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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⑨ 석성면
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⑨ 석성면
  • 소종섭
  • 승인 2013.07.02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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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 연재 순서
①외산면
②규암면
③초촌면
④장암면
⑤홍산면
⑥양화면
⑦구룡면
⑧내산면

부여에는 16개 읍면이 있다. 크기도 다르고 인구도 다르지만 마을마다 각각 특색이 있다. 우리는 같은 부여군에 살면서도 다른 읍면에 있는 문화유산이나 볼거리, 먹거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의 삶에 치여 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이나 정보도 많지 않다. 사랑이 있어야 보인다.

필자는 평소 우리 고장의 인물과 역사,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은 세계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본 자질이라고 주장해왔다. 또 거기에서부터 지역의 새로운 발전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옛 백제의 도읍지로서 찬란한 역사, 문화를 잉태하고 있는 부여는 부여다운, 부여만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지금 일본에서는 역사적 유산의 보존·활용을 통한 마을 만들기 사업이 새로이 각광을 받으며 도시 관광객들을 농촌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부여는 이런 측면에서 다른 지역과 비교해 유리한 점이 많다. 이번 기획이 부여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외산면을 시작으로 각 읍면별로 특색 있는 테마를 소개하는 기획을 시작한다. ‘부여 역사 인물 알기’ 기획에 이은 문화유산, 인물, 먹거리, 볼거리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부여 마을 알기’ 기획이다. 이런 과정에서 ‘마을’ 단위의 새로운 특화 전략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석성면은 부여군 동부 지역의 관문이다. 대전-부여 간 교통의 요충지로 백제 시대에 진악산현으로 불리다가 신라 문무왕 때는 석산현이라고 불렸다. ‘석성’이라는 이름은 돌로 쌓은 성이 있다는 것에서 유래해 고려 때부터 불려지기 시작했다.

지난 6월 1일 기준으로 3458명이 살고 있다. 석성면 지형은 북서쪽의 산지, 봉황산 구릉지, 석성천 현내천 증산천 연변의 하천충적지대로 구분된다. 석성천 부근은 인근 논산시 성동면과 연결되면서 넓은 논산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석성의 특화 작물은 양송이다. 1964년 3월, 삼원농산이 현재의 타포린 공장 부지에 양송이버섯 재배 시설을 갖추고 미국 등으로 수출을 하면서 양송이 재배가 시작되었다. 석성은 우리나라 최초의 양송이 인공 재배지다. 호황기에는 2천여명의 고용 효과를 보았을 정도로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컸다. 그러나 1981년 미국 수출이 어렵게 되면서 회사가 폐업을 했다.

1990년대 들어와 양송이가 다시 건강식품으로 부각되면서 소비가 늘고 지역에서도 특화 산업으로 육성하면서 부활기를 맞았다. 현재는 부여 지역 양송이 생산량의 80%, 전국 양송이 생산량의 45%를 석성에서 생산하고 있다.

동부여농협, 웅천농협, 신경주농협이 출자해 지난 2011년 4월 26일 설립한 한국머쉬그린조합이 석성에 있는데 지난해 매출액이 3백억원에 이른다. 논산 등으로 권역을 확대해 전국 양송이 생산량의 93%를 점유하는 것이 목표이다. 굿뜨래 양송이는 지난 2009년 지식경제부로부터 양송이 특구로 지정되었다.

석성 동헌. 조선 중기 인조 6년에 만들어졌다. 동헌 뜰에 오래된 탱자나무가 있다. 21c부여신문

옛 석성현은 부여현 임천현 홍산현과 함께 어깨를 맞댔던 역사가 있는 곳이다. 때문에 향교와 동헌이 남아 있다. 석성리에 있는 향교는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36년(인조 14)에 중건하였으며, 1950년에 명륜당을, 1969년에 동재(東齋)를, 1972년에는 대성전(大成殿)을 각각 보수하였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동헌 앞에는 역대 현감들의 공적비가 서 있다. 21c부여신문

석성리 교동마을에는 또 밀양 박씨의 후손인 박만용의 효자문이 있다. 이 지역이 ‘팥죽거리’라고 불리는 유래가 전해 내려온다. ‘박만용이 병석에 누워 계신 부모님이 팥죽이 먹고 싶다고 해여 공주장까지 가서 팥죽을 사가지고 왔다고 한다. 팥죽이 식었나 안 식었나 보기 위해 열어보는 순간 잘못하여 팥죽이 흘러 일대의 땅이 팥죽처럼 붉은 색깔로 변해 지금도 팥죽거리로 불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나라에서 이것을 알고 효행이 지극하다 해서 효자비를 세워주었다’는 아름다운 전설이다.

