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20년만의 외출
2014-03-06 이규원
1987년 7월 21일 물 폭탄으로 쑥대밭 된 부여군 산야의 수해복구 공사계약은 연말에나 끝날 수 있었고, 새봄이 되어 공사가 시작될 무렵 불시에 감사원에서 3명이나 투입되어 500억원의 복구공사 집행상황을 감시했다.
‘천재지변 상황에다 1987년 대통령선거 전 공사계약을 마치라는 정부지시 때문에 정상적인 행정절차를 거칠 수가 없었다’는 정황을 사실대로 설명하였더니, 그들은 보던 서류 덮고 사업현장 돌아본 후 “그동안 고생하였다”며 어깨 만져주고 돌아가 당시 군수와 재무과장이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1988년도 저물어 가고 700여 개 수해현장도 정리되어 가던 어느 날 공사에 참여했던 대전의 건설업체 吳OO 사장이 다방에서 만나 “업체끼리 상의해서 만든 돈 500만원이다”라고 하며 신문지에 싼 돈 뭉치를 건네기에 “나 감옥에 보낼 작정이냐”며 사정 사정해서 거절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뒤 ‘숙맥 경리계장’으로 소문이 퍼져 오히려 일하기 편했다. 그러나 업체로부터 돈을 한 푼도 안 받은 것은 아니다.
부여에 하나밖에 없는 종합건설업체 ‘삼우건설’에 작은 공사를 수의계약(隨意契約)으로 자주 밀어주고 관내 공공시설 긴급보수 상황이 발생되었을 때 신속 조치할 수 있도록 체계화 시키고 돈이 필요할 때 사장(社長)한테 직접 전화하면 李OO 상무가 사무실로 달려 왔다. 경리계 차석에게 그 돈 맡기며 사장한테 돈 얼마 받았다고 전화로 반드시 배달 완료를 확인하여 주었다.
평소에 경찰, 기자, 보안부대요원 등과 교유(交遊)에 필요한 비용이다. 운전기사들 교통사고 내거나 문제 발생되었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군수 개인 승용차 차량유지 관리비와 군수, 부군수 이삿짐 오고 갈 때마다 예산서에 없는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지금 같으면 감옥 가기 딱 좋은 행위이다.
1988년 연말에 군수까지 난감하게 하는 사건이 읍면에서 터져 어수선하였다. 농가에 지급할 수해보상 명목의 종자대금과 대파보조금 잔액을 반납하지 않고 이장과 분담직원이 결탁하여 허위문서 작성한 것이 입건되고 처벌받는 직원이 속출한 것이다.
1986년 11월 ~ 1989년 1월까지 경리계장 2년 3개월 동안 군수가 3명이나 교체되어 적응하기 바빴다. 대전시 구청장 출신 鄭OO 군수는 회계업무에 밝았지만 실무자들에게 부담주지 않았으며, 내무부 출신 金OO 군수는 호방(豪放)한 성품으로 기업체 사장이 찾아와 공사계약을 청탁하면 경리계장을 불러 사장과 대면시킨 후 사장이 나간 뒤에 가능성 여부를 알아보고 “규정에 맞지 않다”고 하면 “법대로 처리하라”고 확실하게 정리해주어 존경스러웠다.
李OO 군수는 도 회계과장 출신으로 작은 공사는 챙기지 않았지만 대규모 경지정리사업을 경쟁입찰 대신 특정업체를 위한 ‘수의계약’ 숙제를 내주어 회계법령을 펴놓고 계약불가 이유를 설명해 군수의 의지를 꺾어야 하는 경우를 두 번이나 만들어 껄끄러운 관계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융통성 없는 경리계장이 군수와 부군수의 감투를 보호해준 공적을 확인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6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태안군과 당진군에서 경지정리사업을 편법으로 수의계약 해준 것이 감사원 감사에 적발되어 군수, 부군수가 수사를 받았으며 부군수는 옷을 벗어야 하는 비극을 코 앞에서 감상하였기 때문이다.
1989년 1월 李OO 군수는 대전직할시 내무국장으로 영전되고 임봉순 군수가 부임하였을 때 尹二德 행정계장이 당진군 사무관승진요원으로 전출되고 그 자리에 필자가 간다고 소문이 돌았으며 행정계 친구들이 업무 인수할 준비하라고 귀뜸까지 해주는 등 ‘풍선에 바람’ 잔뜩 넣고 있을 때 뚜껑 열어보니 내무과 서무계장으로 좌천(左遷)이었다.
공보실장과 새마을과장으로 두 번이나 모셨으며 가깝게 지내던 송광섭 내무과장한테 대들어 분풀이했지만 “내가 자네하고 같이 근무하고 싶어서 서무계장으로 발령했다”는 군수를 변호하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역사적인 수해복구사업을 2년에 걸쳐 날밤 새어 소리없이 마무리 해낸 보상 대신 엿 먹은 후유증 앓고 있을 때 대전일보 김재규 기자가 ‘다리를 놓아주어’ 1989년 3월 13일 대전직할시로 나갈 수 있었고 ‘고향 부여군 20년 공직’을 청산해야만 했다.
이 규 원 전 부여군 기획감사실장 21세기 부여신문 독자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