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만물은 본래 귀천이 없다
[독자기고] 만물은 본래 귀천이 없다
  • 박철신
  • 승인 2012.02.29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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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자에게 마음이 가고 난후 몸이 따라가는 법이지만 남자는 몸이 먼저가고 마음은 그 후에 가기도, 안가기도 한다.

여자는 건강하고 잘생긴 배우자의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길 원하지만 남자는 벌, 나비가 꽃을 찾듯 한 곳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남자는 술에 취해 사랑을 나누지만 여자는 사랑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 남자는 성공을 위해 목숨을 걸지만 여자는 사랑에 목숨을 건다... 물론 모든 이에게 다 맞는 말은 아니다. 어쨌든 이렇게 서로 다른 본능을 가진 남녀, 암수가 이 세상 속에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사실 부부, 부모, 자식, 친구 등은 법과 도덕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끈끈한 정이 있기 때문에 알음알이의 근원이 되기 쉽다. 가능하면 인연을 만들지 마라. 인연이 칡뿌리처럼 얽히면 알음알이가 설키니 맑고 고요해지기 어렵다.

채식보다 육식은 변비를 유발한다. 섬유소가 적기 때문이다. 대변이 대장에 오래 머무르면 대변 속의 발암물질이 대장 점막과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대장암이 잘 생긴다. 쉼없이 변해가는 우주만물의 이치대로 머무르지 말고 그 마음을 내야 한다. 생각이 머무르면 알음알이가 욕심과 분노를 지어낸다.

‘무(無)’자 화두를 들때, ‘무엇이 없다는 뜻이야?’라고 그 뜻을 헤아리려 해선 안된다. 그저 ‘무! 무! 무!’라고 마음 속으로 끊임없이 반복하게 되면 알음알이가 끼어들 물리적인 틈새가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화두가 성성해지면 흙탕물의 흙이 가라앉듯이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그렇다면 화두와는 별도로 ‘무(無)’라고 했을때 무엇이 없다는 뜻일까? 그것은 내 눈앞에 펼쳐진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 거기에 인위적인 사족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또한 찰라생, 찰라멸 하는 존재이니 영혼을 가진 존재는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깨친 자는 말을 할때 유위법인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욕심을 낸다고 돈이 벌리던가? 돈은 발이 달려있어 저절로 나에게 걸어 들어오기도 하고 걸어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전생과 현생에서 내가 지은 복과 덕에 비례해서 말이다.

알랙산더가 왕이 되어 디오게네스를 찾아간다. 한 구석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디오게네스가 초라해 보였던지 “디오게네스! 무엇인가 내가 그대의 소원을 들어줄테니 말해보시오”라고 말하자, 위대한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알랙산더 대왕이시여! 그대 때문에 그늘이 생겨 내가 햇볕을 마음껏 쬘 수가 없네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알렉산더는 몸을 비켜주며 “내가 알랙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구나”라고 디오게네스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아무리 위대한 왕이라도 무위자연에 비할수 있겠는가? 권력과 부와 명예는 결국 보잘 것 없는 하루 아침의 티끌이요 풀잎의 이슬이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 질병이나 전쟁터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 그들에게 부귀영화는 사치다. 숨을 쉬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정신과 육체의 고통스런 트라우마(trauma)를 경험하고 인생의 바닥을 쳐본사람은 하심(下心:욕심과 분노를 놓아버림)이 몸에서 베어나오고 마음이 텅 비어있으니 우주만물을 온전히 품을수 있다.

이 세상이라는 연극 속의 배역이 진정한 ‘나’라고 착각하지 마라. 우리가 숭배하는 ‘돈’이 딱지치기 놀이의 ‘딱지’란 사실을 잊지마라. 시장 자본주의사회에선 서로 경쟁해야 하고 열심히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다.

하지만 무한 경쟁에서 밀려난 못가진 자, 빼앗긴 자를 굶주리게 까지 해선 절대 안된다. 해가 만물을 고루 비추니 만물은 본래 귀천이 없다.

박 철 신 종양내과 의학박사, 부여현대내과 원장 21세기부여신문 독자위원장 21c부여신문

박 철 신
종양내과 의학박사
부여현대내과 원장
21세기부여신문 독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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