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성(自性, 본래부터 타고난 고유한 성질)이 없으니 태어나면서부터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깨달음의 씨앗을 품고 태어났지만 인연을 잘못 지으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인연을 잘 지으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고기는 물을 보지 못하고, 인간은 공기를 보지 못하고, 깨달은 자에게 공(空)이 보이지 않는다. 즉 깨달음을 얻으면 공(空)조차도 모두 다 삼켜버린 것이니 깨친 자에게는 따로 공(空)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지극히 청정하면 빛이 통과·투과한다. 그래서 빛이 내 몸을 뚫고 지나갈 정도가 되면 염라대왕이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내 몸이 보이지 않으니 저승으로 데려갈 수가 없게 된다. 곧 죽음이 없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로다
산은 물이고 물은 산이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첫 구절은 수행을 시작하기 전 단계 0°
둘째 구절은 수행이 무르익은 단계 120°
셋째 구절은 깨달음이 거의 완성되가는 단계 240°
넷째 구절은 깨달은 단계 360°
첫 구절과 넷째 구절은 같다. 즉 0°와 360°는 결국 만나게 된다. 하지만 첫 구절이 사람이 태어나서 걸음마 단계라고 한다면 넷째 구절은 나이 들어 생로병사를 직·간접 경험 후에 깨달음을 얻는 단계이다. 360°에서 0°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갓난 아이가 어른들의 스승인 것이다.
‘봄을 찾으러 집을 떠나 온 산을 헤매고 다녔지만 봄을 찾을 수 없어, 터벅터벅 집에 돌아와보니 뜰 앞에 매화향기 가득하더라’는 성인의 말처럼 내가 객관적인 남이 되어서 양심의 눈으로 나 스스로를 바라봐야 한다. 깨달으면 우주 만물이 모두 나의 집이다. 삶 속에서 죽음을 볼 줄 알아야 하고, 젊음 속에서 늙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할’(喝)을 외치고, 주장자를 내리치는 것은 무상(無常·항상 그대로인 것은 없고, 오직 변해갈 뿐)의 불이 쉬지 않고 계속해서 타고 있는 불타는 집에 갇혀 있는 우리들이 그 불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소리치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원초적 진실상(우주 만물의 진리)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무상한 세상살이라는 이 꿈 속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이 생을 마감한다면 1% 확률도 안 되는 사람 몸 받은 보람이 없다. 생로병사를 벗어나 영원한 자유를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박 철 신 충남의사협회 부회장 부여현대내과 원장 21세기 부여신문 독자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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