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③ 초촌면
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③ 초촌면
  • 소종섭
  • 승인 2013.02.0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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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 연재 순서
①외산면
②규암면

부여에는 16개 읍면이 있다. 크기도 다르고 인구도 다르지만 마을마다 각각 특색이 있다. 우리는 같은 부여군에 살면서도 다른 읍면에 있는 문화유산이나 볼거리, 먹거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의 삶에 치여 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이나 정보도 많지 않다. 사랑이 있어야 보인다.

필자는 평소 우리 고장의 인물과 역사,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은 세계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본 자질이라고 주장해왔다. 또 거기에서부터 지역의 새로운 발전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옛 백제의 도읍지로서 찬란한 역사, 문화를 잉태하고 있는 부여는 부여다운, 부여만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지금 일본에서는 역사적 유산의 보존·활용을 통한 마을 만들기 사업이 새로이 각광을 받으며 도시 관광객들을 농촌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부여는 이런 측면에서 다른 지역과 비교해 유리한 점이 많다. 이번 기획이 부여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외산면을 시작으로 각 읍면별로 특색 있는 테마를 소개하는 기획을 시작한다. ‘부여 역사 인물 알기’ 기획에 이은 문화유산, 인물, 먹거리, 볼거리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부여 마을 알기’ 기획이다. 이런 과정에서 ‘마을’ 단위의 새로운 특화 전략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송국리 선사취락지는 초촌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21c부여신문

초촌면은 부여군의 가장 동쪽에 있다. 반은 산지이고 반은 평야 지형이다. 북쪽으로는 공주 탄천, 남으로는 논산 성동·광석면과 접해 있다. 전체 면적의 43%가 농경지이다. 지난해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2천5백79명, 가구수는 1천1백90가구이다. 2백50명의 독거노인이 살고 있고 65세 이상 인구는 8백47명에 달한다.

주로 양송이, 수박, 멜론, 딸기 등 특산물을 생산하는데 특히 친환경 농산물로 유명하다. 1백8농가가 이에 종사하고 있다. 초촌 연화리 출신으로 초촌초등학교 35회, 석성중-부여고(28회)를 졸업한 이영범 면장이 지난 1월 14일 부임하면서 의욕적으로 면정을 펼치고 있다. 이영범 면장은 “고향 출신이라는 데에 더욱 책임감을 느낀다. 열심히 일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초촌’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사적 제 249호로 지정된 송국리 선사취락지이다. 필자가 몇 년 전 재경부여군민회 문화유적 답사를 진행하면서 일행을 이곳으로 안내한 적이 있는데 참가자 70여 명 중에 처음 와본다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부여에 살면서도 이곳에 가보지 않은 부여인이 의외로 많다. 송국리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청동기 시대 유적지이다. 그만큼 유명하고 사학과 학생들은 물론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부여의 이름을 빛내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취락지를 재현해 놓은 모습과 선사취락지 자료관(위), 요령식 동검이 국내 최초로 발굴된 돌널 무덤(아래). 21c부여신문

송국리 역사의 산증인이자 오늘날 송국리를 만든 일등공신으로 송국리 선사취락지 자료관을 지키고 있는 인국환 문화유산해설사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2005년부터 10년 간 5백억 원을 투자해 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라고 전한다. 인 해설사가 故 김학원 前 의원에게 중요한 유적지인데 관심이 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설득해 김 前 의원이 나서서 일을 성사시켰다는 것이다.

전체 27만 평 가운데 16만2천 평이 사적으로 지정되었는데 현재 7만 평에 대해서는 매입이 끝나 발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전면 발굴한 것은 3천 평도 채 안된다. 인 해설사는 “발굴 원형 그대로를 보존해야 한다. 또 단 몇십 평이라도 발굴된 현장 그대로를 일반인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일본 최대의 마을 유적이자 살아 움직이는 고대 유적지로 불리며 연 1백5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요시노가리의 경우를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송국리 선사취락지는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기획한다면 관광객을 훨씬 많이 불러들일 수 있는 생각이 들었다. 인국환 해설사를 만날 때마다 송국리 유적지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절로 느껴진다. 그는 부여의 ‘문화 선구자’ 가운데 한 명이다.

