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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⑭ 세도면
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⑭ 세도면
  • 소종섭
  • 승인 2013.10.09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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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순서
①외산면 ②규암면 ③초촌면 ④장암면 ⑤홍산면 ⑥양화면 ⑦구룡면
⑧내산면 ⑨석성면 ⑩임천면 ⑪충화면 ⑫남면·옥산면 ⑬은산면

부여에는 16개 읍면이 있다. 크기도 다르고 인구도 다르지만 마을마다 각각 특색이 있다. 우리는 같은 부여군에 살면서도 다른 읍면에 있는 문화유산이나 볼거리, 먹거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의 삶에 치여 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이나 정보도 많지 않다. 사랑이 있어야 보인다.

필자는 평소 우리 고장의 인물과 역사,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은 세계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본 자질이라고 주장해왔다. 또 거기에서부터 지역의 새로운 발전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옛 백제의 도읍지로서 찬란한 역사, 문화를 잉태하고 있는 부여는 부여다운, 부여만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지금 일본에서는 역사적 유산의 보존·활용을 통한 마을 만들기 사업이 새로이 각광을 받으며 도시 관광객들을 농촌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부여는 이런 측면에서 다른 지역과 비교해 유리한 점이 많다. 이번 기획이 부여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외산면을 시작으로 각 읍면별로 특색 있는 테마를 소개하는 기획을 시작한다. ‘부여 역사 인물 알기’ 기획에 이은 문화유산, 인물, 먹거리, 볼거리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부여 마을 알기’ 기획이다. 이런 과정에서 ‘마을’ 단위의 새로운 특화 전략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세도면은 비옥한 금강변을 중심으로 40여 년 전부터 시설원예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세도면은 특히 방울토마토의 고장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토기(土氣)와 화기(火氣)가 많아 위와 심장에 좋고 항산화제(antioxidant)인 저공해 방울토마토를 재배해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굿뜨래 방울토마토는 부여군 세도면 지역 400여 농가를 중심으로 194ha의 면적에서 재배되고 있다. 연간 1만여톤의 방울토마토가 생산되어 부여군은 방울토마토 국내 생산량의 13%(전국 1위)를 차지한다.

세도면은 전국 최대의 방울토마토 주산지로 25년간의 재배기술 축적을 바탕으로 양액재배가 늘어나고, 포장센터를 설치하여 안전성과 품질향상을 높이고 있다. 세도의 방울토마토는 금강물이 끊임없이 둑에 부딪히면서 쌓인 힘 있고 기름진 토양에서 자라 품질이 뛰어나다. 일조량이 적당한 것도 품질향상에 도움이 되었다. 여기에 농민들의 오랜 노하우가 첨가되어 다른 지역 방울토마토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세도산 방울토마토는 색깔이 진홍색으로 알이 고르고 당도도 높다. 다른 지역 토마토는 당도가 7∼7.5도 정도지만 부여산은 7.5∼8.5도의 수치를 보여 더 단맛이 난다.

세도면은 금강이 장암면과 석성면 사이의 이른바 ‘파진산 협곡’을 빠져 나와 강경읍을 향해 활처럼 굽은 굴곡부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50m정도의 아주 낮은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물맛 좋기로 유명한 등경수는 많은 이들이 줄을 서서 물을 받아간다. 21c부여신문

세도에는 또 유명한 것이 등경수(登慶水·일명 남경생물)라는 천연 암반 약수이다. 동사리 대흥산 덕고개 아래의 암반에서 흘러나오는데 이를 마시기만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전설이 있다. 지난 9월 20일 이곳을 찾았을 때도 주민 5명이 약수물을 받고 있었다. 한 주민이 “물맛이 아주 좋다”라며 마시라고 권해 마셔보니 참으로 그랬다. 내친 김에 한 바가지 약수를 더 마셨다.

겨울이나 여름철에도 수온이 일정하여 일명 냉경수(冷慶水)라 불리기도 한다. 지역 주민들 말에 의하면 조선시대 송사(訟事)가 있을 때나 과거를 보러 갈 때 이 물을 마시고 가면 승소나 급제를 하였다는 전설과 소화불량, 고질병, 습진, 피부병 등도 낫는다는 전설이 내려 오고 있다. 등경수 맞은편 대흥산 덕고개 동남방쪽으로 낙송수(落訟水)라는 샘물이 있었는데 이를 재앙수라 하여 주민들이 땅에 묻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2002년 개발 당시 환경생명기술연구원에 수질검사를 의뢰했는데 대장균, 세균 등 47개 항목에 대하여 100% 합격 판정을 받았다. 유해 성분이 없고 20일간 담아두어도 이끼가 끼지 않고 물맛이 그대로 인 것으로 확인됐다. 인근 익산시와 논산시에 사는 주민들도 이곳에 와 약수를 받아가곤 한다. 특이한 것은 장마철이나 긴 가뭄에도 출수량이 같다. 워낙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니 세도면에서 약수터로 개발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세도면에는 또 나당연합군과 관련 있는 곳이 있다. 대표적인 마을이 반조원리이다. 백제 사비성으로 쳐들어가는 당나라 수군이 금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진을 치고 당나라 왕의 조서를 소정방이 이곳에서 반포했다해서 지명을 반조원(頒詔院)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지형이 곶으로 되어 있어 고다지 또는 고지라고 했다. 고려 때는 이곳에 고다지소가 있었으므로 고다지소라고 불렸으며 나루터가 있었으므로 고다진이라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고다진원 또는 반조원이라고 불렸다.

