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⑥ 양화면
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⑥ 양화면
  • 소종섭
  • 승인 2013.05.23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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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 연재 순서
①외산면
②규암면
③초촌면
④장암면
⑤홍산면

부여에는 16개 읍면이 있다. 크기도 다르고 인구도 다르지만 마을마다 각각 특색이 있다. 우리는 같은 부여군에 살면서도 다른 읍면에 있는 문화유산이나 볼거리, 먹거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의 삶에 치여 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이나 정보도 많지 않다. 사랑이 있어야 보인다.

필자는 평소 우리 고장의 인물과 역사,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은 세계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본 자질이라고 주장해왔다. 또 거기에서부터 지역의 새로운 발전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옛 백제의 도읍지로서 찬란한 역사, 문화를 잉태하고 있는 부여는 부여다운, 부여만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지금 일본에서는 역사적 유산의 보존·활용을 통한 마을 만들기 사업이 새로이 각광을 받으며 도시 관광객들을 농촌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부여는 이런 측면에서 다른 지역과 비교해 유리한 점이 많다. 이번 기획이 부여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외산면을 시작으로 각 읍면별로 특색 있는 테마를 소개하는 기획을 시작한다. ‘부여 역사 인물 알기’ 기획에 이은 문화유산, 인물, 먹거리, 볼거리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부여 마을 알기’ 기획이다. 이런 과정에서 ‘마을’ 단위의 새로운 특화 전략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유왕산 정상에 있는 유왕정과 백제유민정한불망비. 백제유민정한불망비의 글은 김정은 전 군의원이, 노래는 안창호씨가 지었다. 21c부여신문

갓개. 양화면 입포리는 몰라도 ‘갓개’라는 이름은 독자들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갓개포구’는 백제 시대부터 금강의 유명한 포구였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한때는 1천5백여 척의 어선이 드나들며 호황을 누리던 곳이었다.

갓개는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안흥, 장항, 강경과 함께 금강의 4대 포구로 불렸다. 폐가가 된 한때의 어물전만이 그때의 풍경을 그림처럼 떠올리게 하지만 현재 입포리에서 포구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샛강이 없어지면 입포가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어느 고승의 예언처럼 1950년대에 어업조합이 창립되면서 개인 객주의 권한이 사라졌다. 샛강도 입구만 남긴 채 매립되어 택지와 농토로 변하면서 갓개의 영화는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강경 어업조합 입포지소는 1966년에 폐쇄되어 장항수협으로 흡수되었다.

입포라는 이름은 포구의 모양이 삿갓과 같다고 해서 삿갓 ‘입’, 강가라 하여 물가 ‘포’라고 했다고 한다. 또 이 지역을 지나던 한 고승이 포구의 모양이 자신이 쓰고 있던 갓 모양과 같다고 해서 입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는 말도 전한다.

이곳과 관련해서는 ‘갓개 뱃노래’가 전한다. 연평도로 조기잡이를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아내가 불렀다고 전해지는 구슬픈 노래이다.

‘어여디어 어여디엇차
어겨디어 어이기어

칠산 연평 있는 고기는
우리 배 그물로 다 들었구나.
어여디어 어여디엇차
우리 집 서방님은 조기잡이를 갔는데
바람아 광풍아 석달 열흘만 불어라.

어여디어 어여디엇차
배 임자네 아주머니
일년 열두 달 정성을 잘 들여서
칠산 연평도 장원 하였네.
에헤라 어헤헤 어호어 좋다.

어여디어 어여디엇차
어기디어 어이기어’


양화면은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부터 적량면과 홍화면의 이름을 따서 양화면이라고 불렸다. 2012년 12월 31일 현재 12개리, 27개 마을에 1980명이 살고 있다. 추정호 양화면장은 “양화는 벼농사가 중심이다.

금강 하류여서 수자원이 풍부하고 땅이 점질토라 미질이 매우 좋다. 최근 조금씩 소득작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고사리, 매실 등을 재배하는 농가가 생겨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서천군, 익산시와의 경계 지점인 양화면 끝머리에서 (주)금강관광레저가 운영하는 황포돛배나루터. 백마강 수상관광을 일구어가는 현장이다. 21c부여신문

양화는 전라북도 익산, 충남 서천군과 맞닿아 있는데 웅포대교를 건너면 바로 익산이다. 식사를 하러 익산 쪽으로 많이 가는 등 생활권이 부여와는 거리가 있다. 장도 주로 서천 한산장을 많이 다닌다. 외지인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특성화 된 상품이나 먹거리, 볼거리를 개발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외지로의 인구나 돈의 유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주목되는 것이 수상스포츠였다. 하류여서 그런지 양화면 금강의 강폭은 낙화암 앞의 두 배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수면도 잔잔한 편이다. (주)금강수상레저가 황포돛배를 운행하며 익산-부여-서천을 잇는 수상 관광 그리고 수상스키, 제트스키 등을 중심으로 양화를 수상스포츠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치가 수려하고 이러한 잠재력이 있다 보니 최근 들어 외지인들이 땅을 매입하는 경우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변은 평당 20만원을 넘어서고 있다.

