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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백제정신①-계백장군의 패기(grit)
[교육단상] 백제정신①-계백장군의 패기(grit)
  • 최규학
  • 승인 2015.06.09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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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땅과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날 옛 백제 땅에 사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백제 역사가 주는 정신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백제 정신은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지고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백제의 역사적 사실들로부터 비롯된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계백 장군의 패기에서 나타나는 불굴의 정신, 서동 왕자의 슬기로부터 보여지는 창조적 개척 정신, 백제금동대향로의 우수함으로부터 얻어지는 장인 정신, 서산마애불 백제의 미소에서 보여지는 넉넉한 평화 정신 등을 백제정신으로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계백(階伯) 장군은 후세 사람들에 의해 백제의 리더 중 가장 짧게 등장했으나 가장 긴 여운을 남긴 영웅으로 부각되었다. 그는 국가가 어려울 때 자신을 버리고 국가를 택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계백 장군의 성과 이름에 대해 궁금해 하는데,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의하면 계백 장군은 백제 왕족의 후예로 성은 부여 씨이고 이름은 승이라고 한다. 또한 계백(階伯)은 계백의 조상이 백제 왕실로부터 분봉 받은 개백현(皆伯縣)을 말하며 계백(階伯) 씨의 유래가 된 곳이라는 주장도 있다.

계백 장군은 서기 660년 소정방과 김유신의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하여 위기에 처했을 때 결사대 5천명을 이끌고 논산 황산벌에 나아가 김유신이 이끄는 5만 명의 신라군을 상대로 4차례의 전투를 벌여 4번 승리했으나 결국 10:1의 중과 부족으로 장렬하게 전사한 만고의 충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황산벌 전투는 660년 8월 20일에서 21일 사이에 일어났던 1박 2일 간의 짧지만 긴박했던 전투이다. 이 전투는 백제 존망과 신라의 명운이 걸린 전투라는 점, 가잠성 성주로서 김유신을 이긴 적이 있는 계백이 이끄는 5천 명의 소규모 군대와 삼국통일의 영웅이자 신라 명장인 김유신이 이끄는 5만 명의 대군이 싸웠다는 점, 계백은 절박한 상황에서도 나이 어린 화랑 관창을 한 번 살려주는 등 인간적인 관용을 보였으나 김유신은 여유롭고 희망적인 가운데서도 나이 어린 반굴과 관창의 목숨으로 신라군의 분기를 일으키려 했다는 점, 계백이 4전 4승 했으나 결국 패하여 전멸했지만 계백은 영원한 영웅으로 역사에 살아남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우며 생각해 볼 것이 많은 전투이다.

이 결전을 앞두고 계백은 “한 나라의 군사로 당과 신라의 대군을 상대해야 하니 국가의 존망을 알 수 없다. 처자식이 포로로 잡혀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 살아서 모욕을 당하느니 죽는 것이 낫다”며 처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결전의 의지를 다졌다. 이에 대해 권근은 잔인한 방법이라고 비판적 견해를 보였으나 서거정 등은 당시 상황에 따른 계백의 결단력 있는 행동을 우국충정으로 높여 옹호하였다.

또한 계백은 병사들에게 “옛날에 월왕(越王) 구천(句踐)은 5천 명의 군사로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70만 대군을 무찔렀다. 오늘 각자 분전하여 승리를 거두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라”고 격려했다. 전쟁의 승패는 단순히 군사의 숫자에 있지 아니하고 전술과 정신력에 있다는 것을 실 사례를 들어 강조한 명연설이다.

이는 원균의 패전으로 수군이 거의 전멸한 상태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모진 고문 끝에 죽다 살아난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다가 국가 위기를 맞아 다시 통제사가 된 뒤 선조에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장계를 올리고, 일본수군 133척과 싸우게 된 명량해전을 앞두고 병사들에게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必生則死 必死則生)”라고 독전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필자는 오래 전 계백 장군에 관한 기고에서 계백정신을 필사오훈(必死五訓)으로 정리한 바 있다. “필사불척붕, 필사불피충, 필사불배애, 필사불망관, 필사불기용”(죽을 지언정, 친구를 버리지 말라, 충성을 피하지 말라, 사랑을 배반하지 말라, 관용을 잃지 말라, 용기를 버리지 말라.)

계백 장군과 이순신 장군 등 충신들의 애국정신은 오늘 날을 사는 우리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한국인들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애국심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해 20세기 미국의 국민작가로 퓰리처상을 받은 제임스 미치너(James Michener)는 “한국인에게 영원한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나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한국 전쟁에도 참전했으며 「도곡리 철교」라는 작품을 발표했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서문을 써서 출판하게 하고 독후감으로 유명세를 올려 노벨상을 타게 한 작가이기도 하다.

어쨌든 계백은 황산벌 전투에서 패전하여 함께 참전했던 좌평 충상, 달솔 상영 등 20여 명을 제외한 모든 장병과 함께 전사했고, 9일 뒤 백제는 연합군에 항복하고 멸망에 이르게 된다. 이 전투에서 보여준 계백의 정신은 한 마디로 패기(grit)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 심리학자들이 성공한 리더들의 특성을 분석한 결과 첫 번째가 패기(grit)를 가진 것이라고 한다.

패기(覇氣)는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해내려는 굳센 기상이나 정신을 뜻하는 말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여 너무도 쉽게 포기하고 심지어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목숨을 끊어버리는 방식을 택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계백 장군이 보여준 패기와 불굴의 정신을 조금이라도 본 받아 현실 문제에 대응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ㅠ 21c부여신문

최 규 학
부여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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