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배우 박시후와 어머니①
2012-12-20 황규산 발행인
필자는 20여년이 훨씬 넘게 박시후의 집안에 깊은 인연이 있는 추억이 있다. 박시후의 어머니 박영희 여사는 당시 우리 친구들에겐 ‘이쁜 이모’이자 항상 맛있는 음식을 해주시는 구세주였다. 또 아버지 박용훈 씨는 훤칠한 키에 미남으로 늘 우리 친구들 사이에 선망의 대상이었다. 더욱이 당시 부여에서는 보기 힘든 광고모델이라는 특이한 이력 때문에 늘 닮고 싶은 멋진 모습만 보고 동경해 왔다.
어머니 박영희 여사 또한 세련된 외모에 늘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 친구들을 반겼고, 차남 우호 씨는 야구를 하면서 공주중·고등학교를 다닐 적 어머니를 따라 함께 구경도 가곤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머니는 우호 씨의 뒷바라지를 할 때 불고기를 100인분 이상 준비하는 통 큰 모습도 줄곳 보여주곤 했다. 당시 부여에서 최고의 고급 음식점인 ‘매화가든’과 ‘탑골가든’을 운영한 경험으로 직접 운동선수인 아들 우호 씨를 위해 일주일이 멀다하고 승용차 뒷자석과 트렁크에 가득 맛있는 음식을 직접 준비하는 정성으로 공주고 야구부에도 늘 화제가 되곤 했다.
필자가 가장 친했던 친구들은 은산 매화가든을 자주 찾아 이쁜 이모의 빼어난 음식 솜씨에 늘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때 기억으론 평호(박시후의 본명) 씨는 서울에서 미래를 위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머니 박영희 여사는 늘 밝은 웃음과 자상함으로 특히 남에게 베푸는 후한 인심으로 유명했다. 워낙 대대로 이어진 부잣집으로 생활습관이 늘 가까운 지인들과 이웃들에게 나눔의 삶을 살았던 낙천적인 성격이 강했던 기억이다.
하지만 자식들에겐 효와 예절을 중요시 하는 명문가문의 전통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부모님의 영향이 매우 컸기에 고향과 모교에 거액의 장학금을 쾌척할 수 있었으리라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는 우호 씨에 대한 기억이 많다. 우호 씨는 당시 공주중·고등학교에서 야구선수를 하며 마른 체격이었고, 늘 동네 어르신들과 고향에 오면 부모님의 일을 거들고 예의바른 모습이었다. 이 모두가 부모님의 영향으로 지금은 스타가 된 박시후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황 규 산 충남지역신문협회 부회장 21세기부여신문 발행인겸 대표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