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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일기] 나는 인생의 밭고랑을 다시 갈았다?
[교육일기] 나는 인생의 밭고랑을 다시 갈았다?
  • 배철식
  • 승인 2015.03.03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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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일기-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를 읽고
요즘 힐링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듣고 있다. 상처난 영혼의 치유를 넘어 어쩜 안식까지 이어지는 뜻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늦깎이 교직생활 10년을 넘어서며 부족함을 떠나 한계를 느끼는 시간이 있었다. 교직에 막 입문한 후배 교사들을 보면서 쫓기는 마음 숨길 수 없었다. 업무 능력에서 앞서가는 후배교사들은 SNS를 통한 학생들과의 소통에도 빠르게 대응하며 촘촘한 관계 형성을 하고 있었다.

노력했다. 교과수업도 열심히 하였고, 상담시간을 만들어 마음으로 소통하려 했다. 저녁시간을 이용해 카카오스토리나 페이스북, 미니홈피, 블로그를 넘나들며 내 제자들과 소통하려 했고,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생각했다.

2012년 11월, 늘 걱정이었던 우리 반 학생이 가출을 했다.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에게 호소하고 손전화를 통해 여러 가지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시도했지만 어려웠다. 무단결석이 이어지면서 마음을 졸이며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어느 날 밤. 전화가 왔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 무조건 기다리라 했고 한시간을 운전해서 학생이 있는 곳으로 갔다.

초췌한 얼굴... 이유를 묻지 않고 야식집으로 데려갔다. 밥을 먹이고 학생의 엄마랑 통화를 시도했으나 반기지 않으시는 어머니! 어쩔 수 없이 우리 집으로 데려와서 샤워를 하고 같은 방에서 자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출을 택했던 고만고만한 사연들을 고해성사 하듯이 풀어놓는 제자! 결국 울음을 토해냈고 같이 울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부족하지만 언제든지 나에게 기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너무 아팠지만 오히려 내 마음이 치유(Healing)되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화살표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자기만의 방향 감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곧 내 안의 나침반이다’라고...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현재, 나는 젊은 교사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배울 것은 열심히 배우고 올곧은 가치관으로 내 나침반을 만들 수 있다는 작은 자신감이 생겼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작가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아니 자연을 만나면서 치유와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다. 그리고 숙변처럼 엉켜있던 울음을 토해내고 웃음의 미학을 발견한다.

‘밝게 웃는 얼굴을 만드는 것 또한 일생동안의 수행이지 않을까? 우리가 웃을 때 세상에는 또 한 송이의 꽃이 피는 것이다. 웃음의 신비한 힘을 믿자’라고 말한다. 웃음! 그것 하나만으로도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역설한다.

‘결국 산다는 것은 저마다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과 다름없다. 돈으로 권력으로, 미모로, 지식으로, 재주로 저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사라지며 모래처럼 흩어진다. 그러나 누군가를 울리는 속 깊은 감동의 흔적은 문신처럼 짙게 새겨진 것은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가슴에 남고 영혼에 남는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작가는 눈보라 휘몰아치는 피레네 산맥을 48리터짜리 아이 키만한 배낭을 메고 죽을 힘을 다해 넘었다. 레온을 지나 칸타브리아 산맥을 넘으면서는 등산화의 뒤축이 갈라져 버렸고 발바닥은 터져버렸지만 그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고통 속에서 역설적으로 작가는 행복했다.

시들해져 가던 중년의 사내에게는 그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고통과 직면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 가장 아름다운 자아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도전이었다. 그것이 진짜 행복했던 이유였으리라.

작가 정진홍은 ‘삶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길이다. 그것을 외롭다고 할 수 없다. 슬프다 할 수 없다. 그것이 인생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외로움이 아니라 만남이었다. 비바람과 눈 속을 뚫고 만나는 햇살이었다. 운명처럼 새로운 희망과 나눔을 조우하는 시간이었다. 자연과 교감하며 새로운 도전을 엮어낼 수 있는 힘을 던져준 사랑이었다.

나는 딸에게 영화인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었다. 얼마나 많은 영화인들이 열악하게 사는지를 강조했다. 최저 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그들이 청운의 꿈을 접고 할 수 없이 생계를 위해 다른 삶을 선택하는지를 주지시키고 싶었다.

지난 금요일, 대학 진학과 관련하여 딸의 담임선생님을 뵈러 갔다. 딸을 먼저 만나 저녁을 같이 먹었다. 벚꽃이 눈처럼 날리는 길을 걸으며 짧은 데이트를 신청한 딸! “아빠 마음 많이 이해했어요. 아직은 평행선이지만 아빠와 제가 서로의 입장에서 더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공통집합을 찾을 수 있겠죠. 오늘은 봄을 보면서 아빠와 걷는 것으로 충분히 행복합니다”

딸은 상쾌한 웃음을 벚꽃 사이로 날리면서 마냥 좋아했다. 그리고 팔짱을 꼈다. 딸의 희망이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꿈을 무조건 포기하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할 것이고 그 대화 속에서 나는 딸의 의견을 열린 가슴으로 들어주려 노력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무언가를 시작할 자유가 있다. 그것이 새로운 시작의 참뜻이리라. 끝이라고 생각한 것이 새로운 시작점이라. 다시 할 자유가 새 시작의 참뜻이다. 자기 미래의 주인됨을 포기하지 말고 나아가자’

교직을 마지막으로 선택할 도전과 자유가 내게 있었다. 절절하게 거듭나고 싶었던 나는 내 인생의 밭고랑을 다시 갈았었다. 우리 삶은 얼마나 빨리 걷느냐보다 얼마나 의미 깊은 한 걸음을 내디뎌 나가 중요하지 않을까?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흩날리는 벚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ㅊ 21c부여신문

배 철 식
백제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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