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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일기] 마음이 말을 건넨다
[교육일기] 마음이 말을 건넨다
  • 배철식
  • 승인 2014.10.14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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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케 류노스케의 「생각버리기 연습」을 읽고...
지난 겨울, 그리고 이른 봄까지 참 힘들었던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늘 불안했으며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무너져 내리듯 몸을 침대에 맡겨야 했습니다. 탈출구를 찾으려 했으나 쉽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학교를 그만둘까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으니까요. 예상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암수술과 이어지는 투병생활을 지켜 보는 것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중년의 교직생활에 자꾸 회의감이 들면서 자신감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동의를 구하고 살짝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먼저 들른 곳이 서점이었습니다. 책이 필요한 순간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눈에 들어왔던 책이 ‘생각버리기 연습’이었습니다. 매력적인 책 제목이 선정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생각하지 않고 오감으로 느끼면 어지러운 마음이 서서히 사라진다는 솔깃한 문장을 책표지 전면에 배치한 이 책은 지나치게 생각이 많았던 나의 뇌에게 휴식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주었습니다.

책 한 권 들고 무작정 고향으로 갔습니다. 혼자만의 일주일 고향 행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가족과 함께 갔으니까요. 직장암 3기의 어머니는 인공장루(항문)를 차고 계셨습니다. 아직 익숙치 않아 더러는 이불에, 속옷에 대변이 묻는 날이 많았고 어머니는 그때마다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때로는 서너 번, 저는 어머니의 장루를 갈았습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떠올리며 화장실에서 눈물을 훔치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부모님께서 잠든 밤, 나는 ‘생각버리기 연습’을 펼쳤습니다. 저자는 우선 우리를 괴롭히는 잡다한 생각의 정체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지 설명했습니다. 이 과정을 말하기, 듣기, 보기 같은 8가지 영역으로 나누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생각이 제멋대로 달리도록 내버려두기 때문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결국 생각 자체가 혼란스러워 둔해진다고 말했습니다. 내 고민의 결정체를 해부하는 시간이 되고 있었습니다. 잡념을 버리고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려면 연습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했습니다.

나는 그 당시 큰 아이의 진학문제, 어머니의 투병생활에 대한 걱정, 학교 업무에 대한 부담감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혼란스러웠던 것은 교실에서 학생들과의 수업이었습니다. 반딧불이 연수 이후로 용감하게 시도했던 협동학습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협동학습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준비를 소홀하게 한 나를 탓하기보다 학생들에게 그 원인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모래성 허물어지듯 사라지면서 불면의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욕심과 실천이 어긋나 있었다는 것을 몰랐으니까요. 여유를 갖고 명석하게 분석하여 실천하기 보다는 고통과 번민의 연속선상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책의 저자 ‘코이케류노스케’는 잡념의 이유를 자신이 좋아하는 자극을 얻기 위해서라면 부정적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깡패 같은 성향을 지닌 뇌라는 정보 처리 장치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잡념을 불러일으키는 분노의 에너지를 잠재워 짜증과 불안을 없애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조용히 내 안의 나를 보았습니다. 욕심과 불만, 그리고 작은 자극에도 한껏 예민해진 내마음이 보였습니다. 학생들의 미니홈피에 들러 글을 남기면 답글을 기다렸던 내 욕심이 이곳 저곳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즉각적인 만족과 희열을 추구하며 골치 아픈 일을 피하려고 점점 더 빠르고 달콤한 자극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런 나의 생각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를 작가는 깨우쳐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투병을 내 생활로 받아들이고 조금 더 담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표내지 않는 두려움의 그림자가 엄마의 얼굴에 드리워져있을 때, 이불과 속옷에 묻은 변을 걸레로 훔치시며 우실 때, 나는 용기와 안정을 주지 못했고 긴장감이 가득 차고 슬픈 얼굴로 엄마를 지켜보았습니다. 그것은 환자에게나 저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으니까요.

저는 저자가 말한 만(慢)이란 번뇌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좋게 평가받고 싶다고 걱정하며 조바심내고, 나를 잘 보이려는 욕구가 가득찬 내 이미지에 대한 집착에 빠져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무조건 잘 가르치고 소통하는 교사로 인정받고 싶었고, 상사나 동료에게는 언제나 무능하지 않고 부지런한 교사로, 부모님에게는 도리를 다 하는 자식으로, 최선을 다 하는 아빠로, 남편으로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안했습니다. 저는 신(神)이 아니었으니까요. 코앞의 걱정에서부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심각한 것까지 더욱 큰 고통이라는 자극을 구해 헤매고 있다고 작가가 나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빌 게이츠도 1년에 두 차례씩 일주일간 은둔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생각주간이라 부르고 이 생각주간에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독서에 집중한다고 합니다. 그 어떤 방해나 간섭으로부터 해방되어 정리를 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한다고 합니다.

작가는 또 이런 말을 들려 주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물건을 소유하지 말자. 물건뿐만이 아니라 무엇에든 집착하지 말자. 잃을까봐 두렵다는 생각이 결국 스스로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됨을 알아야 하며,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저항감과 공포감이 증가하면 마음이 어지러워진다고 했습니다.

가슴 밑바닥에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는 내 소유욕의 정체를 살펴야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로 올곧게 살기 위해서 버리는 연습에 익숙해야 한다고 내 마음이 나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나를 포함한 많은 현대인들이 혹시 일상의 섬세한 멋을 느끼지 못하고 좀 더 격렬한 자극만을 향해 집어등(集魚燈)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정제된 만족, 최대한 객관화할 수 있는 생각들을 하지 못하고 주변의 작아 보이지만 가장 큰 아름다움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남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다가서서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척, 보는척 쫓기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깨달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하는 일주일의 여행은 참 짧았습니다.

차분히 교실 수업을 생각합니다.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나의 손짓과 몸짓, 그리고 억양과 수업방식에 그들은 순수한 영혼을 열고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간과한 것들이 보였습니다.

이제 어두운 터널에 밝은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교단에 서서 한 시간 알차게 꾸려나가려 노력하는 교사이며, 두 아이의 아빠로, 가장으로, 무엇보다 어머니의 항암치료를 희망의 씨앗으로 지켜보는 자식으로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일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듣고 느낄 줄 아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학교가 가까워서 걸어서 출근합니다. 야트막한 학교 동산 오솔길에 참 많은 생명이 있습니다. 노란 민들레꽃이 말을 건네옵니다. 초록색 느티나무 잎새가 속삭입니다. 풀꽃에 내려 앉은 벌이 귀를 간지럽힙니다. 참 행복합니다.

ㅓ 21c부여신문

배 철 식
백제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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