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단상] 나는 나 아닌 것들에 의해 살아간다

2013-09-05     21c부여신문
몇해 전 도법스님이 생명평화순례단으로 부여를 지나다가 우리 집에 머무른 적이 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생명’에 대한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도법스님은 “선생님은 선생님의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했다. 나는 얼떨결에 “그렇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스님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 맞았다면서 그렇지 못한 구체적 사례로 “공기 없이 살 수 있는가? 물 없이 살 수 있는가? 태양 없이 살 수 있는가? 지구라는 땅 덩어리 없이 살 수 있는가? 지금 선생님의 생명을 주관하고 있는 것은 선생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선생님의 주변 것들에 의해 결정됩니다.”라고 했다. 순간 나는 이들을 왜 생명평화순례단이라고 했는 지 이해됐다.

나는 생명과 삶의 관계를 ‘한 생명이 탄생해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이 삶이다’라는 것으로 설정해 본다. 생명은 육체적 측면이 강조되고, 삶은 그 육체를 움직이게 하는 정신적 측면이 강조되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스님의 말이 맞다. 공기가 없으면, 물이 없으면, 태양이 없으면, 땅이 없으면 우리는 살 수가 없다. 그런데 이것들은 댓가를 받고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냥 주어진다. 나는 바로 이런 것들을 ‘자연’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내 생명을 주관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자연이다.

그런데 자연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공기는 있으되 숨 쉴 공기가 없다. 물은 있으되 마실 물이 없다. 태양빛은 있으되 자외선이 너무 강하다. 땅은 있으되 주인이 따로 정해져 있다. 이제 돈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자연은 기적적으로 생명을 탄생시켰는데 그 생명들의 일부가 욕심을 내어 내 생명의 주관자인 자연을 파괴하고 다른 생명들을 죽인다. 앞으로는 삶의 질을 위해서가 아니라 숨 쉬고 물 마시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다 벌을 받은 사례로 구약시대에 바벨탑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 바벨탑을 4대강 보에서 보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을 파헤치고, 나무를 뽑고, 모래를 들어내어 시멘트로 포장하고, 물길을 막을 보를 세워 하나님께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은 바벨탑을 무너뜨려 심판했는데 이제 우리에게는 어떤 심판이 있을까? 이미 수많은 징조들이 있는데 아직도 그것을 알아 차리지 못하고 있지나 않는가?

이러한 관계를 삶에 대해 조금 더 확장해보자. 내 삶을 주관하는 것은 나인 것 같지만 ‘누구를 사랑한다, 누구를 만난다, 누구를 미워한다, 누구와 싸웠다, 누구와 대화한다, 누구를 위해서 누구와 여행했다’ 등 온통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내 삶의 주관자인데 바로 나 아닌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나’라는 존재를 가장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너와의 만남’이다. 너와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가 되고 바로 이 ‘우리’가 나의 삶을 주관한다. 가장 소중한 만남은 부모와의 만남이다. 이 만남을 통해 가족이 되고 바로 이 가족이 내 삶을 주관한다. 너와의 만남이 친구가 되고, 이 친구가 내 삶을 주관한다. 너와의 만남이 사회가 되고, 국가가 되고, 지구촌이 된다.

내 삶을 오직 내가 온전하게 주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너를 지워보자. 가족을 지우고, 친구를 지우고, 사회를 지우면 그러고 남은 나는 과연 삶의 의미가 있을까?

요즘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깊은 산속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도 꽤 많다. 이들은 과연 자기 삶을 온전하게 자기가 주관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도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을 이용해서 살 수 밖에 없다. 혼자 사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살아간다. 내 주변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갖추는 것으로 ‘매너’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는 예의범절, 태도, 격식 등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생명의 주관자인 자연에 대해 매너를 지키고, 동시에 내 삶의 주관자인 나 아닌 다른 사람 즉 가족, 친구, 우리사회에 매너를 지키는 것이 진정으로 내 생명을 지키고 내 삶을 지키고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아닐까?


김 대 열
부여여자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