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칼럼] 한약과 간
2012-08-16 임현택
특히, 입으로 섭취한 음식들은 위, 소장 등의 소화 작용을 거쳐 간으로 들어간다. 소화된 음식들이 혈액을 통해 간으로 들어오면, 간의 대사 작용을 통해 신체에 필요한 영양소의 형태로 전환되어 전신으로 공급된다. 반면 요소, 암모니아 등 인체의 노폐물과 독성 물질은 간에서 처리되어 대소변으로 배출된다.
이는 약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복용한 약의 유효 성분은 인체 내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간에서 대사 과정을 거친다. 또한, 약물에서 발생하는 독성 성분은 간에서 해독되어 신체 바깥으로 내보내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간세포가 파괴되거나 간의 여러 기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약인성 간 손상’이라 한다. 만약 간세포가 과다하게 파괴되면 혈액 중에는 AST, ALT 등의 간 효소의 농도가 증가하게 되고,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간 수치’의 증가이다.
즉 ‘간 수치가 높다’는 말은 현재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간세포가 파괴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복용하는 모든 약물은 약의 용량에 따라서, 또는 개인에 따른 특이적인 반응으로 간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약은 어떨까? 한약을 먹어도 간손상이 유발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답은 ‘그럴 수도 있다’다. 한약이든 양약이든, 아니면 일반 음식이라 할지라도 입으로 섭취하는 모든 것은 간의 대사를 거친다. 특히 약은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그 특성 상, 간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한약도 약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구성된 한약재의 종류에 따라, 용량에 따라, 또는 복용한 사람의 개인적 특성에 따라 충분히 간 독성을 유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병원급 의료기관 및 연구소를 통해 한약에 관한 다양한 임상 연구 및 한약투여 임상례의 보고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발표된 많은 연구 결과들을 통해 볼 때, 대개 한약에 의한 약인성 간손상의 비율은 0~0.97% 정도로 보고되고 있다.
이는 일반적인 약인성 간손상의 비율이 1.5% 정도라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한약에 의해 간손상이 유발될 수는 있으나 상대적으로 그 비율이 낮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약으로 사용하는 다빈도 한약재는 통상 150~200여 종이다. 이중 보건복지부에서 고시한 ‘한약재 수급 및 유통관리 규정’에 의해 감수, 부자, 천남성, 파두, 반하 등 약 20여 가지의 한약재가 중독 우려 약물로 지정되어 있다.
한의원 등 한방의료기관에서 독성이 강하거나 복용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한약재는 별도로 보관, 관리하고 있으며, 처방 투여 시에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기준 용량에 맞게 적정량을 사용한다.
또한, 독성을 제거하거나 감소시키고 유용한 효과만을 증대시키기 위한 별도의 포제 및 법제 과정을 거쳐 복용 시 안정성을 확보하고 약효의 발현을 최대화시키고 있다.
분명 한약도 약이다. 그러므로 충분히 간에 부담을 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의사들은 환자의 증상과 체질에 맞게 한약을 처방하며, 약재 하나하나와 처방의 뜻, 그리고 치료원칙에 맞추어 개개인에게 맞는 한약 처방을 하게 된다.
또한, 기존 한약의 안정성, 투약 후의 인체 변화, 양약과 병용 투여 시의 여러 가능성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한약의 효능 뿐 아니라 부작용 및 독성을 철저히 인지하고 안전한 약재 및 복용량을 처방하고 있다.
따라서 한약은 전문 한의사에게 처방받아 안전하게 복용해야 하며 한약을 복용할 때에는 현재 복용 중인 다른 약,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정보 및 간 질환 과거력이나 과민 반응의 유무를 미리 한의사에게 알리는 것과 동시에 복용 후에는 자신의 증상 변화를 처방받은 한의사에게 잘 전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임 현 택 장암보건지소 공중보건한의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