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생들이 상급학교로 진학하고 점차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도 이러한 확산의 모습과 비슷하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진학하면서는 친구들이 흩어지기는 하지만 아직 뭉쳐있는 아이들이 많다.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면 조금 더 다양하게 흩어지고, 대학에 진학할 때는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선택한 학생은 매우 드물 정도이며, 대학 졸업 후 사회에 나갈 때는 정말 상상도 못할 만큼 여러 곳곳에 흩어져 생활한다.
‘확산’은 밀도가 같아지려는 성질에 의한 것이다. 설탕이나 소금 등을 물에 넣으면 물 전체에 그 맛이 배이게 되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한편 카오스이론에 의하면 물속에 떨어뜨린 잉크알갱이가 골고루 흩어진다는 것은 예측할 수 있지만, 잉크알갱이 한 개의 입장에서 볼 때 어느 길을 따라서 어느 위치에 있을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보면 학생들이 점차 성장하여 사회 곳곳으로 퍼져 나가 어딘가에 정착해서 살게 되겠지만, 한 학생의 입장에서 볼 때 어느 경로를 따라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살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교육은 사회구성을 길러내는 과정이다. 하지만 누구를 어디에 쓸지에 대해서 정해놓고 교육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어느 경로를 따라서 어느 위치로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생 자신이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문학교로 갈지, 실업학교로 갈지, 부여에 있는 학교로 갈지 대전에 있는 학교로 갈지 등 학생들은 사회에 나갈 때까지 계속해서 선택하면서 나아간다.
이때 갈림길에서 확신을 가지고 선택하는 학생들이 있는가하면 학생의 생각과 부모의 생각이 다르다거나 경제력의 문제 등으로 선택의 시점에서 갈등하는 학생들이 있다.
나는 이런 학생들을 ‘경계선의 학생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예를 들어 중학교 성적이 상위권에 있는 여학생들은 특별한 생각이 없다면 부여여고에 가서 대학진학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은 아침 일찍 등교하여 9시간 수업을 받고 10시까지 야간자습하는 생활에 대체로 잘 적응한다.
하지만 성적과 상관없이 실업학교에 뜻이 있거나, 중학교 성적이 좋지 않거나,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생활을 못 견딜 것 같은 학생들은 실업학교에 가고 싶을 것이다.
이들 중에 부모의 권유 등의 이유로 자기의 생각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부여여고로 들어온 학생들이 있는데 바로 이들이 ‘경계선의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경계선에 있는 학생들의 심리적 특징은 첫째 ‘내가 처한 현실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므로 내가 잘못되어도 내 탓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심하면 ‘내가 잘못되어 부모님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들은 선생님들의 질책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수긍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나도 내 행동이 잘못된 건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 탓이 아니니 너무 나만 가지고 뭐라 하지 마세요.’하고 있다. 잘못된 행동인 줄 알면서도 심지어 의도적으로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상황을 해결하지 않고 행동만 시정하려고 하면 잘 시정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조금만 귀찮고 힘들면 ‘실업학교에 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하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갖는다. 지금 이 순간 외우고, 풀고, 정리하고, 조사하고, 쓰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실업학교에 갔으면 이렇게 귀찮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 공부를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나와 친한 친구들은 다 실업학교에 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업학교 학생들이 끝났을 5시쯤 되면 머릿속에는 온통 그 친구들이 학교 밖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뛰어노는 모습으로 가득 차 있다.
5시만 되면 집중이 안 되고 머리도 아프고 학교 밖에서 뭔가 할 일이 생각난다. 이쯤 되면 교실에 앉아 집중하여 수업을 듣거나 자습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감옥생활과 같은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문제아나 부적응 학생들의 행동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 행동에 앞서 생각에 문제가 있고 그리고 소통에 문제가 있다. 따라서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하려면 경계선의 학생들에게 맞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부모의 권유가 옳았다는 판단을 갖게 하거나, 이 길을 선택한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하거나, 이 학교에서도 충분히 친한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활동의 기회를 줘서 오랜 시간 학교에 있어도 갑갑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도 안 되면 문제아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학교를 바꿔줘야 한다.
경계선에 있는 학생들의 문제는 학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자신을 다른 사람이나 사회 탓으로 여기고 그들에 대한 응징으로 엽기적인 사건을 저지른 경우를 심심치 않게 접하고 있다. 따라서 ‘경계선의 학생들’과의 소통이 절실히 필요하고 이들에게 동시에 따뜻한 격려와 배려가 필요하다.
![]() 김 대 열 부여여자고등학교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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