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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봉사하는 마음을 갖으며 살고 싶은 소망!”
“항상 봉사하는 마음을 갖으며 살고 싶은 소망!”
  • 황규산 발행인
  • 승인 2014.08.20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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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달 호 백제초등학교 운영위원장
“돈 없어 학업 중단하는 후배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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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낮추고 자신이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남을 돕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달호 백제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의 두 손을 보고 있으니 마디 마디 굵은 군살로 돌덩이처럼 단단하고 거칠어 보였다. 김 위원장의 휴대폰은 요즘 흔하디 흔한 스마트폰이 아닌 구형 폴더형 휴대폰으로 9년째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가난을 딛고 지역에서 어렵게 번 돈으로 남을 위해 아낌없이 장학금을 내놓을 줄 아는 통큰 남자.
그는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으로 앞으로도 지역을 위해 묵묵히 봉사하며 살고 싶은 소망을 가슴에 담고 있다. - 편집자 주 -

“어릴 적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생활을 했던 기억 때문에 돈이 없어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학생들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부여지역에서 10여년 간 어려운 학생들에게 남몰래 장학금을 지원해오며 남을 위해 함께 나눔의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 김달호(53, 대성산업 대표) 백제초등학교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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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10여년 간 지역 곳곳에 장학금을 기부해 온 ‘얼굴없는 장학금 기부천사’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그동안 김 위원장의 이러한 봉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던 친구인 정길채(부여군청) 씨에 의해 초등학교 총동문회와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김달호 위원장은 부여읍 구교리에서 태어나 백제초등학교(16회)를 졸업하면서 지금까지도 모교인 백제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한다. “초·중·고를 다니면서 유독 백제초에 대한 나의 감정은 강했다”면서 “어릴 적 그 순수했던 마음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가슴에 남아 있는 것 같다”며 모교인 백제초에 대한 그의 무한한 사랑을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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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닐 적만 해도 부여군에서 초·중·고교를 통틀어 가장 큰 학교가 바로 ‘백제초등학교’였다”면서 “그 당시엔 전교생이 2400여명이 넘었던 기억”이라고 회상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백제초의 야외수영장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시설이었고, 초등학교의 명문이었지요. 저 또한 학교생활이 너무 즐거웠고 추억이 많았던 기억입니다”라면서 김 위원장은 “그때 친구들이 지금도 너무 좋고 또 자주 만나면서 아직까지도 형제처럼 지내고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라며 밝은 웃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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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장학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느냐는 물음에 김 위원장은 “고교졸업 후 가정형편상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썩 괜찮은 직장에 다녔지요. 그곳에서 14년 간 직장생활을 해오던 중 노조위원장에 출마하게 되었는데 4표 차이로 선거에서 졌답니다. 그러던 중 IMF 금융위기가 오면서 우리 회사도 구조 조정을 하며 제가 가장 먼저 회사를 떠나게 되었죠. 이후 대전에서 농자재 관련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20여 년째 이어진 것이고요. 직장생활에서 사회에 대한 교훈을 많이 얻었지요. 또 퇴사 후 개인사업을 시작하면서 대전에서 6년여 간 꽤 많은 노하우를 쌓았고, 이를 가지고 다시 고향으로 귀향하여 나름대로 성공 아닌 성공을 이루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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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이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은 농자재 관련사업으로 부여지역 농업에 가장 많이 쓰이는 ‘시설원예자동화시설사업’이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무척이나 바쁘고 고된 일이지만 김 위원장은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고향에서 나름대로 돈을 조금 모았으니 고향을 위해 제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혼자 실천에 옮겼던 일인데 어떻게 가까운 친구들이 알게되어 이젠 너무 거창하게 소문이 나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겸손함을 보이는 김달호 위원장.

김 위원장은 “제가 이 아이템을 가지고 고향에 처음 내려와 농업기술센터에서 처음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해 큰 호응을 얻게 되자 부여군에서 사업을 확대하게 되었지요. 10여년 간 정신없이 일만 했어요. 뒤도 한 번 못 돌아봤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겁니다……”(하며 웃는 모습은 무척이나 소탈하면서도 수줍은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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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여년 전 쯤부터 겨우 뒤를 한 번 살펴보게 되면서 이젠 제가 고향에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게 됐고, 또 한 가지씩 그 생각들을 실천한 거죠. 그러면서 가장 먼저 모교인 백제초등학교에 저희 동창회 기수인 16회 이름으로 장학금을 조금씩 내놓았습니다. 또 총동창회 정기총회 시 매년 장학금을 조금씩 내놓고 최근에는 모교에 신입생이 해마다 줄고 있다기에 입학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게 된 겁니다. 특히 얼마 전에는 군청 친구인 길채의 권유로 부여군에 ‘굿뜨래장학금’을 조금 전달했죠.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고향에서 그 역할을 하려 합니다. 단 조용히 봉사하고 싶구요. 얼마 전 중앙로타리클럽에서 한국장학문화재단에 작년에 4구좌를, 올해엔 2구좌를, 국제장학재단에 1구좌(100달러)를 신청했어요. 많은 후배들이 열심히 공부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라고 김 위원장은 그동안의 소회를 말했다.

딸만 하나인 김 위원장의 외동딸 샛별 씨는 현재 충남대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음악인이다. “죽을 때까지 제가 봉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고 싶은 작은 소망입니다. 행여 앞으로 마음 흐트러지거나 변하지 않았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구요. 사회에 특히 고향에 꼭 도움이 되는 제 인생을 살고 싶어요”라고 소망을 말하는 김 위원장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봉사가의 진정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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