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문학의 향기] 공짜는 없다

2014-06-11     이광복
꽤 오랜 세월 출판 업무에 관계했다. 그동안 숱한 잡지와 여러 종류의 단행본을 편집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관여한 책은 역시 문학 관련서 적이었다. 한 시대의 소설가로서 아무튼 직접 책을 기획하고 편집할 수 있다는 것은 크게 축복 받은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잡지든 단행본이든 출판과 연관된 일을 하는 과정에서 더러 황당한 경우를 만날 때가 없지 않았다. 예컨대 누군가가 공짜로 책을 달라고 손을 내밀 때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통상 잡지사나 출판사에는 일정량의 증정본이 있다. 홍보용이나 판촉용 또는 접대용으로 쓰는 신간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 외부 손님이 오시면, 내 재량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스스럼 없이 꼬박꼬박 증정본을 드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었다. 오시는 손님마다 책을 다 안겨 드릴 수는 없고, 내게 할당된 수량 안에서 일종의 예의로서 정중히 증정본을 드릴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할당된 수량이 바닥난 상태에서 꼭 증정본을 드려야 할라치면 내 주머닛 돈으로 상당량의 책을 구입해 필요할 때마다 나눠 드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쪽에서 자발적으로 증정본을 드리기 전에 상대방이 먼저 이것저것 책 좀 달라고 요구할 때에는 입장이 사뭇 난처했다.

개중에는 맡겨놓은 자기 물건 달라는 듯이 배짱 좋게 큰 손을 벌리는 사람까지 있었다. 점잖은 분들은 그렇지 않지만, 일부 비위 좋고 뻔뻔한 사람들의 경우 잡지사나 출판사에 들르면 당연히 책을 얻을 수 있는 것인 양 오인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심지어 주인의 허락도 없이 사무실에 비치된 책을 주섬주섬 가방에 집어넣는 사람까지 있다. 예의도 체면도 없는 그런 사람들 앞에서 과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무튼 우리 사회에는 책을 공짜로 얻어 챙기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다.

하기야 이런 풍조는 수십 년 전부터 지속돼 나왔다. 달리 말하자면, 출판계는 다른 분야에 비해 전통적으로 인심이 후한 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인심이 후하다 해도 남의 회사가 애써 생산한 제품, 마땅히 시중으로 내보내 계속 팔아야 할 상품을 공짜로 달라는 것은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일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책은 공짜로 만들어서 여기 저기 마구잡이로 뿌려대는 광고 선전물이 아니다. 책에는 그 책을 저술한 저작권자의 저작권, 즉 다른 사람이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독창적 노고가 들어 있다. 그 뿐 아니라, 책을 만들려면 상당한 제작비가 투입되고, 그에 못지않은 편집자의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잡지사나 출판사는 책을 대량으로 발행하는 곳이니까 그까짓 책 몇 권쯤 거저 얻을 수 있다고? 그렇지 않다. 천만의 말씀이다.

만약 잡지사나 출판사에서 필요한 책을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의류업체에서 옷 몇 벌 거저 얻고, 식품회사에서 식품 몇 상자 거저 얻고, 주택 건설 전문 업체에서 아파트 몇 채 거저 얻으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럴 경우 의식주를 전부 공짜로 해결할 수 있다. 아니,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차라리 종종 조폐공사나 한국은행에 가서 새로 찍어낸 고액권 몇 뭉치를 공짜로 달라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한편, 필자가 직접 쓴 작품집을 간행한 경우에도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었다. 그 동안 나는 소설집과 장편소설과 교양서적 등 30여 종의 책을 간행했는데, 그때마다 필자는 출판사로부터 저자 몫의 내 저서를 받았다. 어떤 출판사에서는 5권이나 10권, 또 어떤 출판사에서는 20권이나 30권을 저자 몫으로 주었다.

