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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광장] 남쪽 섬나라 출신 課長
[목요광장] 남쪽 섬나라 출신 課長
  • 이규원
  • 승인 2015.01.27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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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체험 11>

대전광역시 언론담당계장(홍보1계)은 사무관들이 가장 싫어하는 자리라서 6개월 또는 1년 만 채우면 교체해 주는 게 관행이었지만 3년이 다 되도록 방치하기에 賈基山 내무국장실에 항의성 방문을 했더니 1994년 7월 사회과 의료보장계로 이동되었다.

조직에 반감을 갖게 하는 無報償人事로 이해되었다. 의료보장계 업무는 기초생활수급자 의료보호사업, 진료기관 지정, 지역직장의료보험조합 대표이사 승인, 의보조합 사무감사 등 대부분이 보건복지부 위임사무이었다. 밤낮으로 市長과 기자들 사이에서 긴장하며 뛰어야 했던 것과 비교하니 업무량이 헐렁하여 심신이 편안하였다.

1년 6개월만인 1996년 2월 조직개편 때 교통시설과 주차관리계를 희망하여 옮겼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교통관련 업무를 배우고 싶어서였다. 교통시설과에는 교통시설계, 주차관리계 뿐이었으며 사무실 직원은 11명이고 지방경찰청 교통과(신호체계관리)에 파견된 20명의 인력이 별도로 있었다.

課長은 내무부에서 행정주사 H씨가 직무대리로 와서 6급이 5급 事務官을 (공무원 6~7년 선배를) 지배하는 물구나무 세운 상황이었다. 내무부에서 市道의 과장자리까지 국가직으로 장악했던 시절이라 이런 상황(1997년까지)이 가능하였다. 업무는 불법주차 단속, 공영주차장 설치, 버스터미널 화물창고업체 지도 감독 등이었다.

경제성장에 따라 승용차량이 대전시에서 年 3만 여대 씩 증가하여 1995년 말 통계로 20만대나 되었다. 주차면수보다 차량이 많아져서 불법주차 문제가 심화되어 주차 단속을 年 10만 건(38억 원)씩 집행해서 낮에는 거리질서가 유지되지만 밤에는 무법천지였다.

市長 결재를 받아 1996년 5월부터 경찰과 합동으로 야간단속을 시행하여 교통질서가 잡히는가 했지만 票를 의식한 철딱서니 없는 民選구청장들이 발목을 잡아 7개월 만에 중단해야 했다.

대전천 홍명상가 아래 공영주차장 설치 후 東區廳長에게 권한 위임한 첫 해는 공개경쟁입찰로 관리업체를 선정해 말썽없더니 2년차는 구청장 주변 인사에게 수의계약 선물을 안기자 경쟁준비업체에서 ‘계약무효소송’을 제기하여 비리에 관련된 구청장 박, 市의원 황, 구청담당과장 이가 기소되어 시의원과 구청과장은 교도소도 가고 옷도 벗어야 했다.

課직원들과는 손발이 맞아 어려움이 없었지만 課長이 문제였다. 과장의 前歷이 주로 비서실에만 근무해서인지 理財에는 귀재였지만 업무능력과 성실성은 부실해 보였다. 거의 매일 10시부터 오후 5까지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업무진행이 안 되었다.

국장결재 이전에 과장사인을 받아야 했지만 과장은 퇴근시간 임박해서야 출현하여 서류검토할 때마다 꼬투리 잡다가 논리에 밀리면 슬그머니 발빼는 식으로 결재를 지연시켰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허위출장을 달게 한 후 그 여비를 가로채는 월중행사 덕분에 막상 직원출장 때는 여비가 부족하게 되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므로 필자보다 강단 있던 閔天圭 교통시설 계장과 더 많이 부딪혔는데 書記官 승진을 코 앞에 둔 민천규 계장의 근무평정 시 최하위 점을 3년이나 긁어대어 승진을 봉쇄하는 만행도 저질렀다.(이 상황은 먼 훗날에야 알았다.)

연구대상이었던 그 과장 근황이 궁금해 알아보았더니 市 조직에서 별 대접 못 받고 변두리 부서로 전전하였으나 민주당소속 A區廳長이 모셔다 부구청장 진상해 편안한 말년 보내다 2013년에 퇴직하였음이 확인됐다. 세월이 약이었다.

ㅇ 21c부여신문

이 규 원
전 부여군 기획감사실장
21세기 부여신문 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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