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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특별기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 법륜스님
  • 승인 2012.04.25 1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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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요”
‘스님 말씀 듣다 보면 제가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미워하는 사람에게 참회기도를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남편에게 참회의 마음이 안 생깁니다. 남편의 입장이나 처지가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새 원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참회의 마음이 일어날까요? 이렇게 남편을 미워하면서 기도해도 되나요?’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내 마음이 괴롭다. 마음 넓고 점잖고 고상한 사람이 되기 위해 참회하라는 게 아니다. 내가 참회하면 내가 괴롭지 않다. 그래서 내가 참회하는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만나는 사람이 열 명인데 그 열 명을 다 미워한다면 그건 지옥이다. 열 명을 만나는데 열 명을 다 좋아한다면 그럼 극락이다. 같이 사는 남편을 미워하면 미워하는 본인이 제일 괴롭다. 남편이 담배를 피우건, 술을 마시건, 늦게 들어오건, 그건 남편의 인생이다.

해가 지고, 구름이 일고, 비가 오는 것을 미워하면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건 그저 자연현상일 뿐이다. 해가 지면 해가 지나 보다, 비가 오면 비가 오나 보다, 이렇게 날씨를 시비하고 미워하지 않듯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괴롭지 않다. 그런데 그걸 일찍 들어오라든지, 술 먹지 말라든지, 담배 피우지 말라든지, 나만 쳐다보라든지, 그렇게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괴로워서 못 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관점, 괴로움이 생길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남편을 고치려고 부처님께 빈다. 그러고는 부처님이 자기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실망한다. 이건 부처님이나 하느님한테 달린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자기의 어리석음에 있다.

요즘 시대에는 남편이 마음에 안 들면 안 살아도 된다. 굳이 마음에 안 들면 ‘안녕히 계십시오’하면 되지, 남편을 미워하지는 말자. 살고 안 살고는 내 자유이다. 그러나 남편을 미워하는 건 어리석은 행위이다. 같이 살려면 미워하지 말아야 되고, 같이 안 살 거면 미워할 이유가 없다. 미워하는 건 나의 어리석음에서 온 거지 상대의 행위 때문에 온 게 아니다. 그래서 미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미워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미워진다면 그건 현실이다. ‘담배를 끊고 싶은데 담배만 보면 자꾸 피우고 싶어집니다’랑 똑같은 것이다. 미워하지 않으려고 해도 남편 얼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워지듯, 남편도 술 안마시고 싶지만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마시게 되고, 외박 안 하고 싶은데 친구랑 어울리다 보면 외박하게 되고, 딴 여자 쳐다보지 않으려 해도 보기만 하면 좋아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 삼자가 보면 ‘참 바보 같다’라고 생각하는데 본인은 안 된다. 그래서 인생이 괴로운 것이다.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이게 상대 때문이 아니고 내 습관 때문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담배 안 끊어지는 건 내 습관 때문이지 담배 탓이 아니다. 나는 안 피우려고 했는데 같이 있는 친구들이 피워 나도 피웠다는 식의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자기 습관 때문에 그렇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남편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남편이 또 이러 저러해서 미워하게 됐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니 자기 인생 자기가 결정하면 된다. 그냥 미워하고 괴로워하면서 살고 싶으면 그렇게 살면 된다. 하지만 내 인생을 행복하게 바꾸려면 ‘그 사람은 그 사람 인생을 사는 거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된다.

자기가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지키지 못한다. 약속을 못 지키는 것도 현실이다. 자기도 안 되겠다 싶어 약속은 했지만 그게 안 지켜지는 게 또 그 사람의 업이다. 나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어떻게 남을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나? 그러니 그렇게 안 되는 나를 보면서 남을 그대로 인정하면 갈등이 적어진다. 갈등이 적어지면 가정이 편안해 진다. 또, 설령 나중에 헤어지게 되더라도 갈등이 없는 상태에서 헤어져야 후회가 없다.

남편이 미울 때 이걸 이치적으로 분석해 보면, 남편은 그렇게 행동하고 말할 뿐이다. 어릴 때부터 습관 들여진 그 스타일대로 생각하고, 그 스타일대로 말하고, 그 스타일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산에 가면 큰 나무도 있고 작은 나무도 있고 온갖 나무가 있는 것처럼, 사람은 다 자기식대로 사물을 보고 평가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우리 남편만 그런 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렇고 나 또한 그렇다. 그럴 때 ‘그냥 그렇구나’ 이렇게 내 생각만 탁 내려놓으면 남편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거기에 내 습관과 온갖 이해관계가 얽혀 ‘저러면 된다, 안 된다’라 판단하면 내 마음에서 분노가 일어나고 짜증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이치를 모를 때에는 ‘너 때문이야’라고 하지만 이런 이치를 알면 이것이 내 업식에서 일어난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미움은 상대방의 말과 행위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 내 업식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이게 옳다든지, 그르다든지 내 관점을 고집하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모르고 기도를 하면 화가 일어날 때 부처님한테 ‘저 사람 좀 고쳐주세요’하고 기도하지만, 원리를 알고 기도를 하면 ‘아까 좀 다퉜는데 또 내 관점을 고집했구나’하고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남편이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걸 보고 짜증을 내거나 미워하는 건 내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절을 하면서 ‘아이고, 내가 또 내 생각에 사로잡혔구나’ 뉘우치며 참회하면 남편을 미워하지 않게 된다. 그런 원리를 알고 참회기도를 해야 한다.

dd 21c부여신문

법륜스님
평화재단 이사장
수행공동체 정토회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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