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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광장] 장날마다 규제개혁타령
[목요광장] 장날마다 규제개혁타령
  • 이규원
  • 승인 2015.04.21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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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체험기 12>

1997년 12월 18일 제 15대 대통령선거 결과 김대중(1032만표·국민회의) 이회창(993만표·한나라당) 이인제(492만표·국민신당) 권영길 신정일 김한식 허경영의 순서로 득표하여 DJ가 대통령 출마 네 번째 도전(26년) 끝에 당선될 수 있었다.

DJ는 정치적 대척점(對蹠點)에 있던 JP(자민련)에게 ‘내각책임제’라는 미끼로 잠정적 동지로 만들고, 이인제(국민신당)선생을 도우미 삼아 난공불락 철옹성에서 파티 준비하던 이회창 후보를 뭉갤 수 있었다.

DJ가 JP를 國務總理로 임명했으나, 野大 한나라당 횡포로 대통령취임 6개월이 지난 1998년 8월까지 ‘署理 꼬랑지’를 달게 하였다. JP는 DJ가 ‘내각제’로 사기 치는 것 감지했겠지만 2000년 1월에야 발길 돌리는 모습을 감상하게 하였다.

꼼수 써서 탄생한 DJ정부도 개혁이라는 명분을 걸고 공무원 정년단축과 조직 축소를 단행하였다. 대전市도 건설국과 교통국을 통합하며 필자가 몸 담았던 교통시설과를 날리는 바람에 내무국 민원봉사실에 신설되는 規制改革係로 강제 이주하게 되었다. 정부는 규제개혁을 추진하기 위하여 중앙부처에 課를 市道에 담당(係)을 신설 하였다.

광역市의 규제개혁계 정원은 타자수 까지 4명이었다. 정책사업을 수행해야 하므로 엘리트群에 속하는 인재를 배치하라는 지침이 시달됐지만 창설 업무가 힘든 것 잘 알기에 직원들은 기피하고 여우같은 부서장(部署長)들은 말썽부리는 직원 팔아넘기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배치된 직원들과 며칠 간 일 해보니 市사업소에서 올라온 6급 서씨는 자기 맡은 일도 감당 못하면서 市政課에서 밀려온 7급 김철승(바둑2급)씨에게 군기잡기를 해대어 사무실 분위기만 흐려 놓았다.

그러나 김철승씨은 필자의 기획의도를 잘 읽어 내는 것 같아서 ‘室長과 협의하여’ 거리적 거리는 6급 서씨를 민원계에 넘겨주었다. 그 후 김철승은 매일 밤 12시까지 필자와 야근했지만 불평없이 신명나게 일하였다.

2개월 동안 전체 법령을 훑어 권한 위임된 規制條項과 市조례에 있는 규제조항 전체를 파악한 후 ‘심사대상 목록’을 정리하는 등 심사준비를 정밀하게 하고 ‘규제개혁심의위원회(위원장권선택부시장)’를 열어 98건을 폐지로 결정하고 해당 조례규칙을 고치는 절차까지 11개월 만에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부평가결과 16개市道 중에서 1위 성적으로 기관표창을 받아 市長에게 진상 할 수 도 있었다.

1998년 DJ정부부터 2015년 현재까지 17년 동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규제개혁을 정부과제로 정하고 목청껏 ‘개혁타령’ 외쳐 보았지만 아직도 그 타령 이다.

규제개혁은 국민 불편을 덜어주고 경제활동을 지원하자는 게 목표이지만 정부 바뀔 때마다 업무 파악도 제대로 못하는 1년짜리 장관들이 국회의원 출마용 전시행정 펼치는 뒷전에서 30년 묵은 늑대 관료들의 권한(규제)확대 전횡은 막기 어렵다.

규제개혁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추진 부서를 행정 부처마다 ‘監査나 人事부서’에서 맡도록 대못질 해놓고 監査院에서 기관 평가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제도를 만들지 못하는 한 돌아오는 장날에도 고장난 유성기에서 ‘규제개혁타령’ 은 또다시 울려 퍼질 것이다.

ㅇ 21c부여신문

이 규 원
전 부여군 기획감사실장
21세기 부여신문 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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