역시 석성리에 있는 동헌은 1628년(인조 6)에 세워진 건물이다. 과거 석성장이 동헌 앞에서 열렸으나 지금은 흔적만 있을뿐 장은 사라진 지 오래다. 동헌에는 오래된 탱자나무가 있다.

비당리의 중리 소룡골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선돌이 있다. 높이 130cm, 폭 60cm인 남성 성기 모양의 이 돌은 정각사의 말사였던 소룡사터에 있는데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부처바위’라고도 부른다. 전에는 아기 낳기를 원하는 이들이 와서 기도를 하고 가곤 했다고 한다.

이장을 지낸 주민 유기준 씨는 “내가 이장으로 있을 때 이 돌을 잘 모셨다. 석성에 살아도 모르는 이들이 많은데 널리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성기 모양의 선돌. 가끔 아이를 낳기 원하는 이들이 이곳에 와서 정성을 들인다. 21c부여신문

원래 이 선돌은 소룡사지 앞 냇가에 세워져 배를 붙들어 매던 말뚝으로 쓰였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이 선돌을 부처라고 생각하고 믿으면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자손이 귀한 사람들이 와서 빌면 아들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비당리 소반촌 마을에는 5백살 쯤으로 추정되는 팽나무가 있었는데 가보니 지금은 말라죽었다. 역사가 있는 나무여서 주민들이 안타까워했다.

조선 중기 문신 전득우의 묘. 21c부여신문

고려말 조선초의 부윤(府尹:종 2품의 관직)인 전득우 장군의 묘소이다. 세종 9년(1427) 당시 의금부제조에 재직 중이던 아들이 나라에 큰 공을 세워 원종공신이 되었으며, 그 부친에게도 가선대부 한서부윤의 벼슬이 내려졌고 왕이 직접 묘비를 하사하였다.

석성리에 있는 전 문화부장관 정한모 시인의 생가터. 21c부여신문

<전우치전>은 기묘한 도술을 부리던 전우치가 역적으로 몰려 잡혔다가 도망쳐 도술을 이용해 여러 사람을 혼내준 뒤 더 도를 닦기 위해 입산한다는 내용이다.

전득우 묘의 석상. 21c부여신문

전우치와 전득우, 전우치와 부여의 관계를 좀 더 연구한다면 전우치를 소재로 한 재미 있는 스토리를 석성을 중심으로 창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득우의 묘는 묘를 지키는 석상의 강한 디자인과 묘 둘레 호석이 특이했다. 전득우의 묘 아래쪽에는 아들인 전홍의 묘가 있다.

정각리는 정각사가 있기에 생긴 이름이다. 원래 정각리에는 백제시대에 극락사라는 큰 절이 있었다고 한다. 극락사가 창건되고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제가 멸망한 뒤 극락사는 사라지고 현재 절터만 남아 있다.

정각사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 21c부여신문

정각사는 조선시대에 창건되었는데 아담하면서도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었다. 마애불이 있으나 마모가 심해 형태를 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승탑 5기가 있다. 정각사 가는 길에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와 돌배나무도 볼만하다.

현내리에는 석성산성이 있다. 백제 때 관문을 지키던 성이자 백제 부흥군의 거점이기도 했다. 전설에 따르면 백제 멸망 후 군졸들이 정착하여 오래도록 백제의 재건을 꿈꾸며 살다가 한을 품고 죽어간 곳이라고 한다.

정각사 마애삼존불. 마모가 심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다. 21c부여신문

석성에는 다른 면에서 볼 수 없는 장학재단이 있다. 지난 2011년 4월 18일 석성면민 및 출향 인사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나누리 장학문화재단’이 그것이다. 천갑병 전 삼부건설공업 사장이 초대 이사장을 맡았고 지금은 최광룡 재경석성면민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3억원이 넘는 기금을 조성해 석성 지역 초·중·고·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장학 사업은 물론 저소득층 김장비용 지원, 화재 피해 복구 지원, 사랑 나눔 쌀 전달 사업 등을 펼쳐 모범이 되고 있다.

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 기획
·21세기 부여신문 공동취재반
·소종섭 시사저널 전 편집국장
재경부여군민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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