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21:55 (수)
[독자기고] 녹간마을 은행나무
[독자기고] 녹간마을 은행나무
  • 조희철
  • 승인 2011.12.22 1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 녹간 마을에는 1500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 320호로 지정된 이 은행나무는 둘레가 9m가 넘고 높이도 35m나 된다. 백제 26대 성왕의 사비천도 무렵 조정좌평 맹씨가 심었다고 하니 700년 백제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대단한 기념물이다. 그러다보니 이 나무에 대한 전설도 주절주절 걸려있어 찾는 이에게 흥미를 더해준다

필자도 고향이 같은 면이지만 동네가 멀리 떨어져있다보니 쉽게 가지질 않는데 지난 5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과 함께하는 백제문화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실로 몇 년 만에 구경을 하게 되었다. 원래 답사 코스에는 없었지만 무량사로 이동하는 도중 갑작스런 제안으로 들르게 된 것이었다. 문화원 관계자가 정구철 내산면장한테 전화를 걸고 면장은 또다시 마을 이장한테 전화를 거는 비상네트워크를 가동하여 마을 이장으로부터 OK사인을 받아냈다. 사전연락 없이 갔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인 것이 좁은 마을 진입로에 농기계나 작업차량이라도 있으면 버스가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은행나무는 동네 한복판 넓은 광장에 우뚝 서 있다. 가지가 잘려나가고 속이 텅빈 흔적이며 버팀목에 힘겹게 기대고 있는 모습에서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神木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모든게 세월 앞에는 속수무책이지만 그래도 원래 기본 풍채가 있던 나무인지라 지금도 제법 넓은 면적의 그늘을 만드는데 문제가 없다. 또한 이리저리 보고 있노라면 처음 가졌던 老木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어느새 그 신령스러움에 동화되어 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

유 교수가 한창 설명을 하고 있는데 노인 한 분이 다가 오셨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들이닥치니 무슨 일인가 하고 오신 모양이었다. 유 교수가 “하실 말씀 있느냐”며 마이크를 건네자 어르신께서는 기다렸다는 듯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 어르신은 은행나무에 대한 유래며, 행단제의 변천 과정, 그리고 보호수로 지정받기 위하여 관청을 찾아다녔던 일 등을 소상히 설명해 주셨다.

바로 이수복 어르신이었는데 일생을 은행나무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산 증인이시니 오죽 설명을 잘 하실까. 모두들 실감나는 설명에 매우 만족해 했다. 당신이 직접 설명하지 않고 마이크를 넘겨준 유 교수의 감각 역시 경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필자의 개인적 생각이지만 이 어르신을 이곳 은행나무 해설사로 채용하면 좋을 것 같다. 마을 원로로서 고향에 대한 자긍심이며 은행나무에 대한 모든 역사를 꿰뚫고 있어 찾아오는 관광객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인 일자리 창출에도 한 몫 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는데 마을 이장이 농막 근처에 차를 멈춰 달라는 부탁을 했다. 어느 틈에 마을 분들이 다과를 준비해 놓았다. 일정이 빡빡했지만 모두 고마운 마음으로 잠시 다과를 즐겼다. 이러쿵 저러쿵 말로 백 번하는 홍보보다 몇 배 강하게 업그레이드 된 부여의 이미지를 녹간마을 분들이 심어주는 순간이었다.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녹간마을이 요즘 한창 활기를 더해 가고 있는 것 같다. 마을 이장을 중심으로 무언가 해 보겠다는 주민들의 의지도 대단한데다 얼마 전에는 대학 총장 출신과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외부인사가 이사를 오기도 했단다. 게다가 최근 농촌생태마을로 선정되는 영광도 안았다. 따라서 올해에는 은행을 모두 수확하여 이 마을에서 생산한 배와 함께 즙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한다.

천년 넘은 천연기념물 은행나무의 은행과 청정지역에서 생산된 배가 결합한 상품이니만큼 그 이름만으로도 절로 건강해질 것 같은 느낌이다. 모쪼록 내 고장을 알리고 발전시키려는 주민들의 노력이 큰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또한 녹간마을만이 가지고 있는 오랜 전통과 예절, 그리고 마을의 순수성이 저 은행나무처럼 오래오래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희철 부여군 문화축제담당 21c부여신문

조희철
부여군 문화축제담당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