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21:55 (수)
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⑬ 은산면
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⑬ 은산면
  • 소종섭
  • 승인 2013.09.25 09: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순서
①외산면 ②규암면 ③초촌면 ④장암면 ⑤홍산면 ⑥양화면
⑦구룡면 ⑧내산면 ⑨석성면 ⑩임천면 ⑪충화면 ⑫남면·옥산면

부여에는 16개 읍면이 있다. 크기도 다르고 인구도 다르지만 마을마다 각각 특색이 있다. 우리는 같은 부여군에 살면서도 다른 읍면에 있는 문화유산이나 볼거리, 먹거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의 삶에 치여 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이나 정보도 많지 않다. 사랑이 있어야 보인다.

필자는 평소 우리 고장의 인물과 역사,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은 세계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본 자질이라고 주장해왔다. 또 거기에서부터 지역의 새로운 발전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옛 백제의 도읍지로서 찬란한 역사, 문화를 잉태하고 있는 부여는 부여다운, 부여만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지금 일본에서는 역사적 유산의 보존·활용을 통한 마을 만들기 사업이 새로이 각광을 받으며 도시 관광객들을 농촌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부여는 이런 측면에서 다른 지역과 비교해 유리한 점이 많다. 이번 기획이 부여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외산면을 시작으로 각 읍면별로 특색 있는 테마를 소개하는 기획을 시작한다. ‘부여 역사 인물 알기’ 기획에 이은 문화유산, 인물, 먹거리, 볼거리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부여 마을 알기’ 기획이다. 이런 과정에서 ‘마을’ 단위의 새로운 특화 전략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무형문화재 9호 은산 별신제는 복신 장군, 도침대사 등 백제 부흥군의 넋을 기린다. 21c부여신문

은산면을 향해 뻗어 내린 차령산맥은 세 갈래로 나뉜다. 서쪽의 조공산-축융봉-망신산으로 뻗어 내린 능선, 축융봉에서 경둔리·가중리로 내려오는 능선, 청양과 경계를 이루는 나발티 고개에서 은산리 북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이 그것이다.

이처럼 은산면은 외산이나 내산보다는 높지 않으나 전체가 100~300m 높이의 산지를 이루고 있다. 은산천이나 금강천 연변을 따라 평야가 약간 발달했을 뿐이다. 부여 다른 곳보다 농공단지가 활발히 가동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젊은이들이 다른 면보다 많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돌아보다 보면 전체적으로 풍요로운 지역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과거 은산면은 잎담배 재배지로 유명했고 벌치는 집, 뽕밭도 부여군에서 가장 많았다. 요즘에는 밤농사, 포도농사가 활발하다. 이맘때쯤 은산을 지나다보면 도로변에서 포도를 파는 농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방에서 소염·강장·진해·거담제 및 강심제로 이용하는 맥문동 재배도 활발하다.

은산 별신제 - 상당굿 21c부여신문

은산의 정신을 상징하는 것은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된 별신제일 것이다. 백제부흥운동의 지도자였던 복신 장군과 도침 대사 그리고 백제부흥군의 넋을 위로하는 별신제는 부여는 물론 충남을 대표하는 집단제의다. 지금은 전 같지 않지만 과거에는 10여 일에 걸쳐 행사가 행해졌고 인근에서 수만 명이 몰려 쌀 1~2백석이 들어가던 참 규모가 큰 행사였다.

마을 축제이면서 장군제 성격이 더해진 축제이다. 말을 탄 무장들의 행렬이 보이고 축문에서도 중국의 역대 장군들이 등장하고 이순신 임경업 김덕령 등의 이름도 나온다. 이러한 조선시대의 장군 숭배는 후대에 첨가된 것이다. 올해에도 지난 3월 28일부터 4월 1일까지 은산리 일원에서 열렸다.

별신제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 어느 여름에 은산에 몹쓸 돌림병이 돌아 마을 남자들이 하루에도 몇 명씩 죽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한 노인이 꿈을 꾸었는데 늙은 장군이 나타나 자기는 백제의 장군이었는데 전쟁터에서 부하들과 억울하게 죽었다고 하면서 자신과 부하들의 유골이 아직까지 땅바닥에 뒹굴고 있으니 그 뼈를 추려 장사를 지내 주면 돌림병을 없애주겠노라고 했다. 노인이 잠에서 깬 뒤 마을 사람들과 함께 그 장군이 말한 곳으로 달려가 보니 정말로 그곳에는 수많은 유골들이 흩어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유골들을 한 곳에 모아 장사를 지내고 위령제를 지내주었더니 마을에 떠돌던 돌림병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로부터 별신굿이 시작되었다.

은산 별신당 21c부여신문

마을 사람들은 꿈에 나타난 장군이 복신 장군이나 도침 대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복신과 도침이 별신굿의 주신이 된 이유이다.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한 지도자들을 매개로 1400년 전의 백제와 지금의 부여인들이 만나는 것이다. 별신제는 부여 지역에서 전해오는 백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사이다.

