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박15일 350여㎞, ‘극기’에 도전했다!

휴먼재단서 대학생 155명 선발… 분단 현장을 열정과 패기로 걸어
‘세계의 평화’, ‘젊음은 도전’, ‘도전과 창의’, ‘화합과 단결’, ‘패기와 열정’, ‘불가능은 없다’, ‘희망의 첫 걸음’, ‘새로운 도전’ 등 팍팍 튀는 문구의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걸려 있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플래카드는 ‘도전하지 않는 젊음은 그저 낭비일 뿐이다!’ 젊음과 패기, 열정이 물씬 풍기다 못해 넘쳐나기까지 한다.
지난 8월 10일 15박 16일간 일정을 끝낸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DMZ평화대장정’은 그때 그 순간 패기와 젊음, 열정이 넘쳐나는 현장이었다. DMZ 60주년을 맞아 엄홍길휴먼재단에서 젊은이들에게 안보의식을 고양하고 대한민국 미래의 발전 및 도전과 창의적인 정신을 키우기 위해 기획한 행사였다. 마침 엄홍길휴먼재단 창립 5주년과 맞아 떨어져 성대하게 치러졌다.
참가대상자는 국내외 거주 남녀 대학(원)생으로 제한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에게만 기회를 주기로 한 것이다. 15박 16일 동안 참가비는 무료. ‘먹고 자고 입고’에 드는 모든 경비를 휴먼재단에서 해결했다. 비용으로만 따지면 한 명당 수백만 원이 소요됐다.
최고령과 최연소, 무려 37세 차이
참가자들을 모집하기 위해 전국 130개 대학에 포스터를 붙여 공고를 냈다. 115개 대학 457명이 신청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서류면접을 통해 1차로 200명을 선발했다. 개인면접과 체력테스트로 최종 155명을 뽑았다. 이들과 스태프 25명이 함께 출발했다. 남자 85명, 여자 70명이다.
최고령 55세(1958년생) 대학생도 있었다. 사이버대학생이다. 본업은 대학교수지만 DMZ를 걷고 싶어서 참가하게 됐다고 한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중국 북경대학에서 신청한 학생도 있다. 포스텍에서 총여학생회장을 지낸 여학생도 참가했다. 최연소 참가자는 1995년생. 최고령과 무려 37세 차이다.
모든 참가자들은 도전·희망·평화·열정 4개팀으로 나눴고 각 팀마다 4개조로 총 16개조로 구분했다. 각 조별로 텐트를 치고 침낭 안에서 자며 15박 16일 동안 공동생활을 했다. 하루에 걷는 거리는 짧게는 20km에서 길게는 35km가량 된다.
7월 27일 첫날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발대식을 가진 뒤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로 이동해서 대장정에 들어갔다. 휴전선 155마일은 230km이지만 이들이 철책 따라 걷는 게 아니라 도로를 따라, 때로는 들길과 마을길로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거리가 훨씬 늘어나 15박 16일 동안 총 350km를 걸은 것이다. 또 당초 계획했던 노선이 장마철에 쏟아진 폭우로 유실된 구간이 많아 다소 변경되기도 했다. 실제로 걸은 거리는 400km쯤 된다.
참가자들의 도전의식과 패기, 열정을 느끼기 위해 이틀간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이미 4일간 100km이상 걸은 상태에서 중간에 합류했다. 아침 일찍 이들과 같이 출발하기 위해 전날(7월 31일) 저녁 야영지인 양구 해안중학교로 향했다. 해안중학교로 들어서는 순간 열기가 확 느껴졌다. 젊음의 열기이자 하겠다는 의지의 열기 같았다. 저녁 먹는 장소에서 다들 다리를 절뚝거렸다. 심지어 스틱을 지팡이 삼아 걷는 참가자도 있었다. 운동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100km 이상을 걸었으니 탈이 날 만도 했다.
자원봉사 팀 닥터로 참가한 김승남 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장은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하겠다는 열의에 가득 차 있으나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던 학생들이 갑자기 많이 걸으니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전 원장은 엄홍길휴먼재단 이사로 네팔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봉사를 수차례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은퇴한 사람이 이런 일이나 하지 뭐 다른 할 일이 있나?”며 겸연쩍어했다. 아쉽게도 55세의 최고령 참가자는 전날 개인적인 사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쉴 때마다 양말 벗어 발바닥·다리 어루만져...