신암리 친환경 마을은 소부리 영농조합법인으로 상징되는 친환경 농산물 생산지로 유명하다. 21c부여신문

송국리 선사취락지와 함께 초촌면에서 최근 주목되는 곳은 ‘부자 마을’ 신암리이다. 친환경 농산물 주 생산지이자 새로운 농촌 발전 모델로도 각광 받는 마을이다. 이명구 소부리친환경마을 사무장은 “소부리 영농법인에 속한 87가구가 딸기, 표고버섯, 잡곡, 모싯잎 등을 생산해 연 35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 생산량 전부를 한살림 생협으로 납품한다. 생산하기 1년 전부터 계약을 마치기 때문에 판로를 걱정하지 않는다. 농민들은 오로지 질 높은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한다”라고 설명했다. 20년 이상 친환경 농작물을 생산한 신뢰성을 인정 받아 한살림 측과 해마다 납품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 받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신암 1,2리와 응평 1~3리, 송현리까지 여섯 개 마을이 농식품부로부터 농촌마을 종합개발 사업지로 선정되어 57억 원을 지원받기로 결정되었다. 유적체험관, 복합문화센터 건립 등이 예정되어 있다. 개발사업이 완료되면 신암리 일대는 한층 살기 좋은 마을, 도시인들이 찾아오는 마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구 사무장은 신암리를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는 마을을 꾸미기 위해 마을 입구에 바람개비를 설치하거나 쓰레기 치우기를 생활화 하고, 건강한 노년을 위해 일출·일몰 전 20분 청마산 올라가기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세탑리에 있는 5층탑. 21c부여신문

산직리 지석묘에서는 해마다 주민들이 풍년 기원제를 올린다. 21c부여신문

초촌면에는 이밖에 충남유형문화재 제21호인 세탑리 오층석탑과 충남 지정 지방기념물 제 40호인 산직리 지석묘에 가볼만 하다. 세탑리 오층석탑은 고려시대 석탑이다. 안내문에는 1층 몸돌에 비해 2층부터 크기가 줄어드는 점이 정림사탑과 닮았다는 설명이 쓰여 있다. 산직리 지석묘는 선사취락지가 평야와 만나는 지점에 있다. 이 때문에 무덤 기능에 더해 일종의 영역 표시 기능까지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나무와 고인돌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탁자식 고인돌과 덮개식 고인돌이 함께 있다. 초촌 주민들은 해마다 3월이면 이 지석묘 앞에서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풍년 기원제를 지낸다.

응평 3리 오평마을에 있는 초대 외무부 장관을 지낸 故 임병직 박사의 생가. 21c부여신문

故 임병직 박사의 추모비. 추모비 글은 소설가인 월탄 박종화가 지었고, 앞면 글씨는 김종필 前 국무총리가, 뒷면 글씨는 서예가 신덕선씨가 썼다. 21c부여신문

초촌이 배출한 인물로는 우선 임병직 박사를 들 수 있다. 응평3리 오평마을에 추모비와 생가가 있다. 조만간 3억 여원을 들여 생가를 제대로 복원할 계획을 갖고 있다. 임병직 박사는 애국지사이다. 1913년 이승만의 주선으로 미국 오하이오 디킨스대학에서 수학했다. 이승만의 비서로 임시정부 구미위원회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1949년 외무부장관, 1951년 주 유엔대사로서 한국의 외교 역량 강화에 힘썼다. 1968년 국토통일원 고문, 1974년 한국반공연맹 이사장 등을 지냈다. 1976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가까이는 진호리 비안동 출신으로 부여·청양 지역 현역 국회의원인 김근태 의원이 초촌을 빛내는 인물로 활약하고 있다. 김 의원은 육군사관학교(30기)를 졸업하고 11사단장, 7군단장, 1군 사령관(육군대장)을 지낸 군인 출신이다.

초평리에는 조선시대 무신인 지계최의 정려가 있다. 그는 선조 때 이괄이 난을 일으키면서 함께 할 것을 권했으나 거절하고 그를 토벌하는데 공을 세운 인물이다. 병자호란 때 수백 명의 적을 베면서 분전했으나 말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지면서 역부족임을 깨닫고 적에게 포위되자 자결했다. 그의 나이 44세였다. 경기도 가평 북면에 있던 정려를 후손들이 이곳으로 옮겼다. 응평리에는 우암 송시열의 사위이자 윤문거의 아들로 명재 윤증과 사촌 간이었던 윤박의 묘가 있다.

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 기획
·21세기 부여신문 공동취재반
·소종섭 시사저널 전 편집국장, 재경부여군민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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