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단상] 역대 학교장 사진
2012-04-05 김대열
우리나라의 오래된 학교는 대체로 일제강점기에 개교를 했거나, 해방 이후에 개교를 했기 때문에 50년에서 8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동안에 그 학교를 거쳐 간 교장선생님 순서대로 아주 빛바랜 사진부터 최근 칼라사진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걸어 놓았다.
얼른 생각하면 그 학교의 역사인 것 같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진들은 학교의 주인이 바로 사진 속 인물들이였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사회를 비판할 때, 집집마다 건물마다 김일성·김정일 사진이 있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까지는 대통령 사진을 공공기관의 전면에 걸어 놨다. 독재를 하는 모든 나라에서는 대통령이나 왕의 사진을 걸어 놓는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곳의 주인은 사진 속의 인물임을 주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학교의 주인이 영정사진처럼 걸려있는 이 사진 속 인물들인가? 이 학교를 거쳐 간 사람들이 이들뿐인가? 생각해보면 도무지 이들 사진이 걸려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고민 끝에 그 이유를 ‘교육법’에서 찾아봤다. 우리나라에는 ‘교육법’이 현재 없다. 1949년 12월 31일 제정되어 50년 동안 한국교육을 규정했던 ‘교육법’은 1998년 3월 1일부터 발효되는 ‘초중등교육법’ 등에 그 역할을 떠넘기고 폐지됐다. 굳이 ‘교육법’을 말하는 이유는 ‘교육법 75조’에 “교사는 교장의 명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라는 조항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교사를 했던 사람들(친일 성향이 많음)이 해방 후에도 계속하여 대한민국의 정식교사로 살았다. 이들 중에는 서른살쯤 교장으로 임용돼 이후 길게는 35년 동안 교장으로 재직한 이도 많았다. 그 자체도 문제려니와 바로 이 조항(교육법 75조)을 이용하여 학교를 자기 왕국으로 만들어 갔다는 것이 문제였다.
“‘교장의 명이 곧 교육이다.”라고 했으니 학교에서 교장의 권력을 무엇으로 견제할 수 있었을까? 한 마디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그들은 자기가 근무했던 자기의 왕국에 자기의 사진을 걸어 내가 잠시 이곳의 주인이었다고 표시하는 것은 그들의 의식으로 너무도 당연하였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많은 이 법과 이 조항을 바꾸기 위해 정말 힘든 노력했고 지금은 “교사는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이제 교사는 교장의 명령으로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법령에 의하여 교육하므로 적어도 법적으로는 교사와 교장이 서로 협력해 교육하는 관계에 이르렀다. 또한 “학교의 주인은 학교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이라고 인식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그 학교를 거쳐 간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일 뿐인 교장의 사진이 걸려있어야 하는가?
그만한 공간에 차라리 그 학교와 관련 있는 사람 중에 귀감이 될 만한 사람의 업적과 사진을 걸어 놓는다면 교육적으로 필요한 것이면서 그 학교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사진은 비단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청사, 읍사무소, 면사무소 심지어 수련원까지 국민과 주민을 주인으로 모시고 섬기겠다던 우리나라 대부분의 관공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은 실제로는 주인 행세를 하고 군림했었다는 증거다.
어떤 문화를 만들기도 힘들지만, 한편 없애기도 힘들다. 민주사회로 가는 지금, 과거 혼란했던 시대에 알게 모르게 군림의 흔적으로 자랑스럽게 걸려있는 기관장 사진들을 거둬치워 없애버려야 한다.
현직 기관장들이 과거의 기관장의 사진을 치우기 곤란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혹여 본인도 가문의 영광으로 그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가문의 영광은 “어떤 자리에 있었느냐”가 아니고 영광이 될 만한 “어떤 일을 했느냐” 이다.
기관장을 하면서 국민을 섬지기 않고 군림했다거나, 학교장이 되어 학생 중심의 학교가 아닌 교장 중심의 학교를 만들었다면 가문의 영광이 아니라 가문의 수치가 될 수도 있다. 오직 학생만 생각하고 봉사하다가 훌훌 털고 흔적 없이 홀연히 떠나는 멋진 학교장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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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 열 부여여자고등학교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