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설업계의 師表’

이날 추모식에는 삼부그룹 조남욱·남원·남립 회장과 조시연 삼부건설공업(주) 사장, 조성연 삼부토건 전무, 남주희 숙정재단 이사장, 임창빈 삼부건설공업(주) 부회장, 천갑병 전 사장, 정진우 전 삼부토건 사장 및 전 임원, 정해길 삼부토건 사장 및 임직원을 비롯해 부여지역에서 김성환 회장, 조길연 부여중·고등학교 총동창회장, 이정규 전 군의원, 21세기 부여신문 황규산 대표, 이종관 장암면장, 최영문 백제중학교장 등 1백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에 앞서 조남욱 회장과 가족들은 선친의 선영에 추모제를 올리고, 정해길 사장의 약력보고, 정진우 전 사장의 추모사, 박홍근 관리본부장으로부터 추모시 낭독에 이어 헌화가 이어졌다.
유족을 대표해 삼부그룹 조남욱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선친께서는 항상 근면하시고 책임감이 강한 분이셨다”라고 말문을 열면서 “일화로 경남지역 현장에 내려가셨을 때, 갑자기 나를 내려오라하여 황급히 달려가보니 위·장출혈에 복막염으로 이어지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업무를 챙기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라고 회고했다.
조 회장은 “지금 우리 삼부토건이 국내 건설 경기악화와 경기침체 등 악재가 겹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보다는 대한민국 건설업면허 1호로서 너무 나태하고 시대흐름에 뒤쳐진 것이 사실이기에 전 임직원이 총회장님의 숭고한 기업이념을 받들어 100년 기업을 만들어 국가에 이바지하자”고 힘주어 말했다.
고 숙재 조정구 회장은 1914년 10월 29일 부여군 장암면 석동리에서 출생, 1936년 경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후 1948년 3월까지 12년간 경기도 내무국 회계과에서 공직생활을 해오다, 일제 강점 후 정부수립 이후 고위공직의 추천을 사양하고 1948년 4월 국내 건설업 1호인 삼부토건사를 설립 사장에 취임했다.
1963년 제5대 대한건설협회 회장에 취임해 1975년 2월 제10대까지 6선을 연임했으며, 6선 임기가 끝나자마자 대한건설협회 종신 명예회장에 추대되며 대한건설협회 역사에 ‘영원한 회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대한건설협회 회장 재임 시기인 1963년 11월 공사보증을 현찰로 함으로써 열악한 건설업 종사들의 숙원사업이었던 보증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일념으로 건설공제조합을 설립하여 국내 건설업계의 진정한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1967년 11월 국내 건설업계의 더 큰 발전을 위한 우수한 인력 양성의 필요성을 깨닫고 현재 건설기술훈련원의 전신인 건설기능공양성소를 설립하면서 건설기술 인재 양성의 기초를 마련했다. 1964년 9월 아세아 서태평양지역 건설업자협회연합회(IFAWPCA) 5차 대회를 한국에 유치 한국 대표 단장으로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주도하며 한국건설의 해외시장 개척에 토대를 구축했다.
1968년 3월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인 서울~인천간 경인고속도로 공사에 경인개발주식회사를 설립, 민자로 참여 기계화 시공 정착의 변화를 일으켰고, 반포지구 매립공사, 일괄투입공법을 통한 잠실지구 공유수면매립공사를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했다.
1973년 6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페탈링자이간 제2연방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하여 그 당시 단일 공사로는 최대로, 국가 수주목표 초과달성 기여와 삼부의 해외공사의 첫 발을 내딛었으며, 1975년 3월 민간 건설업체 25개사로 구성된 해외건설주식회사(KOCC) 발족과 1976년 9월 해외건설협회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해 중동 신화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갔다.
특히, 1962년 4월에는 각별한 애향심과 인재 양성에 큰 뜻을 가지고 학교법인 백제학원을 인수하여 후학 양성의 요람으로 명문학원을 만들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1979년 1월 4일 삼부토건(주) 회장 취임, 4월 경주 도뀨호텔 설립, 1983년 2월 삼부그룹 회장 취임, 1988년 7월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을 설립하면서 한국 관광산업 발전에도 공헌을 했다.
1981년 3월 25일에는 제11대 국회의원에 당선 정계에 입문해 국회 경제과학위원회 위원, 건설부 정책자문위원으로 서민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는 의정활동을 펼쳤고, 1983년 2월 3일 한국 국민당 전당대회 의장을 역임했다. 1989년 1월 31일 혼인 60주년을 맞아 회혼례를 가졌고, 1991년 11월 대한민국 헌정회 고문에 취임했으며, 1993년 10월 25일 향년 80세로 영면했다.
상훈으로는 1963년 동탑산업훈장,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 건설 공로로 철탑산업훈장, 1979년 3월 해외진출 유공업체로 대통령 최고 표창인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으며, 1982년 12월 네팔 국왕으로부터 ‘코르카 닥시나 바후’ 훈장을 수상했다.

영면 후에도 1994년 4월 고향 주민들이 고인의 공덕을 기리고자 고향 마을에 송덕비를 건립했고, 2006년 5월에는 권위 있는 미국의 클리브랜드주립대학교 도시정책대학원으로부터 한국건설업계의 사표인 고인에게 명예 ‘도시공학박사’ 학위가 추서됐으며, 그해 10월 25일 13주기를 기해 1966년 성균관 임천향교에서 고인에게 효자 찬양문을 포양한 바, 이를 기리는 효자비를 부여군 임천면 만사리에 건립하여 제막했다.
또한, 2007년 7월 25일 대한건설단체 총연합회로부터 건설인 일동 명의의 ‘자랑스러운 건설인’ 패를 추서받았고, 2008년 10월 10일 한·뉴질랜드협회 창립 40주년 기념식에서 1968년~1972년까지 초대 협회장을 지내며 양국의 우호 증진에 이바지한 공헌으로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감사패가 추서됐다.

생전에도 효심이 지극했던 고 조정구 회장의 뒤를 이어 조남욱·남원·남립 형제도 재계에서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애가 매우 두터운 기업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또한 조남욱 회장의 자녀 조시연 사장과 조성연 전무도 극진한 효심으로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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