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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마음을 여는 열쇠, 경청
[교육단상] 마음을 여는 열쇠, 경청
  • 김애리
  • 승인 2012.04.25 1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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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도서실에서 책 정리를 하다가 ‘(마음을 여는) 경청 기술’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바쁜 와중에 스치듯 지나간 제목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한동안 마음 속에 그 책 제목이 떠나질 않고 남아 있었다. 다시 그 책 제목을 떠올리게 된 건 얼마 후였다.

3월 5일에 처음으로 아이들과 만나 함께 보내 온 시간이 어언 한 달. 어느 정도 학교에 적응도 했고, 많은 아이들과 교감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나와의 사이에 선을 그어 놓고 그 선을 넘어 오지 않고 있는 아이들 역시 없지 않았다.

그 중 가장 눈에 띠게 수업 태도가 좋지 않았던 한 아이. 그 아이의 첫 인상은 말 그대로 ‘무표정’이었다.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다른 아이들과 웃을 때, 그 아이는 다소 냉소적인 표정으로 내 수업을 ‘지켜 보고’ 있었다.

‘왜 저 아이는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그저 관찰자로 수업에 임하는 것일까’, ‘왜 저 아이는 내 수업을 ‘방관’하고 있는 것일까’. 나름 아이들과 소통하며,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던 내게 그 아이의 그 표정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충격은 나 스스로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졌다. 그 아이의 태도를 바꿔보고 싶었다. 그 아이가 내 수업 시간에 다른 아이들처럼 웃으면서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그렇게 새로운 도전을 해 나갔다.

나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 있은 지 얼마가 지났을까. 이제 그 아이가 있는 반으로 수업을 갈 때 나를 가장 환영해 주는 아이가 그 아이가 됐다. 나와 그 아이 사이에 이제 ‘유대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이 생긴 것이다. 그럼 그 아이의 마음을 열어 준 바로 그 열쇠는 무엇일까?

그 아이가 내게 마음을 열 수 있기를 바라며 내가 끊임없이 실천한 것은 ‘경청’이었다. 그 아이가 하는 말을 모두 귀 기울여 들어 주었다. 친구와 밥을 먹은 일, 집에서 본 드라마 이야기, 친구 이야기……. 이야기의 소재가 무엇이든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거기에 대해 비판을 하거나, 말을 끊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주며 들어주기만 했다.

듣고, 듣고, 또 듣고. 하루, 이틀, 사흘…. 나는 그 아이에게 많은 말을 한 적이 없지만 그 아이를 만날 때마다 그 아이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어 주었고 그 아이는 자신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주는 나를 보며 점점 마음의 문을 열어 갔다. 내가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그 아이 스스로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아이는 지금 누구보다도 나를 좋아해 주고, 나를 응원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이제는 수업 시간에도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활발히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이 되었다. 나는 이 기분 좋은 변화의 열쇠를 ‘경청’으로 설명하고 싶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그 사람과의 벽을 허물어 버리고 끈끈한 관계를 맺어간다. 당연하듯 보이는 이 진실이 바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는 열쇠라면?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의 주인공 ‘모모’는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여자 아이였다. 그러나 ‘모모’는 마을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주곤 했다. 그 비밀은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능력에 있었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 능력으로 인해 ‘모모’가 많은 친구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반성의 계기가 되며,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는 것이다.

‘들어주기’만으로도 누군가의 마음을 열 수 있다는 사실!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만날 때 언제나 기억하자. 그 대상이 누구든,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dd 21c부여신문

김 애 리
부여여자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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