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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미술계의 큰 어른…”
“대한민국 미술계의 큰 어른…”
  • 황규산 발행인
  • 승인 2014.07.23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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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부여人 - ⑪ 우남(牛南) 이용휘 전 국립군산대학교 예술대학장
-연재를 시작하며-
21세기 부여신문은 부여 출신 향우(명사)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연재하기로 했다. 인물선정이나 시간제약·취재일정으로 무순으로 기재하오니 많은 이해를 부탁드린다.


≫연재순서
① 권오형 한국공인회계사회장
② 이우철 생명보험협회장
③ 심상기 서울미디어그룹회장
④ 김진환 법무법인충정대표변호사(재경부여군민회장)
⑤ 김무환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장(민선 3·4기 부여군수)
⑥ 이정치 일동제약회장
⑦ 김영기 (사)한국서도협회장
⑧ 김종필 전 국무총리
⑨ 신광섭 대한민국역사박물관건립추진단장
⑩ 경희대학교 김성수 한의과대학교수(전 경희대학교 한방병원장)


自然 그리고 人間 : 숲을 노래함
저수지의 아침 21c부여신문

나무들이 모여사는 숲은 늘 평화롭다. 다툼이 없으니까.
상대방 나뭇가지가 어깨를 짓눌러도, 뿌리가 발등을 밟고 있어도,
심지어는 칡덩굴 따위가 목과 머리까지 휘감아서 앞이 잘 안보여도 내버려둔다.
새들이 둥지를 짓고, 씨앗을 쪼아먹고, 시끄러운 소리로 떠들어도 나무는 조용히
웃어준다. 생김새가 다르고 색깔이 같지 않다고 해서 서로 비난 하거나 편가르기 같은
유치한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이해와 양보, 배려와 공존이 미덕임을 아니까.
서 있는 곳이 비좁고 불편해도 원망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
넓고 편리한데 있다고 해서 자만하거나 과시하지도 않는다. 분수를 중시하니까.
크다고 힘자랑 하거나 작다고 위축되는 일은 더더욱 없다. 평등의 가치를 존중하니까.
탐내고, 훔치고, 빼앗고, 해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무법이니, 불법이니,
탈법이니, 편법이니 하는 이상스런 단어는 숲에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숲에는 法이 필요없다. 모든 것을 스스로 잘하니까.
그래서 스스로 자(自) 그럴 연(然)이다.

나무들이 모여사는 숲은 늘 풍요롭다.
꽃과, 부드러운 잎과, 달콤한 꿀과, 맛있는 열매가 있어 수 많은 생명체를
먹여 살린다. 몸이 허약한 사람에게는 헌혈도 해준다. 고로세 나무처럼.
그뿐인가, 사람들의 잘못으로 파괴되고 소실된 문화재 복원을 위해서는 100년이
훨씬 넘은 금강송(金剛松)은 기꺼이 목숨을 초개같이 던진다. 가슴 뭉클하게도….

나무들이 모여사는 숲은 늘 멋이 흐른다. 예술을 사랑하니까.
계절따라 펼치는 나무들의 패션쇼는 가히 장관이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들이
보여주는 조형미는 어떤 예술가도 감탄한다. 더욱 멋진 것은 그런 훌륭한 작품을
전시하면서도 소문이 없다. 그야말로 무인불이불방(無人不而不芳),
보는 이가 없다고 해서 향기 아니 내뿜으랴.

나무들이 모여사는 숲은 늘 행복이 넘친다.
좋은 친구가 있어서다. 든든하게 지켜주는 山이 있고, 비단처럼 부드럽게 감싸주는
江이 있고, 거기에 더하여 심고, 가꾸고, 보살펴주는 人間이 더불어 벗이 돼 주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닌가.
山과, 江과, 숲과 人間이 한데 어울려 힘을 합하여 가꿔낸 평화롭고, 풍요롭고,
멋스럽고, 행복이 넘치는 금수강산(錦繡江山)이여.
자손만대 영원하라.
2001. 牛南


