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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6.25전쟁의 정사관을, 10대 문답풀이로 계도한다
[특별기고] 6.25전쟁의 정사관을, 10대 문답풀이로 계도한다
  • 최갑석
  • 승인 2015.06.23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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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65주년 기념
1. 6.25의 호칭이 구구한데 이는 어느 것이 옳은가?

- 6.25동란, 사변, 내란, 동족전쟁, 한국전쟁, 조선전쟁, 동족상잔, 병란, 군란, 통일전쟁, 해방전쟁, 대리전쟁 등 다양하고 구구한 호칭을 분별없이 왜곡, 협의, 축소변질, 주체성 정의전쟁사관의 개념에서 ‘6.25전쟁’으로 통일 호칭하기로 결정했다.

2. 6.25전쟁은 언제 시작하여 언제 끝났나?

-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04시를 기해 북한공산군이 38도선 군사분계선을 기습, 돌파, 공격함으로써 처음 전투는 군대가 시작하였으나, 내종의 전쟁은 국민이 하게 되었고, 동서세계의 국제대전으로 확대되어 1953년 7월 27일에 정전, 재대치로 6.25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고 65년째 계속되고 있다.

3. 6.25전쟁은 남침인가, 북침인가?

- 6.25전쟁은 소련의 세계공산화전략의 일환으로, 먼저 유럽침공 예상을 뒤엎고 한반도를 적화통일하기 위해 중국과 소련의 군사지원 합작으로 기습남침을 감행한 것은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 선언이 한반도를 제외한데 자극되어 선공하였으나 실패, 낙동강 전선에서 집단 투항하고 패배하였다.

4. 6.25전쟁에 참여한 나라는 몇 나라인가?

- UN안보리 결의로 자유우방 16개국이 참전하고, 전쟁당사국인 남·북한과 북한지원 참전한 중공 및 소련, 그리고 군사지원한 5개국, 물자지원한 42개국 등 모두 67개국이 참전함으로서 전사상 최다 국가가 참전하고도 종전처리 못한 불명예를 기록했다.

5. 6.25전쟁의 총 피해는 종별로 얼마인가?

- 3년 2개월 동안 20개국이 교전한 철갑탄 전쟁의 인명 피해는 약 600만명으로, 피해 순위는 한국 250만, 북공 200만, 중공 100만, UN군 15만, 기타 등이며, 전비 204억불(미국 전담), 천만 결핵환자, 천만 이산가족 발생과 삼천리 조국강산은 초토화되어 전후 생활고는 극심했다.

6. 6.25전쟁 때 국군과 기타 손실은 얼마인가?

- 국군의 총참모장 채병덕 장군, 김백일 군단장을 비롯하여 전사 13만 7천여명, 부상 45만명, 실종 24,495명, 포로 8,343명 등 총 손실은 62만여명이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국군전사자의 90%가 삼천리 강산 이름 모를 산천방곡의 땅속에 묻혀 아직도 발굴 못한 국군의 유해가 13만여명의 원혼이 구천을 맴돌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괴뢰군 점령지역 내 또는 패주 시 자행된 수많은 비전투원인 민간인 인민재판, 학살, 납치, 행방불명, 강제동원, 노무자, 학도의용군 등 수많은 희생과 전쟁고아 10만, 전쟁미망인 40만, 가옥파괴 52만동 등 무고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추모하고 연민의 정을 느껴야 할 것이다.

7. 6.25전쟁 때 UN군 손실은 얼마나 되나?

- 전사 40,670명, 부상 94,280명, 실종 4,116명, 포로 5,815명이며 주요 지휘관의 전사는 미 8군사령관 워커 대장, 10군단장 아놀드 소장과 24사단장 딘 소장이 포로되고, 미 장성의 아들 32명이 전사하였으며, UN군 총참전 연병력은 178만명에 달한다.

8. 6.25전쟁 때 미국의 군사지원은 얼마나 되나?

- 6.25 당시 미국 군사력의 약 70%가 동원 투입(정규 사단 10개 사단 중 7개 사단이 참전)하고, 미 5공군과 미 7함대가 100% 참전하였으며, 전비 204억불(불변가) 전담과 6.25전쟁 16개 국군에 대한 군수지원 전담, 전투장비, 탄약, 식량, 피복 및 장구, 의료 등 막대한 전쟁지원이다.

9. 6.25전쟁의 주역과 전쟁 영웅은 누구인가?