양화는 해마다 음력 8월 17일에 거행되는 ‘유왕산 추모제’가 유명하다. 유왕산(留王山)은 서기 660년 나당 연합군 18만 명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뒤 당나라로 끌려가는 의자왕을 비롯한 백제 대신들과 유민들 1만2천8백7명을 떠나보내며 백제 유민들이 통곡했던 곳이다.

유왕산은 백제의 멸망에 따른 전설을 지닌 곳으로 20세기 중반까지 여성들의 반보기 행사 공간이었다. 혼인을 한 부녀자들은 매년 음력 8월 17일에 유왕산에 모여, 친척과 친지들을 반갑게 만나 음식을 나누어 먹고 놀이를 하면서 회포를 풀었다.

금계청년회 독립만세운동 사적비. 21c부여신문

인근에서 모여든 인파로 해발 67미터의 작은 언덕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때에 각종 장사치들이 모여들어 난장이 형성되었다. 아침에 출발해서 반나절 동안 만나고 오후에 되돌아가기 때문에 이것을 반보기라 하였다.

이런 풍습은 금강을 중심으로 충남 남부지방과 전북 북부지방에 널리 전승되었다. 유왕산에서 행해지던 반보기는 1948년에 좌익의 준동을 막기 위해 금지되었다가, 한국전쟁 이후에 전승이 완전 중단되었다.

인근의 충남 서천 남산에도 남산놀이라 하여 이와 비슷한 전설과 세시풍속이 전한다. 이곳은 금강 하구에 위치하여 유민들이 모여 서해로 사라지는 대규모 선단을 마지막으로 눈물로 떠나보냈다는 전설이 있다.

유왕산 추모제는 백제 멸망의 역사적 배경과 반보기의 세시풍속을 바탕으로 하여 1997년 음력 8월 16일∼17일에 향토 축제로 재현되었다. 주로 추모제의 성격을 지닌 행사로서 포로가 된 의자왕 일행이 탄 대규모 선단이 유왕산을 통과하면 강가의 유민들이 상여를 메고 이산의 아픔을 노래와 통곡으로 재현한다. 이때에 백제의 노래인 산유화가(山有花歌)를 부른다. 그리고 유교식 제사, 원혼을 달래는 망자 천도굿도 함께 이루어진다.

양화면 암수리 유왕산에 올라보니 정상에 유왕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백제유민정한불망비(百濟流民情恨不忘碑)’가 세워져 있었다. 1998년 김정은 유왕산추모제 추진위원장이 쓴 글이 비석에 새겨져 있었다.

“…. 백제 의자왕 이십년 여름 …. 나라를 빼앗기고/ 남편과 자식조차/ 만리타국 낯선 땅으로 끌려간/ 팔월 열이렛날/ 금강변 작은 산위에서 마지막 보았던/ 그 서러운 눈빛 지우지 못해/ 눈물 젖은 저고리 앞섶 쥐어뜯으며/ 이 산에 오르길 수백 번….”

양화면 초왕리에는 ‘왕의 영당(旺義影堂)’이 있다. 백촌 김문기 선생을 배향한 곳이다. 그는 조선 세조 2년에 박팽년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아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청사에 빛나는 절의 정신을 보여준 인물이다.

백촌 김문기 선생을 모신 왕의 영당. 21c부여신문

역시 초왕리 인물인 허환 선생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그는 일제시대 금계청년회를 조직하여 야학을 운영하며 애국정신을 고취했고 애국단체인 ‘조선인 친우회’를 결성하여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다가 검거되어 옥사했다.

오량리에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이 있으며 족교리는 한때 한산모시의 원료인 모시 밭이 즐비했던 지역이었다. 원당리는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원당(願堂)이 있었던 것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벽룡리에는 5백년 된 느티나무가 있고 시음리에는 100년이 넘은 팽나무가 있다.

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 기획
·21세기 부여신문 공동취재반
·소종섭 시사저널 전 편집국장
재경부여군민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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