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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일기] 나는 인생의 밭고랑을 다시 갈았다
[교육일기] 나는 인생의 밭고랑을 다시 갈았다
  • 배철식
  • 승인 2015.01.27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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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를 읽고-1
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딸이 한 달 만에 기숙사에서 집으로 왔다. 전공 선택을 위한 가족회의가 이루어졌고 뜻 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 삶을 바치고 싶다고 했다.

딸은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중학교 때에는 좋은 영화를 섭렵하듯 보았고 조금 더 커서는 인도, 일본, 이란, 프랑스 등 제3세계의 영화까지도 틈틈이 보았다. 그냥 좋은 취미려니 생각했었다.

딸의 이야기가 끝나자 조심스럽지만 완곡하게 나는 반대했다. 그리고 나의 논리로 내 딸이 걸어가야 할 미래의 길을 그럴듯하게 펼쳐 보였다. 그날 밤 딸과 나는 결국 교집합의 공통지향점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선물처럼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를 읽기 시작했다. 인문학적 생각의 깊이를 더해 주고 있는 정진홍 저자와 함께 떠나는 산티아고 900키로의 대순례길에 함께 발을 내딛었다.

이 책의 저자는 그리움, 상처, 죽음, 외로움, 직선처럼 달려온 당신 삶의 편린들을 성찰하고 되새기며 순례길을 통해 고통을 내려 놓았다. 작가는 서문을 통해 쳇바퀴 도는 행보를 멈추고 스스로를 ‘거대한 정지’로 몰아넣기로 마음먹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 900킬로미터는 매일매일 걸어야 하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 전체에서는 실로 ‘위대한 멈춤’이었다.

더 멀리, 제대로 인생길을 나아가기 위한 ‘뜨거운 쉼표’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한 ‘마음 검진’이 없이는 더 갈 수 없는 미래를 위해 삶의 ‘터뿌리’를 직면하고 싶어했고, 그래야 삶이 스스로 갈 길을 열고야 말기 때문이다라고 나지막하지만 강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인생의 산소는 크고 작은 도전에서 나온다’란 문장이 유난히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목련이 유난히 예뻤던 일요일 어느 봄날, 50을 향해 치닫고 있는 내 삶의 흔적을 천천히 더듬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20대 후반 나는 누구나 알 수 있는 대기업 홍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연봉도 높았고 역동적으로 살았다. 열심히 근무하고 있을 때, 대학 선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고향 군청 소속의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를 특별 채용하니 원서를 내보라는 것이었다.

작은 갈등이 있을 때, 아버지의 부름이 있었다. 채용되는 직급이 6급이고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 무엇보다 아버지께서는 고향에서 자랑스러운 아들로 살기를 간절히 바라셨다. 합격 소식에 가장 기뻐하셨던 분이 아버지셨다. 고향에서 3년을 근무하며 나는 갈등 속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여러 사정으로 큐레이터 본업보다는 군청에서 행정업무를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숫자 개념이 약한 사람인데, 문화원, 예술협회, 문화재 보수 등의 예산을 집행해야 했고 정산처리를 해야 했다. 고통스럽게 연명하는 공무원을 그만둔 이유였다. 아버지의 끈질긴 만류와 어머니의 진한 눈물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33살, 늦은 나이에 아내와 두 자식을 둔 나는 또 다른 결정을 했다. 어찌 보면 무모했지만 도전했다. 그리고 행복한 교사가 되었다.

삶에는 내 몫과 내 몫이 아닌 것이 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이나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무리 내가 원하고 가지고 싶은 것이라도 그것은 내 몫이 아닌 것이다. 내 몫만을 있는 그대로 내 것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내 삶이 아름답고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작가는 산티아고 900키로의 대순례길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게 성찰한다. 그 고행길에서 마음 속에 켜켜이 내려 앉은 먼지를 털어내면서 변화와 분투를 다짐한다. 그 다짐의 전제조건에는 눈물의 치유가 있었다. 작가는 숙변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내며 또 다른 희망의 씨앗을 품을 수 있었다.

수행길에서 만난 세르주의 부서진 손수레를 보면서 중장년층의 자화상을 떠올린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몸담은 조직을 위해 쉼 없이 달려가다 결국 동강나버린 불쌍한 인생이 망가진 손수레에 투영되어 또 한 번의 울음을 쏟아내게 만든다.

ㄹ 21c부여신문

배 철 식
백제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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