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학교에서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커피드립세트를 학교로 가지고 왔다. 학생들에게 원두커피콩을 갈아보라고 했더니 너무 좋아했다. 손잡이를 잡고 돌릴 때 콩이 갈아지는 느낌이 아주 좋다고 했다. 봉지커피를 바로 타서 마시는 것보다 내가 뭔가 만든다는 그런 즐거움을 느낀 것 같았다.
갓 볶은 커피는 물을 부을 때 발효가 잘 되어 거품이 많이 나지만 볶은 지 오래되면 거품도 잘 나지 않고 고소한 맛보다는 쓴맛이 많이 난다. 학생들은 거름종이 속에 들어있는 커피가루에 물을 부을 때 부풀어 오르는 거품을 보면서 함성을 지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기다린다. 자연스럽게 느린 음식, 만들어 먹는 음식 교육이 되고 있다.
하루에 한두 번 내려 먹던 커피를 수업시간마다 내리다 보니 볶은 원두커피 값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고민하다가 생두를 사서 직접 볶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에서 생두를 사려고 봤더니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브라질, 칠레, 케냐, 코스타리카 등 정말 여러 나라에서 생산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나라 것인지 어떻게 맛이 다른 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른다.
볶은 원두의 오분의 일 가격으로 생두를 구입할 수 있다. 볶는 방법에 대해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었다. 팝콘기계를 이용해 볶았는데 신맛이 났다. 연한 갈색이었는데 덜 볶은 것이었다. 다음에는 쓴맛이 났다. 아주 진한 갈색이었는데 너무 많이 볶은 것이었다. 지금은 학생들이 선생님 원두 볶는 솜씨가 날로 발전한다고 칭찬한다. 이제는 매주 월요일 아침에 커피를 볶는다. 일주일 먹을 양을 볶는 것이다.
커피 마시는 것을 모든 학생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커피향은 대부분이 좋아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커피내리는 것을 못 마땅하게 말하는 학생은 아직 없다. 보통 한 반에 30명이지만 커피는 15잔 정도 타면 좋다. 먹지 않는 아이들도 있고 또 짝이랑 조금씩 나눠 마시는 재미도 있다.
처음에는 종이컵을 사용했는데 돈도 많이 들고 낭비인 것 같아서 지금은 50ml 비커를 사용하는데 과학실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하루에 5번 정도 커피를 내리지만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마시는 것이 고작이라 커피 중독이나 몸에 해롭다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나는 좋은 커피콩을 구별할 줄 모르고 또 아직 커피맛과 향과 색을 구별할 줄 모르기 때문에 내가 내리는 커피의 맛과 향이 아주 좋은 상태인지는 모른다. 대체로 인터넷을 통해 구입하고 구입한 그 상태에서 바로 볶고 분쇄해서 내리는데 향이 고소한 것은 느끼지만 쓴맛이 있어 항상 고민이다. 아무튼 쓴맛을 없애기 위해서 내린 커피에 끊는 물을 많이 넣어 희석시켜 마신다.
완전 생초보인 줄도 모르고 내가 커피내리는 것을 보는 학생들은 바리스타 같다면서 멋있다고 한다. “네가 한번 물을 부어봐라” 하면서 주전자를 건네주면 물 붓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운지 손을 덜덜 떨면서 따른다. 웃긴다.
점심 시간에는 물리실이 커피숍이 된다. 물론 돈 받는 일은 없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자기들이 분업을 해서 커피를 내리는데 요즘은 제법 내 입맛에 잘 맞춘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이거 마시고 오후에 졸지 말고 공부하자.”는 입바른 얘기도 하고, 잡담하고, 수다 떨고, 군것질 하고 놀다가 간다. 이제는 내가 옆에 있어도 의식하지 않고 자기들의 언어로 말을 할 정도가 되었다. 나는 그런 분위기가 좋다. 그런 자유스런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기 때문에 불편하지도 않다.
“마스코바도”라는 설탕이 있다. 다 자란 사탕수수를 수확하여 압착기에 넣고 즙을 짜낸 후 큰 통에서 오랜 시간동안 끓이면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넓은 판자에서 완전히 말리면서 곱게 분쇄하여 만든 가공하지 않은 설탕이다. 나는 필리핀에서 제조한 이 마스코바도 설탕을 공정무역을 통해 구입하여 쓰고 있다.
원두커피를 내려 희석시키지 않은 상태를 “에스프레소”라 하고 유럽 사람들은 주로 이렇게 마신다. 하지만 이렇게 마시면 너무 쓰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은 물에 희석시켜 마시는데 이것을 “아메리카노”라 한다. 에스프레소에 우유거품을 넣으면 카푸치노, 크림을 올리면 비엔나커피, 그냥 우유만 넣으면 카페라떼, 초코시럽과 우유와 크림을 넣으면 카페모카, 카라멜시럽을 넣으면 카라멜 마끼아또가 된다. 학생들은 원두커피를 내리고 뜨거운 물로 희석시킨 후 마스코바도 설탕을 적당히 타서 비커에 따라준 커피를 “물리실 커피”라고 부른다.
![]() 김 대 열 부여여자고등학교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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