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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
  • 21c부여신문
  • 승인 2012.01.17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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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궁남지(宮南池) : 사적 제135호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1세기 부여신문에서는 창간 7주년을 맞이해 1400여년 전 찬란했던 사비백제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우리 고장 문화재를 찾아 국립부여박물관과 공동으로 기획하여 소개하기로 했다.
-편집자 주-


부여 궁남지 전경. 21c부여신문

조선시대의 정궁(正宮) 경복궁 안에는 향원지(香遠池)의 연못과 연못 한가운데의 작은 동산 위에 나무로 만든 구름다리가 연결돼 있는 정육각형 평면의 정자 향원정(香遠亭)이 있다. 오색 단청의 향원정과 구름다리가 연못 속에 잠겨들면 한 폭의 동양화와 같다.

이와 같은 연못과 정자가 백제 사비시기에도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부여의 궁남지(宮南池)이다. 궁남지는 우리나라 궁원지(宮苑池)로는 가장 오래된 연못으로 연못 안 중앙부에는 포룡정의 정자와 나무로 만든 다리가 놓여 있다. 백제 무왕(서동요)과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와의 사랑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목제 조각품. 21c부여신문

궁남지는 백제시대의 별궁(別宮)의 연못으로,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 35년조(634년)에 『3월에 궁의 남쪽을 파고 20여리 밖에서 물을 끌어들여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어서 방장선산을 모방하였다.』와 39년조(638년)에는 『봄 3월에 왕과 비빈들이 함께 못에 배를 타고 놀았다.』라는 기록을 통해 실제로 연못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연못이 ‘궁남지’라고 여겨진다. 연못의 이름은 『궁의 남쪽에 연못을 팠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후대에 ‘궁남지’라고 불렀다. 궁남지는 지금도 ‘마래못’, ‘마래방죽’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의 ‘마’는 ‘서여(薯蕷)’를 가르키는 말로서 무왕의 어렸을 때 이름 ‘서동(薯童)’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현재 궁남지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현 연못을 발굴조사한 결과 연못의 위치는 원래의 위치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또한 연못의 규모도 지금보다 훨씬 거대했으나 새로이 복원 정비된 연못은 기존의 연못보다 크게 줄었다고 여겨진다.

발굴 조사에서도 연못 주변에 백제시대의 별궁의 건물터로 추정되는 초석과 대리석을 팔각형으로 쌓아 만든 우물 등 유구 일부가 확인됐고, 주변에서는 도랑, 논, 수전 유구 등이 조사됐다.
연꽃무늬전돌. 21c부여신문

유물은 백제시대의 토기조각과 기와조각, 연꽃무늬 전돌, 나무로 만든 새조각품, 목간(木簡), 짚신 등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출토돼 당시 사비시대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별궁別宮:궁성 밖에 마련된 왕의 거처
목간木簡:글을 기록한 나무판재

한 봉 규 국립부여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국립청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 21c부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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