ㅇ 21c부여신문

우남(牛南)의 작품을 보면 무척이나 포근하고 낯익다. 그의 50여 년 작품 세계 중 1960~70년대는 인물·풍속화가 주를 이뤘지만, 1980년대부터 산수 중심의 작품이 눈에 띠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1960~70년대 인물·풍속화에는 그가 어릴 적부터 냇가에서 뛰어놀던 고향의 정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옛날 민담이나 설화를 주제로 한 작품에도 어김없이 고향이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필자가 찾은 군산의 저택 뒷쪽에는 반달모양의 산으로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입구에는 복숭아 나무와 고추, 피망, 수박, 참외가 심어져 있는 아름다운 전경이었다. 여기에 9마리의 토종닭을 손수 키우고 있으며, 2층에서는 저멀리 은파유원지가 내려다 보이면서 창문 틈으로 새소리가 귓가를 즐겁게 해주는 작은 숲 속의 궁전을 연상케 했다. 자연을 늘 곁에두고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그의 작품 세계에는 늘 자연이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남이 규암면 신성리 출신으로 늘 강과 숲을 보며 유년시절부터 고교시절까지 학업에 열중하면서 미술학도로 큰 포부를 갖고 미래를 꿈꾸었기에 그의 작품세계에 고향이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여진다. 50여 년 간 동양화의 전통을 바탕으로 작품활동을 해온 우남은 한국미술계의 ‘큰 어른’으로 불리우고 있다. 지금도 우남은 고향을 주제로 한 1960~70년대의 작품을 가장 아끼고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오월 21c부여신문

靜 21c부여신문

연 21c부여신문

귀로I(좌), 동희I(우) 21c부여신문

귀로II(위), 친정생각(아래) 21c부여신문

아낙네가 냇가를 건너는 ‘오월’, 소를 타고 강을 건너는 ‘귀로Ⅱ’, 아이를 등에 업고 보름달을 쳐다보고 있는 ‘친정생각’, 아이들이 씨름을 하며 노니는 ‘동희Ⅰ’, 강가에서 옷을 벗어던지고 미역을 감던 ‘하동’ 등의 작품을 보면 우남의 어린시절을 알 수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1960~70년대가 주로 인물과 풍속을 주제로 한 작품이었다면, 1980년대부터는 주로 산수화의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남은 작품에서 늘 자연의 미덕을 예찬한다. 그중에서도 우남은 ‘숲’을 좋아하고 노래하고 있다. 빼곡하게 나무들이 늘어선 숲은 언제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면서 풍경의 깊이보다는 넓이를 보여주는 수평적 구도를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ㅇ 21c부여신문

ㅇ 21c부여신문

화가로서 성공한 우남은 교육자로도 대한민국 화단에 큰 이름을 올린 성공한 교수이기도 하다. 국립군산대학교에서 30여 년 간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몸받쳤다. 1992년부터 2년간 군산대학교 예술대학장을 지냈고, 2000년에는 2년간 군산대학교 박물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우남은 50여 년의 작품활동을 하면서 그중 30여 년은 강단에서 교육자로 활동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으며, 12번의 개인전을 비롯해 200여 회의 단체전과 초대전에 참여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는 제16회 전국대학미전 심사위원(덕수궁 현대미술관, 1985), 고등학교 미술교과서 심사위원(미술분과위원장, 1989), 제12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1993), 제13회·2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1994, 2001) 등을 지냈다.

우남은 고향 부여의 예찬론가이기도 하다. “농업이 주를 이루지만 문화와 관광으로 부여를 더욱 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합정리 위주로만 관광객이 왔다가고 있는 느낌이다”라면서 “앞으로 전 세계 또 우리나라는 더욱 더 문화가 경쟁력”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우리 고향 부여에도 문화적인 콘텐츠 산업에 비중을 높여 부여의 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우남은 손수 농사를 지은 텃밭에서 복숭아, 피망, 참외 등을 따주면서 고향의 푸근한 인심을 보여주는 따뜻한 이웃집 아저씨의 모습으로 영원한 자랑스런 부여인의 미소를 보여주었다. “죽는 그날까지 그림을 그리겠다……”며 말하는 우남의 얼굴과 두 눈은 고향 부여를 바라보며 더욱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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