1)용전사투로 지연전 한 국군이다.
2)전선을 누비며 진두지휘한 영용한 이승만 대통령이다.
3)공산침략군을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추방하고, 압·만 국경선까지 진격한 UN군사령관 맥아더 원수이다.
4)낙동강 최후 방어선에 참전지원한 학도병, 청소년, 노무자, 부녀자, 첩보원 등 무명용사이다.
5)휴전 중 전력증강, 국토건설, 산업화와 민주화, 자주국방태세확립, 부국강병을 달성한 박정희 대통령이다.

10. 6.25전쟁의 패인과 승인은 무엇인가?

- 패인은
1)정보, 작전의 부실
2)국가비상동원법의 부재
3)병력과 장비의 열세
4)상대적 전투력의 구무일유(9無1有)
5)비대칭전력인 탱크와 대포, 심리전 무기 등이다.

- 승인은
1)국군의 용전
2)국민 참전
3)UN군 참전
4)국군 최고통수권자의 리더십
5)반공자유수호 전선에 자유세계의 참전이다.

[결론] 6.25전쟁에서 군사적으로, 국민적으로, 국가적으로, 교훈을 얻고,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1)군사적으로는 자주 국방을 위해서는 적정한 병력과 전투방비의 유지, 적보다 강한 교육훈련, 상대적 전의의 우월이다.
2)국민적으로는 일단 국가 유사시는 국민개병정신 전력을 발휘하면 900만의 향군만 총 동원하여도 6.25전쟁 때의 비전투원 손실은 막을 수 있다.
3)가.국가적으로는 대한제국이 망한 것과 대한민국이 침략 당한 것도 모두 국방의 소홀에 있었으니 유비무환을 위해 국가비상기획위의 부활상설과 국민총력안보관 정립 및 총 동원법의 훈련과 발동 기능이다.
나.북핵도전위협은 통일 후 적기까지 한미연합사의 존속으로 억지하여야 한다.
다.한반도 비핵화, 평화통일정책을 목표로 하는 정부의 통일대업주도는 강력한 군사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현철한 정치와 안보 외교순방으로 주요 열강국들과 UN이 모두 찬양 지지하였으나, 당사자인 북공과 국내의 종북도당들의 반기(反旗)는 반통일, 반국가, 반민족적 여적죄를 범함으로 척결돼야 한다.
라.끝으로 6.25전쟁 중 특기할만한 국면전환의 극적상황과 전사연구상 재조명으로 기금보다 훨씬 격상, 승화로 교훈 삼아야 할 전례로는
①수도 서울이 3일만에 함락된 도시방어의 취약요소는 무엇인가?
②초전에 38선의 전 전선이 일시에 붕괴됐는데, 유독 춘천지구전투만 성공적인 방어로 적 2사단을 섬멸한 것
③낙동강 최후방어결전에서 적 15사단 증강을 완전 섬멸로 인천상륙작전을 가능케 한 발판을 만든 8사단의 전공은 무엇인가?
④낙동강 최후방어선에 참가한 구국의 역군으로 나이 어린 학도병들, 피난 중인 청소년들, 나이 많은 노무자들, 연약한 부녀자들, 숨은 공로자 첩보원 등이 기진맥진한 국군을 일으킨 국민참전으로 대구, 부산을 사수하여 북진의 발판이 된 의병이요, 무명용사들의 희생에 대한 국가보훈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⑤국군과 UN군이 압·만국경선까지 도달하여 통일을 목전에 둔때 대량 중공군의 참전 개입을 모르고 포위 당하여 막심한 피해를 입고 37도선까지 후퇴하게 된 것
⑥국군의 전사상 중공군의 포위망 속에서 장진호의 동계전투는 상처투성이의 영광뿐인 미 해병사단의 감투정신을 본받아야 한 것
⑦한반도 통일을 외면한 휴전협상을 반대한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를 석방함으로써 반대급부로 한미동맹을 체결, 지금까지 공산군의 재침 억지로 말미암아 반공자유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
⑧소련의 세계공산화 전략인 무력침공은 6.25전쟁의 실패로 결국은 자본주의를 장사 지내려던 공산주의가 먼저 붕괴함으로써 자유민주세계의 천지가 된 것
⑨6.25전쟁의 승인이 된 전의평가를 병력수, 포로수, 보급량, 심리전과 국민참전에서 구한 것
⑩6.25전쟁 영웅을 세우고 기리고 추앙할 줄 아는 전쟁문화와 보훈문화를 창달함으로써 애국심과 호국정신을 앙양시켜야하는 역사적 사명 등 10개항이다.

ㅔ 21c부여신문

벽암 최갑석
참전노병 성우회 안보평론위원
예비역 육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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