별신제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1966년이다. 지난 18일 은산 별신당을 찾았을 때 1990년 만들어진 전수회관 앞에서 우리나라 민속학의 태두인 월산(月山) 임동권 선생의 불망비를 만난 것은 뜻밖이었다. 그가 청양 태생으로 은산초등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별신제 전수회관 앞에 세워진 문학박사 월산 임동권 선생 불망비. 21c부여신문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난 그는 천대받고 멸시받던 우리나라 민속을 학문의 수준으로 높인 위대한 한국인이었다. 그가 부여와 이런 인연이 있었다니! 자료를 찾다가 별신제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까지 겪었던 어려움과 이유를 설명한 임동권 선생의 인터뷰 내용을 읽었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은산은 제가 다녔던 보통학교(초등학교)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저는 중학교를 일본에서 나왔는데 그때 당시 일본에서 열린 축제를 보면서 ‘아, 어릴 때부터 봐 왔던 은산별신제가 독특한 것이구나’라고 생각했죠. 어린 마음에 나는 나중에 저것을 드러내 보여야겠다고 다짐했었어요. 특별히 별신제는 백제 멸망과 관련이 있어요. 백제 유민의 한을 풀어주고, 특히 무주고혼(無主孤魂 : 자손이나 모셔 줄 사람이 없어서 떠돌아다니는 외로운 혼령) 병사들의 넋을 기리는 진혼굿의 의미를 지니는데, 그들의 영혼을 달래줌으로써 마을이 편안하고 무병하게 된다고 믿었던 것이죠. 그런데 무당이 나와 춤추고 노래를 부르니까 사람들은 ‘굿을 하는 사람이 무슨 인간문화재냐?’하며 반대 의견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가 목소리를 좀 높였죠. ‘국립대학 무용과를 나온 무용수만 예술가로 불러야 하나? 자고로 문화재란 그 민족이 가지고 있는 전통 속에서 유·무형의 원형을 찾아가는 게 아니냐?’고 말이죠. 그렇게 설득을 해서 1966년 어렵게 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했습니다."

금공리에 있는 금강사지. 국가 사적 문화재지만 나무와 풀이 무성하다. 21c부여신문

은산면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부터이다. 현 은산면 지역은 조선시대 말기에는 부여군 방생면이었는데 이인도찰방에 딸린 은산역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이 이름을 따 은산면이라고 이름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은산에는 백제 시대의 큰 사찰들이 있었다. 백제시대 부여에는 별처럼 많은 사찰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특히 은산에 있던 금강사 도천사 숭각사는 규모가 만만찮은 사찰들로 백제 왕실을 외호하던 절이었다.

은산농공단지는 활발하게 생산활동을 하며 부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21c부여신문

금강사는 은산 금공리에 있다. 금강천을 따라 청양 쪽으로 가다보면 천변 건너편에 있다. 사적 제435호로 지정되었으나 관리가 거의 안 돼 현장에 가보니 표지판도 잡풀에 가려 있고 사지(寺址)에는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1964년, 1966년 두 차례 걸쳐 발굴하는 과정에서 금강사라는 절 이름이 새겨진 와당편이 수습되어 금강사지임이 확인되었다. 2000평에 달하던 대가람으로 탑·금당·중문의 기단 축토가 판축법에 의해 축성되었음이 처음 확인된 절터 유적이다.

도천사 터는 대양리에 있다. 백제 의자왕의 동생 도천군이 세운 절로 알려진 도천사는 백제 왕실과 관계가 깊은 사찰이다. 대양리에는 현애사 터도 남아 있다.

숭각사지는 각대리에 있다. 한 스님이 마을을 지나다가 산세가 아름다우며 쇠뿔 같은 바위가 솟아 있어 바위를 파서 절 이름을 숭각사라 지었다고 전해 온다. 일제강점기 때 절을 헐어 고란사를 개축하는데 썼다는 말이 있다. 법당 앞에 있던 5층 석탑은 행방을 알 수 없다.

백제컨트리클럽은 많은 이들이 찾는 인기 골프장이다. 21c부여신문

회곡리는 주막이 있던 마을이고 가곡리는 마을 뒷산인 매화봉이 정감록에 전해오는 ‘십승지지(十勝之地) 매화낙지(梅花落地)’라는 전설이 전해 온다. 장벌리 장재울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에 동화제와 탑제를 지낸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전설이 전한다. 하나는 마을에 질병이 극성을 부리자 어떤 사람의 꿈에 탑을 세워 위하면 질병을 막을 수 있다 하여 제를 지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박장군’이라는 총각이 죽자 그의 무덤으로 돌무더기 탑을 세워 제사를 지낸데서 유래한다는 전설이다. 부여 향토유적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장벌리에서는 해마다 탑제와 동화제를 지낸다. 21c부여신문

경둔리는 벡제부흥군이 주둔해 나당연합군에 저항했던 곳이다. 조선 세조 때는 영의정을 지낸 홍윤성이 이곳에 낙향해 살았다고 전해진다. 내지리는 단잡기 놀이가 유명하다. 1995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해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장암 합곡리에서 태어나 조선 성종~명종 때 15년간 정승으로 있었던 상진 선생의 제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폐교된 내지리 합수초등학교 자리에 부여땅 자연미술학교가 생겨 많은 이들이 찾는 새 명소가 되고 있다.

ㅇ 21c부여신문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는 플래카드는 은산면 어디서나 볼 수 있다.(위)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는 은산면민 나아가 부여군민들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아래)

은산은 최근 대양리에 폐기물처리업체가 들어오는 문제와 관련해 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주민들의 반대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부여군의회와 농민단체 등 부여군 전역에서 반대가 거세게 일고 있다. 업체는 주민들을 고소하는 등 장기전에 대비하는 흐름이다. 친환경 농산물로 유명한 굿뜨래 브랜드의 정체성을 살리고 백제역사문화도시로서의 위상을 지켜내기 위해서 폐기물처리장 설치는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는 것이 은산면민을 비롯한 부여군민들 대부분의 생각이다.

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 기획
·21세기 부여신문 공동취재반
·소종섭 시사저널 전 편집국장
재경부여군민회 상임부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