겸재 정선이 그린 임천고암(林川鼓岩) 21c부여신문

임천고암(林川鼓岩)의 현재 모습. 그림 속 나무인 고다진원(1). 그림 속 오른쪽 정자인 삼의당(三宜堂)터(2) 21c부여신문

반조원리는 또 겸재 정선과 관련이 있다. 겸재 정선의 그림 ‘임천고암(林川鼓岩)’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반조원리이다. 당시 이곳에서 은거 생활을 하던 정선의 삼종질(三從姪) 삼회재(三悔齋) 정오규(鄭五奎)를 찾았다가 그린 것이다. 그림 속에 나오는 선비가 바로 정오규이다. 현재 임천고암은 겸재가 그림을 그렸던 때보다 수위가 훨씬 더 올라와 있다. 그림에는 또 삼의당 터가 나온다. 현재는 삼의당 터 쪽으로 오르는 계단도 3개만 물 위에 드러나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퇴적토 속에 묻혀 있다.

성림사터에 남아 있는 문화재. 21c부여신문

삼의당은 조선 후기 문신인 윤광안(1757~1815)이 말년에 금강 가에 지어 후진을 양성한 곳이다. 정면 8칸에 측면 3칸 규모이며, 1909년 불타 없어져 현재는 8기의 초석만 남아 있다. 삼의당 터 앞 강변에는 200m 가량 버드나무 80~90그루와 느티나무, 팽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늘어서 제방림을 이루고 있다.

간대리에 있는 구경정에서 백마강을 바라보면 경치가 일품이다. 21c부여신문

과거에는 배가 사람을 태우고 세도와 강경을 오가곤 했다. 21c부여신문

또 사산리는 나당군이 사비성을 공격할 때 금강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다 가림성 군사의 복병의 공격을 받아 대파되었다는 사랭이 마을이 있는 곳이다. 당군이 사비성을 점령하고도 오랫동안 주둔했던 지역이다. 미루나무 숲을 만들어 금강의 범람을 막아서 전원지대를 이룩한 곳이기도 하다.

간대2리 다근이 마을은 금강가 마을로 물가에 바위가 많이 있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다그니 나루는 익산 용안면으로 건너가는 나루로 옛날에는 전라도와 충청도가 교류하는 뜻 있는 나루였다. 이곳에는 구경정이 있는데 1931년 뜻 있는 아홉 사람이 돈을 내 정자를 지었다. 오래되고 낡아 2009년 7월, 새로 만들었다. 경치가 아주 수려했고 나루도 복원되어 있었다.

조신 선생을 배향한 동곡서원. 21c부여신문

동사리사지 5층 석탑. 21c부여신문

동사리는 고려 때 회양부사를 지낸 조신을 배향한 동곡서원이 있다. 동사리 폐사지에 있던 5층 석탑은 부여 석목리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다. 청포리에는 지암골이 있는데 아산 현감이었던 토정 이지함이 천지조화가 있어도 이 마을만은 물에 잠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비 오는 날 하룻밤 묵고 갔다 해서 그의 호에 따라 토정이라 부른다.

귀덕리 고인돌. 21c부여신문

귀덕리는 가림성 군사들의 군마 소리가 우렁찼던 지역으로 알려진다. 구전에 따르면 전라도 지방에 잔존했던 마한의 마을국가 군졸들과 가림성의 군사들이 일전을 벌였던 전쟁터라고도 전해진다. 지형이 구덕 즉 대바구니처럼 생겼으므로 구덕 또는 구데비, 변하려 귀덕이 되었다.

세도두레풍장과 산유화가는 충남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21c부여신문

세도는 또 두레풍장(충남유형문화재 28호)과 산유화가(충남 유형문화재 4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수관도 있다. 두레풍장은 공동작업에 앞서 일의 시작을 알리며, 작업 중에는 일꾼들의 피로를 덜게 하고 서로 일손을 맞추어 주는 역할을 하였다. 세도두레놀이가 시작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금강변의 넓은 들판을 중심으로 세도전역에 전해지고 있으며 세도두레풍장보존회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1997년 제3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산유화가는 세도면에 전승되어 오는 일련의 농요이다. 세도면의 농요 중에서 모심는 소리·논매는 소리·벼바심소리·나부질소리·노적소리를 엮어서 ‘산유화가’로 보호하고 있다. 산유화의 명칭은 <증보동국문헌비고>의 백제가곡조와 <단군세기>에도 보이지만, 모심는 소리의 메김 가사에 의거한다.

가회리장군제는 옛날부터 마을의 무병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왔으며, 마을에 호열자(장질부사)가 발생하여 이를 물리치기 위하여 지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가회리장군제는 크고 영험했던 것으로 전해오는데 다른 동네의 장군제는 별 효험이 없었지만 가회리만은 신기하게도 효과가 있어 병이 나았으며, 특히 6·25 전쟁 때는 마을 사람이 한 사람도 죽지 않은 것도 장군제를 지낸 덕이라 믿어오고 있다. 가회리장군제는 1955년을 마지막으로 경제적 사정과 이농현상 등으로 그동안 중단되었던 것을 2002년 마을 주민들이 나서 가회리장군제보존회를 결성하여 복원·부활시켜 전승해 오고 있다. 가회리장군제는 2004년 10월 5일 제45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하였다.

부여인이 꼭 알아야 할 부여의 마을 이야기
·21세기 부여신문 공동취재반
·소종섭 시사저널 전 편집국장, 재경부여군민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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