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아침] 조선왕조 마지막 황태자 서거 45주년을 맞이하며
[목요아침] 조선왕조 마지막 황태자 서거 45주년을 맞이하며
  • 이존길
  • 승인 2015.05.19 12: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왕조 오백년 마지막 황태자 이은(李垠) 영친왕이 1970년 5월 1일 한 많은 역사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45주년을 맞이했다. 황태자는 조선왕조 26대 고종황제의 셋째 왕자이며 첫째 왕자 순종이 세손이 없는 상태로 27대 왕위에 오르자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황태자 이은은 고종 광무원년 10월 20일 덕수궁에서 엄비의 소생으로 태어났다. 이 시기 조선은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어 조정에서는 친일파와 반일파가 대립했고 시중에서는 매국노 송병준, 이용구 등이 조직한 일진회와 애국 단체와의 싸움이 치열하였다.

고종 광무11년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 회의에 이준을 밀사로 보내 일본의 침략상을 세계 만방에 호소하려던 고종황제의 계획이 성공하지 못했고 을미년 가을 명성황후가 시해당했다. 을미사변으로 고종황제는 러시아 공관에 피신하고 있던 중 다음 해 엄 상궁을 귀인으로 맞이하여 영친왕자를 낳았다. 명성황후의 소생이 순종이고 둘째 왕자 의친왕은 귀인 장씨 소생이다.

헤이그 밀사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강압에 의해 고종황제는 순종에게 왕위를 양위하게 되고, 왕위에 오른 순종은 세손이 없어 의친왕을 태자로 책봉하여야 하나 뒤를 미는 신하가 없고 친일파에 의해 11세가 된 영친왕을 황태자로 책봉하게 된다.

영친왕이 황태자로 책봉되자 일본인 이등통감이 “황태자 전하는 황위를 계승할 막중한 분이시니 군왕으로서의 자질을 높이고 견문을 넓히심이 마땅하니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가야만 한다”고 하였다. 고종황제는 물론 어머니 엄비도 어린 왕자를 일본으로 보낼 수 없다고 거절하였으나 이는 유학교육을 시킨다는 명분 하에 황태자를 인질을 삼기 위한 일본의 고등술책이었다.

고종황제가 거절을 하자 일본 명치는 이등박문에게 칙서까지 내려 영친왕의 신변보호 책임자로 볼모로 데려가고 일본에서는 이왕 전하라고 일본의 황족보다 더 예우했다. 영친왕이 11세 때 황태자로 책봉되고 일제의 강압에 의해 서울역을 떠나던 날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보내야만 했다. 이때 특히 슬퍼하던 사람이 영친왕과 이미 약혼을 한 규수 민영돈의 딸 민갑완 등 일가족이었다.

일본으로 끌려간 영친왕은 동경에서 완전한 밀봉교육을 받았고 면회가 제한되었으며 고국에서 오는 편지 역시 검열을 하였다고 한다. 영친왕은 부모님께 안부 편지를 쓰면 피봉을 뜯어보기 때문에 매일 아침 세수를 한 후 단정히 앉아 엽서에다 문안(問安) 두 글자만을 적어 서울에 띄우기 시작하였다.

매일 덕수궁에 배달되는 엽서를 부모님은 자식이 흘린 눈물 자국을 보며 울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 후 어머니 엄비는 볼모로 보내진 영친왕을 다시 보지 못하고 1911년 7월 20일 세상을 떠나게 된다.

영친왕은 일본에서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황족인 방자 여사와 강제 결혼을 하게 된다. 이 두 분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대동종약원 전 총재를 지낸 이구 황세손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영친왕을 귀환시켜야 한다고 하였으나 이승만 대통령 재임 중에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63년 56년 만에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환국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 영친왕의 병세가 무거워 김포공항에서 앰뷸런스로 성모병원에 입원을 하고 식물인간의 몸으로 1970년 4월 28일 방자 여사와의 결혼 50주년 금혼잔치를 치룬 다음 5월 1일 7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고종황제의 막내딸 덕혜옹주가 일본인에게 강제로 시집을 가서 희생을 당했고, 영친왕의 약혼녀 민 규수(閨秀)가 한 평생 수절하는 희생을 감수하기도 했다.

영친왕의 장례는 대동종약원에서 영친왕의 시호를 의민황태자로 하고 궁중의 국장절차에 준하는 9일장으로 하였으며 낙선재의 빈소에는 전국 각처에서 10만명의 조문객들이 모여 들었다. 그러나 조선왕조 오백년을 마감하는 황태자의 마지막은 너무나 외로웠다. 낙선재 발인식에 부여군 분원 임원들도 참석하여 조문을 했다. 장의행렬은 낙선재를 떠나 창경궁, 돈화문, 종로3가, 동대문을 거쳐 영원(英園)까지 이어졌다.

계속되는 당파싸움, 36년간의 일본 통치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광복된 지 25년 만에 그리던 고국 땅을 밟았으나 말 한마디 못하고 인질의 마지막 조선왕조의 황태자가 세상을 떠나는 장의의식에 참석한 지 45주년의 해를 맞아 필자는 한 많은 황태자의 명복을 빌고자 한다.

ㅔ 21c부여신문

이 존 길
전 부여군재향경우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