나는 이 책들 역시 보관본 한두 권만 남겨 놓고 대부분 주위의 다른 분들에게 골고루 나눠 드리곤 했다. 하지만 책은 언제나 태부족이었다. 따라서 새 작품집이 나오면 수십 부씩 내 돈으로 구입해 지인들에게 우송했다. 책값도 책값이지만, 발송 작업에다 우송료 또한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그 책에 담긴 내용, 즉 각고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작품 자체의 저작권은 무엇으로도 환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지하철역이며 버스터미널, 백화점, 공원, 등산로 등 시민들이 빈번히 왕래하는 곳에서 시와 시조 등 문학작품을 쉽사리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곳에서는 소설이나 수필 속의 명구(名句) 한 대목을 읽을 수도 있다. 특히 지하철역이나 버스터미널 같은 곳에서 평소 절친하게 지내는 문인들의 작품을 만나면 이만저만 반가운 것이 아니다.

이렇듯 문학의 향기가 우리의 일상 속으로 널리 퍼져 나가는 현상은 적극적으로 권장할 만한 일이다. 문학이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뿌리 내려 모든 이의 정신적 자양분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요컨대 문학의 향기가 사회 각 분야에서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넘칠 때 삶의 질이 한층 높아지는 것은 물론 우리 국민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민족으로 우뚝 설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문인들이 애써 창작한 문예작품을 저작권자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채 임의로 사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어디 그뿐인가. 저작권자 몰래 남의 작품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먹는 경우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이는 움직일 수 없는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려면 최소한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사실 관계 법령을 운위하기에 앞서 우리는 저작권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부터 갖출 줄 알아야 한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예나 지금이나 창작은 여전히 힘들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창작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저작권은 마땅히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남의 작품을 함부로 가져다 쓴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설령 잡지사나 출판사에서 책을 몇 권 거저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법으로 엄격히 보장하고 있는 저작권까지 공짜로 침해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아무리 공짜가 좋다 해도 저작권만은 아무에게나 거저 양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작권에는 공짜가 없다. 만약 누군가의 창작물이 필요할 때에는 반드시 원작자의 동의를 거치는 등 저작권법부터 지켜야 할 것이다.


이광복(소설가ㆍ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ㆍ부여 출생
ㆍ1973년 문화공보부 문예작품 현상모집 장막희곡 입선
ㆍ1974년 『신동아』 논픽션 현상모집 당선
ㆍ1976년 『현대문학』 소설 추천으로 등단
ㆍ19179년 『월간독서』 장편소설 현상모집 당선
ㆍ창작집 『화려한 밀실』『사육제』『겨울여행』『먼 길』『동행』 간행
ㆍ장편소설 『풍랑의 도시』『목신의 마을』『폭설』『술래잡기』『겨울무지개』『바람잡기』『열망』『송주임』『이혼시대(전3권)』『삼국지(전8권)』『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사랑과 운명』『불멸의 혼(계백)』『구름잡기』『안개의 계절』 간행
ㆍ정인호 애국지사 전기 『끝나지 않은 항일투쟁』 간행
ㆍ콩트집 『풍선 속의 여자』『슈퍼맨』 간행
ㆍ전래동화 『에밀레종』 간행
ㆍ항해일지 『태평양을 마당처럼』간행
ㆍ교양서적 『세계는 없다』 『금강경에서 배우는 성공비결 108가지』『천수경에서 배우는 성공비결 108가지』 간행
ㆍ영화대본 『시련과 영광』(국립영상제작소) 『아, 대한민국』(국립영상제작소) 『꼬레야 꼬레야니』(K-TV) 『시베리아 횡단철도』(K-TV) 외 다수
ㆍ동포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조연현문학상, 대통령 표창(2회), 문학저널창작문학상, 한국예총 예술문화상, 노동부장관 표창, PEN문학상 수상
ㆍ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소설가협회 이사, 나누리장학문화재단 이사, 대한민국 명예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