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물난리 나던 해 있었던 일들
[독자기고] 물난리 나던 해 있었던 일들
  • 이규원
  • 승인 2014.01.16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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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체험6>

부여군 공보계장을 3년 가까이 독점 하느라 진력(盡力)이 나 있던 1985년 여름, 사적관리사무소 탄생소식으로 계장급 인사이동이 예상되어 정경택 군수에게 ‘교체해 줄 것을 간청’하고, 공보실장 이었던 송광섭 새마을과장이 끌어줘서 새마을계장으로 갈 수 있었다.

이때부터는 월급도 제대로 각시한테 던져 줄 수 있고, 밤에는 책도 읽을 수 있었다. 회고(回顧)하면 37년 공직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1년2개월이었다. 그때 새마을과에는 전희훈 개발계장과 전상덕 국토관리계장이 있었다.

1986년 말 정필모 신임군수 때 경리계장 교체 건이 발생, 비교적 젊은 나이(40살)에 그 자리를 채우게 되어 주변을 놀라게 하였다. 서열을 철저하게 따질 때 라 계장 승진 4년 만에 경리계장은 파격 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군수가 조카벌인 윤이덕 감사계장에게 은밀히 지시하여 추천토록 한 결과였다.

경리계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관용승용차 실과 배정’과 ‘겨울철 난방보일러 운영개선’이었다. 승용차는 6대가 있었는데 매일 아침 10개 실과로부터 신청 받아 배정하면 탈락한 4개과는 날마다 불만이고 과장까지 나서서 아쉬운 소리 하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개선책으로 차량 1대에 2개과씩 묶어 고정 배치하고 조율하여 신청토록 했더니 하루아침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겨울철 난방보일러는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 찔끔 들어오다 말아 항상 추워서 불만이었다. 보일러 기사를 불러 가동시간과 벙커C유 소비량을 대조해보니 ‘가동시간 조작 흔적이 발견되어’ 장부를 회수하여 말석 직원에게 넘기고 가동시간과 벙커C유 지출 결과를 일일 결재토록 했더니 그날 이후 하루 종일 와이셔스 차림으로 일 할 수 있었다.

1987년 7월 21일 새벽부터 퍼부은 603mm의 물 폭탄으로 산천이 무너지고 45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되어 공황 상태였으나, 순발력 있는 피해상황보고와 선거를 목전에 둔 정부 의 이해가 융합되어 복구사업비와 피해보상비가 국비로 반영될 수 있었다.

부여군 1년 전체예산이 200억 원 일 때, 피해보상비 이외로 500억 원의 수해복구 토목사업비는 엄청난 것이었으며, 700여개소의 사업을 연말 안에 착공하라는 정부의 몰아붙이기 지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충청남도 차출 인력까지 투입된 설계측량단을 실은 승용차(운전기사 강예수)가 홍산에서 남면으로 이동하다 논으로 굴러 자동차가 종이처럼 구겨지고, 탑승자 6명 중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되어, 대전시 직원 36세 전용만 씨는 척추가 부러져 하반신마비 장애자가 되어 치료하러 미국까지 가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부상 공무원들의 충분한 보상과 운전기사 처벌수위를 낮추기 위하여 서울에 있는 보험협회와 경찰서등 관계기관으로 뛰어다닐 때 경찰서 교통조사팀 친구(신수강)가 적극 협조해주어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토목기사들이 작성해준 시방서 1매를 가지고 시간 절약을 위해 미리 3개 업체끼리 조를 만들어 입찰에 참가토록 하는 편법을 동원, 하루에 20여건씩 입찰을 집행해도 1개월이 걸렸다. 공사를 맡을 업체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지시 ‘연말 안에 착공완료’를 이행하기 위하여 입찰 후에 설계도를 붙이는 응급 조치만이 살길이었다.

1987년말 제13대 대통령선거일을 앞두고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수해지역 시찰 왔다가 주민들한테 곤욕을 당하는 일이 있었고, 신민주공화당 후보 JP가 위문 왔을 때는 군수도 부군수도 정략적으로 자리를 비워 재무과장 쇼파에서 JP가 송광섭 내무과장한테 수해피해 브리핑 받을 때 군청 앞에 갑자기 나타난 군용헬기가 착륙과 이륙을 반복하며 내는 소음으로 브리핑을 방해하여 분노를 사기도 하였다. 전두환(全斗煥)정부와 민정당의 교묘한 탄압이었다. 그때 민정당 부여지구당 핵심멤버들 지금도 고개세우고 지역에서 행세하고 있다.

12월 16일 밤에는 13대 대통령선거 개표작업이 군청 대회의실에서 있었다. 윤이덕 예산계장과 함께 개표 최종집계반에 배치되어 ‘집계 결과를 확인 후 선거관리위원장에게 넘겨 발표하게 하는’ 업무를 담당했는데, 부여군의 집계결과 JP 52.659표(74%), 노태우 11.171표, 김영삼 3.482표, 김대중 3.729표로 JP가 1위 이었다.

그러나 선거일 하루 전에 ‘JP가 출마를 포기했다’는 KBS, MBC의 허위보도(분노한 군민들이 민정당사무실 습격했음) 등 정부와 민정당의 끈질기고, 다양한 공작정치로 전국 개표결과는 노태우후보가 828만표로 당선되고, 김영삼 633만표, 김대중 611만표, JP 182만표로 끝이었다. 그 업보는 김대업을 앞세운 병풍조작으로 이회창을 넘어트린 양아치들의 서식처 제공이었다.

ㅐ 21c부여신문

이 규 원
전 부여군 기획감사실장
21세기 부여신문 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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