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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내가 만난 하느님
[교단일기] 내가 만난 하느님
  • 배철식
  • 승인 2014.08.27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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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안부 삼아 시골 아버지댁에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 김치 택배로 보낸 것 잘 받았습니다. 오늘 저녁은 김치 하나로 맛있게 먹었어요. 별 일 없으시죠”

“잘 받았나 보구나. 그럼 일찍 전화 주지 않고... 혹시 늦게 배달될까봐 걱정했다. 그렇지 않아도 전화하려던 참이었다. 애들은 잘 놀지?”

못내 서운하신 목소리였다. 자식들 챙기시느라 백 이십 포기에 당신들의 마음을 담으셨다는 것이다.

“토요일날 잠깐 들를까요?”

특별한 약속은 없었지만 집에서 쉬고 싶은 주말이었다. 채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면 좋지. 운전 조심하고...”금방 아버지의 말씀에 신명이 실리었다.

토요일, 나는 가족들과 함께 고향 부모님 댁으로 핸들을 잡아야 했다.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아이들의 기말시험에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시골에 가면 아이들은 해방이다. 공부로부터, 엄마 아빠의 잔소리로부터...

결혼 10년이 넘었어도 어머니께서 해 주시는 밥은 맛나다. 비지장과 시원한 동태찌개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 치우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밥 한 공기를 더 퍼주신다. 주걱에서 묻어나는 어머니의 흐뭇한 표정을 읽었다.

다음 날, 길이 멀다는 핑계로 점심을 먹고 부여행 길을 서둘렀다. 못내 아쉬운 눈빛으로 어머니는 미리 준비한 이것저것을 챙기셨다. 아버지도 바쁘셨다. 녹내장이 심하여 수술을 몇 번 했음에도 아버지는 결국 한 쪽 눈을 실명하다시피 했다. 그런 아버지가 현관을 조심조심 몇 번을 오르내리셨다.

“이 박스는 배즙인데, 애비도 기관지가 좋지 않고 애들도 기침 자주하니까 아침 저녁으로 먹으면 좋을 거야. 그리고 이것은 고구마, 너희들 지난 번에 보낸 고구마 맛있다고 다 먹었다고 했잖아. 우리는 안 먹으니까 가져다 먹어라...”

어머니의 말씀이 이어진다.

“동치미는 아직 맛이 안 들었다. 바로 냉장고에 넣지 말고... 이 상자는 아버지가 딴 감인데 아직 덜 익었어. 시원한 데 두었다가 홍시되면 먹어라. 참 달더구나.”

끈으로 야무지게 맨 상자를 차 트렁크에다 실으며 아파트 10층까지 올릴 걱정이 앞섰다. 이제 다 끝났다 싶었는데 어머니는 큰 김장봉투에 파를 한가득 가져오신다.

“파도 사 먹으려면 다 돈이잖아. 이거 텃밭에서 가꾼 거니까, 오래 두고 먹거라.”

“어머니! 됐어요. 사먹으면 되는데...파뿌리에 흙이 잔뜩 묻어서 차가 지저분할 텐데요.”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차에 신경이 쓰였다.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에 내가 섬찍 놀라 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그럴까봐 내가 뿌리를 한 번 더 비닐로 덮어서 묶었어”

나는 그만 할 말을 잊었다. 초겨울 파란 하늘 한 조각이 날카롭게 눈 속으로 들어왔다. 일흔이 넘으신 아버지께서 불편한 몸으로 쌀을 한 포대 들고 오셔서 차 옆에 내려 놓으셨다.

“내년에는 쌀도 사 먹어야 할 텐데... 애비가 알다시피 땅을 다 팔았잖아. 올해가 마지막이다. 사람은 밥 먹는 힘으로 사는 거다. 아침에 바쁘다고 끼니 거르지 말고...”

내가 시골에 내려 올 때 무엇을 가져왔던가? 마트에 들러 귤 한 상자 사들고 왔는데... 수술을 받으신 아버지의 왼쪽 눈이 자꾸 일그러지고 작아지신다.

시동을 걸었다. 아이들은 매번 했던 것처럼 시골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할머니를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할머니 우리집에 빨리 놀러 와서 열 밤 자고 놀다가야 해요.”

그런 손자가 예뻐서일까? 어머니는 솜바지 속에서 무엇을 꺼내었다.

“이거 소현이 승열이 겨울옷 사 입혀라. 날이 많이 추워진다고 하더라.”

오만 원이 창문 틈으로 들어왔다.

“엄마! 저도 돈 있어요. 어머니 아버지 용돈 쓰세요. 그리고 보일러 많이 틀어서 따뜻하게 보내셔야죠.”

다시 돈을 집어 창 밖으로 내미는 손을 어머니께서 가로막는다.

“누가 모르냐! 큰 돈 아니다. 우리 마음이니까 받아 두거라. 가다가 휴게소에서 뜨끈한 국수라도 한 그릇씩 사 먹고...”

어머니를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또 어머니께서 종종 걸음으로 오신다.

“아이구 내 정신이 이렇구나. 애비야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너희 주려고 손두부 해 놓은 것 냉장고에 있는데... 우리 밭에서 지은 콩을 가지고 집에서 만들었어. 사 먹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거야.”

어머니는 추위에 떨리는 손으로 두부 네 모를 반찬통에 담아서 가져 오셨다.

시간이 잠시 멈추었다. 아이들은 헤어지는 아쉬움의 시간에 손을 흔들고 있었지만 나의 시간은 잠시 멈추었다. 햇살은 저렇게 창문틈으로 넘어오는데, 엑셀레이터를 밟을 자신이 없었다.

“어여 가. 해 지기 전에 가서 좀 쉬어야지.”

조심스럽게 동구 밖을 내려오면서 백미러를 보았다. 거기에는 내가 그토록 절실하게 찾았던 하느님이 서 계셨다. 초겨울 맑은 햇살 속에 지상 나이 이른이 넘은 하느님 두 분 서 계셨다.

맑은 하늘에 진눈깨비가 내릴 일은 없는데 자꾸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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