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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장미재배의 장인을 꿈꾸며 성공적 영농정착
[기획] 장미재배의 장인을 꿈꾸며 성공적 영농정착
  • 황규산 발행인
  • 승인 2014.05.14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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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성은 농가(세도장미연구회·작목반)
21세기 부여신문에서는 전국 제1의 농업군을 자랑하면서 ‘굿뜨래’ 브랜드이자 명품 농산물로 인정받고 있는 ‘굿뜨래 8미’를 중심으로 품목별 최고의 농가, 시범 농가, 작목반 등을 찾아 기획으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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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은 씨가 처음 귀농을 결심한 것은 채소 유통에 뛰어들고 부터였다. 아버지는 시설하우스에서 애호박을 재배하고 계셨다. 아버지의 애호박은 품질이 좋았지만 작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보며 신성은 씨는 아버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연이은 시설채소 실패로 아버지께서 장미 재배를 결심하면서 가족 모두가 시설원예하우스가 많은 부여군 세도면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세도면 청포리는 토질이 좋은 평지가 펼쳐져 있고 지하수가 풍부해 시설원예하우스 최적지이다. 장미를 키우시던 아버지는 20대 후반의 젊은 아들에게 귀농을 권유하셨다. 신성은 씨는 고민할 것도 없이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장미는 생각보다 녹록치 않은 작물이다. 1년 내내 절화를 해야하기 때문에 멀리 여행을 갈수도 없고 365일이 근무다. 수경재배로 키우는 장미는 토경재배에 비해 뿌리혹선충이나 잿빛곰팡이병에 약하기 때문에 시설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젊은 신성은 씨에게 하우스 관리는 힘들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밤늦게까지 하우스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벌였다. 귀농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귀농을 하면 노력한 만큼의 대가도 받고 자기 나름대로의 시간도 갖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 이런 문제로 회의가 많이 들었다”

하지만 가꿔온 줄기 끝에서 한송이 한송이 장미가 올라오고 커가는 것을 보면서 도시생활에서 느낄수 없었던 성취감이 느껴졌다. 2012년 여름 태풍으로 하우스에 물이차고 비닐이 날아가버리는 피해를 입었다. 다 접어버리고 싶어졌지만 옆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힘을 냈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귀농이라 쉽게 포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새삼 가족의 소중함도 깨닫게 되었다. 귀농으로 얻은 가장 값진 것이 아닐까 싶다.

젊은이의 유입은 세도장미연구회와 작목반에 큰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신성은 씨는 세도장미연구회에 반드시 필요한 젊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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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귀농에 성공하고 장미 재배의 장인이 되기 위해선 하우스안에서 자신과의 싸움만으로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역 주민과의 화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성은 씨는 마을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어르신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항상 배우는 자세로 대한다. 작목반에서는 모든 일에 적극적인 성실한 청년이다.

올해엔 농업기술센터 굿뜨래농업대학에도 입학했고 강한농업경영체 교육도 신청했다. 더 많은 인맥과 농업, 경영 지식을 쌓아가려는 것이다. 이런 열정적인 모습들에서 그는 절반의 성공은 이룬 것 같다.

현재 신성은 씨는 노화된 장미 를 재정식해야 한다. 대한민국 장미농가 대부분의 부담인 로열티 때문에 품종 선택에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의 어려움들 속에서 얻은 값진 경험들과 지식, 장미를 향한 열정으로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 더 큰 성공의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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