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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광장] 잡것들과 벌린 한판 씨름
[목요광장] 잡것들과 벌린 한판 씨름
  • 이규원
  • 승인 2014.10.01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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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체험 10>

1993년도 대통령 아드님이 정치세력을 확장하며 MBC 인기프로 ‘우정의 무대’ MC 뽀빠이(이상용)를 대전광역시 OO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토록 호출 하였으나 거부하자, 그가 운영하던 ‘어린이 심장재단’에 비리가 있다고 꼬투리 잡아 풍비박산(風飛雹散)케 하고 ‘우정의 무대’ 프로그램도 문 닫게 했다는 소문이 한참 퍼지고 있을 때, 공보처는 선진국에서 벤치마킹한 ‘케이블(유선)방송국’ 허가정책을 도입하며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분위기를 띄워 이목을 끌게 했다.

공보처는 방송국허가 심사업무를 시도(市道)에 위임하여 업체 선정(選定) 책임에서 쏙 빠지는 얄미운 순발력도 발휘하였다.

대전광역시에 신규로 배정된 케이블방송국은 2개사(社)이었으며, 접수된 허가신청서는 1지구(동구 대덕구) 2개 법인, 2지구(중구 서구 유성구)는 5개 법인이었다. 30대 재벌을 제외한 중견기업체와 유력인사들로 컨소시엄을 이루어 제출한 심사평가 자료책자가 산처럼 쌓이기 시작하였다.

공보처의 지침대로 副市長(부시장)이 심사위원장이 되고, 공영방송사 간부, 방송학·회계학 교수, 변호사, 은행장 등 9명의 심사위원을 市감사관실이 비공개로 위촉하고, 심사 하루 전에 평점자료를 배부하는 심사준비가 진행되었다.

신청 업체에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심사준비 작업에 참여하는 휘하 직원들(3명)에게 “외부 인사들과 커피 한 잔도 마시지 말라”는 금족령을 내렸으나, 어이없게도 직속상관인 K공보관은 신청업체 人士를 만나 ‘돈다발을 챙기고 있다’는 직원의 보고를 받고 “공보관의 압력을 절대로 받지 않을 테니 흔들리지 말라”고 독려(督勵)하였다.

예상대로 “특정업체에 유리하게 평점표를 작성하라”는 부당한 지시가 내려 왔으나 거부하고, 市長 결재받은 항목대로 강행했더니 며칠 후 “청탁했던 업체에 돈다발을 반납하는 것 같다”고 직원이 알려주었다.

조선시대 탐관오리 꼭 닮은 상급자가 자리 차지하고 앉아 허튼 수작이나 하며 업무방해를 하고 있는 상황이 슬펐다. 거기에다 허가신청 업체들이 권력기관과 결탁하여 압력을 행사해 가냘픈 사무관(홍보1계장) 혼자 버티기 힘들었다.

심사일을 얼마 앞두고 지방경찰청 정보과 Y반장이 전화로 진행상황을 요구하여 장황하게 설명하며 거절해야 했고, 또 지방검찰청 9호 검사실 A계장은 접수된 서류를 갖고 검찰청으로 들어오라고하여 반발하느라 땀을 흘려야 했으며, 안기부 대전지부 H정보관이 신청자 인적사항, 출연자 구성비율, 재원조달 방법 등을 발췌해 달래서 “내가 사표내는 겨우는 있어도 그렇게는 못한다”며 반발해야 했다. 그들이 끈질기게 요구하는 심사진행 정보는 특정업체에 제공하여 그 업체가 선정되도록 지원하는 권력형 비리일 뿐이었다.

심사준비가 완료된 1993년 11월 27일 외부와 단절된(전화선도 끊고) 李根永 부시장실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며 허가심사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염홍철 시장 인사말, 필자의 심사요령 설명이 있은 후 분과별로 신청업체 대표이사 최다출자자 실무책임자 면접, 심사위원 토론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평점 집계 결과 제1지구는 ‘동대전케이블방송국’이, 제2지구는 ‘한밭케이블방송국’이 최고점을 받았다. 순위를 즉시 공개하고 심사서류를 공보처에 제출 하였다.

그러나 며칠 후 탈락업체 ‘대전종합유선방송(남)’에서 ‘심사과정과 공보처 심사기준이 불합리하다’며 ‘이의신청서’를 市에 제출하였다. 필자가 기자실에 나가 조목조목 설명한 후 답변서를 보냈더니 잠잠하였다.

그때 몇 개 타 市道에서는 공보처로부터 허가심사 부실판정을 받아 재심의하거나 순위가 뒤바뀌는 사건도 있었다. 대전광역시에서 공보처에 제출한 허가심사서류는 그대로 통과되어 힘겨운 씨름판의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작업에 참여했던 직원들과 목로주점에서 압력을 행사했던 잡것들을 안주삼아 무용담 나누며 자축할 수 있었다.

여러 해 지난 후 ‘동대전케이블방송국’과 ‘한밭케이블방송국’은 대전CMB로 흡수되어 운영되고 있지만, ‘황금알을 낳고 있는지’는 아직 알아보지는 않았다.

ㅓ 21c부여신문

이 규 원
전 부여군 기획감사실장
21세기 부여신문 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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