이튿날 오전 6시 30분 기상 음악이 들렸다. “일어나~ 일어나~!”란 노래가 학교 운동장에 일제히 울려 퍼졌다. 모두들 일어나 텐트를 걷고 아침을 먹은 후 출발준비를 했다. 준비운동부터 시작했다. 출발 직전 또 한 명의 탈락자가 나왔다. 다리 골절에 이상이 생긴 여학생이 절뚝거리며 돌아갈 채비를 했다. 두 명째다.
오전 8시 일제히 출발이다. 출발할 때는 씩씩하다. 지나치는 마을주민들은 가끔 손을 흔들어 주거나 박수를 치며 학생들을 격려했다. 돌산령터널을 지난다. 무려 3km나 되는 긴 터널이다. 차를 타고 지나갈 땐 금방이더니 걸으니 왜 이리 긴지. 1시간 반쯤 지나서 첫 휴식이다.
학생들은 쉴 때마다 양말을 벗고 물집을 잡든지 다리와 허벅지에 물파스나 맨소래담을 열심히 뿌리거나 바르고 있다. 쉴 때마다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때마다 가장 바쁜 사람은 의료 봉사진으로 참가한 김승남 전 원장과 박성휘 간호사이다.
잠시 쉬는 시간이나 점심·저녁 시간에 틈만 나면 학생들이 찾아온다. 밥 먹자마자 학생들이 찾아와 바로 앞에 으레 줄을 선다. 양말 벗은 땀냄새 나는 발을 손으로 직접 아픈 부위를 어루만지며 정성껏 치료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다. 김 전 원장과 박 간호사는 순전히 자원봉사로 하는 일이다. 정말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을 다니다 참가한 학생과 잠시 인터뷰하기 위해 승용차에 탈 것을 권했다. 그는 “저는 계속 걸어서 가렵니다. 제가 계속 갈 수 있는 의지를 확인하고 싶습니다.”며 완곡히 거절했다. ‘야, 이 정도구나!’ 싶었다. ‘열의가 느껴지는 이유가 역시 있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포스텍 총여학생회장을 지낸 학생이 근육경련이 심해 승용차를 탔다. 그 학생과 자동적으로 인터뷰가 연결됐다. 어떻게 이렇게 긴 대장정에 참가했을까 싶을 정도로 가냘픈 체격이었다.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3년 장혜지 학생. 그녀는 서울대와 연세대에 동시에 합격했으나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포스텍에 입학했다고 했다. “방학 때 딱히 할 일이 없어 대장정에 참가하게 됐어요. 주로 계절학기를 수강하거나 여행으로 보냈는데, 이번에 가장 확실하고 인상적인 방학이 될 것 같아요. 장정 중에는 너무 힘들고 서러워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에요.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멈추고 밀리면 다른 참가자들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 힘들어도 계속 가는 거예요. 혼자라면 못 했을 거예요.”
그녀는 “동료 의식과 배려심, 극기, 인내심 등 배울 점이 매우 많아요. 특히 감사의 마음이 더욱 생겨요.”고 말했다. “대학교 1학년 때 ‘하루 감사하는 마음 5가지 적어 보기’를 해본 적이 있어요. 그때는 5가지조차 제대로 적기 힘들었어요. 지금 여기선 너무 고맙고 적을 게 너무 많아요. 걸을 때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저녁에 일기를 쓰면서 감사의 부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스럽게 느껴졌어요. 옆 친구가 물을 건네줘도 고맙고 을지전망대 올라갈 때 힘들다고 뒤에서 밀어주는 친구가 얼마나 고맙던지….”
그녀는 “힘든 대장정을 해내면서도 매일 저녁 일기를 꼬박꼬박 쓰고 있어요. 힘들어서 땅만 보고 걸을 때는 몰랐는데 차를 타고 가다 보니 주변경관이 너무 좋아요.내 의지로 참가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무슨 상처가 나더라도 결코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정말 의지가 넘쳐 난다. 저 왜소한 체구로 과연 한반도를 동서횡단하는 350여 km를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그녀가 가진 의지만으로는 이미 끝낸 듯했다. 그녀가 새롭게 느낀 동료에 대한 배려심과 극기, 인내심은 큰 수확이었다. 사회 나가서도 큰 도움이 될 듯 싶었다. 그녀는 하루를 쉰 다음날에는 거뜬하게 걷기 시작했다. 전날 스틱을 지팡이 삼아 걷는 상태로 봐서는 쉽지 않아 보였지만 완전 의지로 이긴 것 같았다.

