덩치큰 악기요, 기합께나 받아가며 2학년을 지나 3학년에 이르면 드디어 트럼펫. 트롬본. 섹스폰등 멜로디형 고난도 악기를 다루게 된다.

내친구 한사람도 그 괜찮은 몸 때문에 수자폰의 주인이 됐는데 ‘성조기여 영원하라(The Stars and Stripes Forever)’가 신나게 나가도 이 친구는 무거운 고물을 짊어지고 음정의 높낮이도 거의없이 그저 북- 북- 울어대며 행렬을 따라 잡느라고 비지땀을 뻘뻘 흘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물론 그 친구는 1.2학년을 잘 버텨내고 3학년에 올라서는 화려한 트럼펫 선율로 뭇 여학생들의 선망을 받던 황금시대를 열게됐지만..... 또한 그시절 밴드부에 얽힌 전설같은 이바구(?)는 연습을 핑계로 악기를 무단 반출하여 일어난 사건들이다. 한적한 마을 뒷동산에 올라 서툰솜씨를 자랑하며 순진한 동네 아가씨들을 꼬드겨 사고(?)를 치거나 수북정에 올라가 폼 잡다가 악기를 강물에 빠뜨리는 어처구니 없는 헤프닝등인데 확인할수는 없다.

좌우간 어찌어찌해서 3학년이 지나고 대망의 졸업을 하게 되는데 그토록 아끼던 분신같은 악기와 이별하는 심정은 오죽했을까. 다만, 아쉬운것은 그 친구들이 전문연주자로 성공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 대신 그때의 낭만과 여유로 지금은 행복한 중년을 보내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부여고등학교 밴드부는 그후 공군군악대 출신의 음악교사 한분이 부임하면서 기량이 일취월장하여 전국대회를 휩쓰는등 전성기를 누린다. 또한 동문으로 육군참모총장에 재임중인 이진삼(李鎭三)장군이 낡은 악기를 새로 바꾸는데 도움을 준일도 밴드부 중흥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90년대 이후부터는 밴드부가 내리막길로 접어드는데 바로 대학입시에 대한 부담감, 연주와 율동을 겸해야하는 신체적 피로, 취미활동의 다양화등이 원인이 된다. 결국 우리의 로망 관악부도 어쩔수 없이 악기를 내려 놓은듯 하다.

끝으로 내평생 수많은 실수중 가장 큰 잘못은 고등학교때 밴드부에 들어가지 못한 일이다.

아차피 공부도 시원치 않은(?) 주제에 그때 밴드부에서 그럭저럭 3년을 견디며 ‘코넷(Cornet)’을 익혔더라면 요즘같은 착찹한 밤, 백마강언덕에 올라 청량한 강바람을 맞으며 ‘타이스의 명상곡(Thais, Meditation)’을 뽑을수 있을텐데.....

밴드부의 친구들이여!

악기는 놓았더라도 음악은 가슴에 영원히 간직하시라.

그러면 그대들의 가슴은 항상 따뜻할 것이다.

Viva Band!

(사족: 코넷은 트럼펫보다 작은 금관악기로 외형과 음색이 비슷하다. 한때는 브라스밴드의 주역였으나 트럼펫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만다. 비록 화려하진 않지만 부드럽고 은은한 음질을 가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이다.

대표적인 음반은 코넷연주가 ‘필립 맥칸(Phillip McCann)’과 ‘성 마틴 아카데미실내악단’이 협연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The world's most beautiful melodies)이다)

*밴드부 전성기에 트럼본주자로 활약하다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후 현재 대흥고등학교에서 후학을 지도하는 이대규 동문께 감사드린다

(부여역사문화연구회 이진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