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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현대인과 마음수행
[독자기고] 현대인과 마음수행
  • 박철신
  • 승인 2015.05.26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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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마음, 마음이여 알 수 없구나.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으니…」 달마의 싯구이다. 여기에서 마음이란 무엇일까? 마음이란 참된 나 (진실된 나, 나의 참된 성품)라는 거울을 통해 비춰보았을 때 아상(我相)과 업식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아상이란 타인과 나를 구별 짓기 위해 인위적으로 각 개인에게 붙여진 이름표와 주민번호 등의 표식을 그것이 진짜 ‘나’라고 생각하는 착각을 말한다.

업식이란 수십억 번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며 내 영혼에 쌓여진 착하고, 악한 내 전생의 성적표를 뜻한다. 하지만 마음으로 마음을 깨치고 나면 그 마음마저 버려야 깨달음이 완성된다. 진리의 눈으로 보면 하늘이 땅이고 산이 바다이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내 마음만 바꾸면 이처럼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이다. 진리를 찾으러 온 세상을 헤메고 다녀보았자 마음 밖에서 진리를 구할 수 없음이다.

나의 스승은 누구인가? 나를 항상 객관적인 타인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는 나의 바른 마음인 ‘참 성품’이 나의 스승이다. 많던 적던 참 성품은 누구에게나 있다. 처음 수행할 때는 선과 악을 구분하여 거짓됨을 없애고 참됨을 구하게 된다. 하지만 확연히 깨치고 나면 참과 거짓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왜냐하면 참과 거짓은 인간의 잣대로 잰 것일 뿐 본래 서로 구별되어 지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그저 그런 것(如如)이다.

마치 숨을 들이쉬려고 내쉬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숨이 쉬어지는 것처럼 심장의 박동을 멈추려고 하거나 쉼 없이 계속 뛰게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살아있으면 뛰고 죽으면 멈추는 것처럼 자연스러움 속에 진리가 있다.

천재지변과 자연재해가 발생했다하더라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듯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법과 도덕의 잣대는 임시방편의 사회적 약속일 뿐 진리와는 근본이 다르다. 인간의 고정된 관념과 생각을 배제한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무위자연 그대로가 진리의 모습이니 인간의 알음알이로 진리라는 완벽한 그림에 사족을 그려 넣지 말아야 한다.

수행을 하면 좋은 점들이 많다. 마음을 비우니 공수래 공수거인 것처럼 욕심낼 것이 없어져 평화스럽고 순수해지니 작은 것에도 기쁘고 고마워 할 줄 아는 감성이 발달되고, 남을 돕는 이타행을 하게되니 자연스레 리더쉽이 향상되고, 마음마저 버리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져서 어떤 일을 해도 겁내지 않는 자신감이 생겨나고, 구하는 마음이 없어지니 화낼 일도 없어져서 남과 다툴 일이 없어지니 덕이 쌓인다. 또한 수행을 하면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남을 위할 줄 아는 이타적인 마음이 일어나니 철이 빨리 들 수밖에 없다.

나뭇잎 하나, 흙, 먼지, 똥… 어느 것을 가지고라도 깊이 사유해보면 그 속에 만물의 진리가 녹아있다. 세상 만물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항상 우리에게 진리의 법문과 설교를 하고 있다. 수명이 짧았던 과거엔 육체가 정신을 감당하지 못했다. 하지만 수명이 길어진 요즘엔 정신이 육체를 리드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인에겐 마음 수행이 더욱 더 필요한 때이다.

ㅣ 21c부여신문

박 철 신
충남의사협회 부의장
부여현대내과 원장
21세기 부여신문 독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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