김승남 전 원장·박성휘 간호사 자원봉사
김승남 전 원장도 “자발적으로 참가한 애들이라 하겠다는 의지는 말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전 원장은 “뒤에서 가만히 보면 곧 나한테 올 것 같이 절뚝거리는 애는 오히려 오지 않고 꾹 참고 가더라. 꼭 가야 한다는 의지를 지닌 애들이 매우 많더라,”고 말했다. 김 전 원장은 참가자 중에 가장 연장자다. 그런데 그도 걷고 있다. 차를 타고 갈 수 있는데도 굳이 걸어서 가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이목정대대가 속한 21사단장이 직접 환영사를 했다. “여러분 같은 젊은이가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더욱 밝습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보석입니다. 사서 하는 고생은 자신을 더 강하고 발전적으로 만들 것이라 믿습니다. 제가 3800여 명 동기 중에서 첫 사단장으로 임명됐을 때 결코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던 저의 군 생활이 떠올랐습니다. 굴복과 타협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젊은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이 어떤 도전을 받더라도 저희들은 대한민국을 확실히 지키겠습니다.”
젊은이들의 열정과 열의를 더욱 부추기는 환영사를 했다. 참가자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그렇게 또 하루 지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바쁜 사람은 있다. 김승남 전 원장과 박성휘 간호사다. 밤늦도록 끊임없이 학생들이 찾아온다. 물집을 치료하고 소독한 뒤 밴드로 감싸 주는 작업은 끝이 없다. 밤 10시 넘어서까지 계속됐다.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다음날 아침이 다시 찾아왔다. 또 걸어야 한다. 힘든 마음이 서서히 든다. 아니 힘들기 이전에 지겨워지려고 한다. 하지만 젊은 청춘들은 힘차게 시작한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재학 중인 임도원군을 만났다. 임군은 부산 한국과학영재학교를 나온 인재였다. 화학과 1학년을 다니다 공고를 보고 참가하게 됐다고 한다. “평소 등산을 좋아하고 힘든 일을 통해 극기하는 과정을 즐겼어요. 신문에 광고가 났을 때 ‘아! 이거다’ 싶었죠. 매일 걷는 게 힘은 들지만 정신적으로나 마음은 매우 편해요. 여태 머리만 썼는데 머리는 쉬고 몸만 쓰니 더 힘이 나요. 가끔은 사람이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아침 되면 배낭 싸고 걷고 밥 먹고 자고 일어나는 반복되는 생활이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너무 편해요. 하지만 군인들이 지키는 남북 분단의 현장을 보면 가슴이 아파요. 빨리 통일이 돼야 할 것 같아요. 인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화학적 반응에 대해 연구를 계속해서 인간생활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고 싶어요. 저 같은 젊은이들에게는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고요.”
역시 젊은이다운 패기와 도전정신을 갖고 있는 학생이다. 대장정에 참가해서 이런 정신이 생겼는지, 원래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곳에 있는 젊은이들 모두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 보인다.
한국외대 전자공학과 3년 손별양도 발목 부상이 심해 승용차에서 인터뷰를 했다. “대학교 다니면서 마라톤대회 7km에 신청해서 뛴 적이 있어요. 기록이 만족스러워 그런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어 참가하게 됐어요. 첫날은 설레는 기분이었으나 갈수록 너무 힘들어 울고 싶을 정도였어요. 너무 힘들어 아예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으니까요. 참가한 학생들이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끝까지 완주할 거예요.”
밀레·삼성 등 적극 후원
이 젊은 청춘들을 이끄는 힘이 무엇일까? 잠시 쉴 때 모두들 양말을 벗고 발목과 발바닥, 다리를 만지고 있다. 붕대나 밴드를 붙이지 않은 학생들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이들이 끝까지 걷고 있다. 감동이 밀려온다. 정말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이 이들만 같다면 미래가 밝을 것이다.
그렇게 꼬박 이틀을 걷고 빠졌다. 한편으로 시원하고 한편으론 섭섭했다. 더 이상 걷지 않는 건 시원한 거고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짊어질 젊은 청춘들과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건 못내 아쉬웠다. 이들은 더 이상의 낙오자 없이 14박 15일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고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완주식을 성대하게 가졌다.
엄홍길 대장은 이 행사를 엄홍길휴먼재단의 정기행사로 매년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사들의 반응도 매우 고무적이라고 전했다. 점차 자리가 잡히면 가장 모범을 보인 남녀대표 한 명씩을 선발해, 휴먼재단이 설립하고 있는 네팔 학교 준공식이나 기공식 때 데리고 가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엄 대장은 “DMZ평화대장정을 계기로 젊은이들의 도전의식과 패기·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더욱 밝고, 수년 내 세계 선진대열에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자료제공=엄홍길 휴먼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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