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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백마강 길
[특별기고] 백마강 길
  • 이용우
  • 승인 2012.03.1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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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프루스트는 “진정한 발견을 위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라고 했다. 과거를 끊임없이 현재와 맞닿게 하고 우리가 속한 당대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 지는 곳에 백마강 길이 있다. 물길 닿는 곳마다 천년 전설이 깃들어 있는 백마강변을 따라 걷는 백마강 길은 백제문화유적과 함께 강변의 수련한 자연경관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새로운 수변형 역사생태 둘레길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백마강 길에는 굽이굽이마다 오랜 역사와 전통, 민속, 지명, 설화를 간직한 소중한 문화자원들이 산재해 있다. 그 여행의 시작은 구드래 공원 방면 부소산 입구다. 부소산은 백제 왕실의 후원이자 사비백제 최후의 보루였다.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주검으로 절개를 바꾼 낙화암과 백제 영욕의 세월을 함께 한 천년 고찰 고란사가 유명하다. 노을질 무렵 부소산에 내리는 저녁비, 낙화암에 우는 애달픈 소쩍새의 울음, 고란사의 은은한 풍경소리, 푸른 백마강에 잠긴 달빛은 여기 사람들만 아는 부소산 여행의 별미다.

부소산을 지나 금강살리기 사업으로 조성된 생태공원을 한참 걷다보면 백제보와 만나게 된다. 백마강 길의 다른 역사 인프라와는 달리 현대적 구조물이다. 도시에서 온 전학생 같다. 하지만 이 전학생도 시간과 역사의 궤도를 돌다보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원으로 부활하여 후세들의 유산이 될 것이다. 다행인 것은 가동보의 외관을 계백장군 수문장 이미지로 현대적으로 표현했고, 이웃하고 있는 금강문화관과 전망타워는 전학생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다.

돌아나오는 길에 마주하는 곳은 천정대다. 인재 등용의 신중성과 하늘의 뜻을 받들고 민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백제인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 백제 때는 정사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백제의 22담로들을 지휘하는 재상을 선출하던 성스러운 바위였다. 이곳 천정대에서 백제인들은 700년 백제 사직의 바다로의 웅비를 꿈꾸었을 것이다.

천정대에서 나와 부소산 맞은편 강변길을 따라 걷다보면 왕흥사지를 만난다. 지난 2007년 출토된 사리기에는 ‘577년 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탑을 세우고 본래 사리 2매를 묻었을 때 신의 조화로 셋이 되었다’는 29자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절대 군주의 단장의 비애와 극락왕생을 바라는 아비의 마음이 가슴 시리게 전해온다.

다시 강변길을 따라 걷다보면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백강 이경여가 올린 북벌의 장계에 대한 효종의 비답을 새긴 각서석으로 유명한 부산과 광해군 때 양주목사를 지낸 김흥국이 낙향하여 세운 조선 선비의 풍류와 여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수북정을 만나게 된다. 백제교를 건너면 강 우측에는 서른아홉의 나이에 시대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피지 못한 꽃으로 저버린 당대 최고의 저항시인 신동엽의 시비가 있다.

다시 출발지로 향하는 길에는 구드래 공원이 있다. 백제때 국제 무역항의 중심인 구드래는 오늘날에는 백마강을 이용한 수상관광 시대의 전진기지이자 유람선 관광의 교두보로 부활하여 부여 관광산업을 이끌어 가는 중심축으로 발전하고 있다. 백마강 길은 특색 있는 생태자원의 보고인 강변 경관이 오랜 역사 문화자원과 어우러져 부여만의 특성을 살린 아름다운 길로 재탄생했다.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걷기 열풍의 신상품으로 웰빙 시장의 떠오르는 샛별이다. 역시 최고의 강점은 역사교육의 살아있는 현장체험이다. 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치 위주의 걷기상품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된 명품이라 할 수 있다.

백마강 길은 고장의 역사와 이 땅을 살다 간 민초들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다. 웰빙 시대에 발맞춰 백마강 길을 걸으면서 건강도 챙기고 역사 속으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보시기 바란다.

이 용 우 부여군수 21c부여신문

이 용 우
부여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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