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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섬망, 치매와 닮은꼴 다른 모습
[의학칼럼] 섬망, 치매와 닮은꼴 다른 모습
  • 정대성
  • 승인 2015.09.08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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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버지는 평소 밥도 잘 드시고, 허리가 아프셔서 일은 못하셔도 마실도 나가시고, 마을회관에 가시면 동네 어르신들과 이야기도 잘 하시던 분이었어요. 어찌나 꼼꼼하시던지 가족들 생일은 절대 잊지 않고 전화하시던 분이었는데... 요즘 들어 몸이 좀 안 좋다고 하시더니 며칠 전부터 이상한 헛소리를 하시고, 잘 움직이지도 않으시고, 밤에 자꾸 어디 가야된다고 소리치셔서 할 수 없이 119 불러 병원으로 모시고 왔어요.”

위의 이야기는 필자가 직접 응급실에서 만난 환자의 보호자가 하였던 증언을 재구성한 실제 사례입니다. 보호자는 아버님이 치매같다고 하여 걱정되서 병원으로 모시고 왔다 하였습니다. 과연 아버님은 치매일까요? 치매가 아니면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정답은 ‘섬망’입니다. 치매는 위의 아버지처럼 며칠 전부터 시작된 헛소리가 아닌 수 개월 혹은 수 년 간에 걸친 점진적인 기억력 감퇴, 인지기능 저하입니다. 물건을 둔 곳을 까먹거나 길을 잃거나 날짜를 기억 못하거나 사람을 못 알아보는 증상이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심해지는 것이 치매의 증상입니다.

치매에서의 의식은 초기에 정상 수준이며 며칠 사이에 급격히 악화되는 양상은 아닙니다. 물론 후기 치매는 위의 사례처럼 밤에 잠을 안자면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증상을 보이기도 하지요. 섬망은 헛소리섬譫 , 망령될망 妄, 영어로는 delirium이라고 하며, 정신과에서는 급성 의식 혼탁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례처럼 ‘급성’으로 며칠 사이에 혹은 몇 시간 이내에 발병하는 것이 섬망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의력, 집중력, 지각장애가 생기며 착각, 환각, 해석착오 같은 외부 환경의 인지왜곡이 나타납니다.

즉 지금이 어디고 언제이며, 밤인지 낮인지, 집인지 혹은 병원인지에 대한 정보가 잘못 해석되어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면 혹은 과수면이 생길 수도 있으며 이치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각성 상태가 과다되어 진땀, 두근거림, 안면홍조, 오심, 구토, 고열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으며 불안, 우울 및 분노 등의 감정조절장애와 같은 정신과 증상도 동반됩니다.

섬망의 원인은 신경전달물질의 한 종류인 아세틸콜린의 저하로 인해 의식수준의 장애가 생기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영향을 미치는 인자로는 전신감염 및 저혈당과 같은 대사장애 등의 내과적 질환이 있습니다.(위에 기술한 사례에서 아버님은 실제 전립선 비대증을 앓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소변을 자주 못보고 요로감염이 생기면서 악화되어 섬망이 발생한 것입니다.)

또한 수술, 심한 외상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으며 약물 혹은 음주에 의해 또는 약물 혹은 음주의 금단으로 인해 생기기도 합니다. 뇌졸중, 뇌외상, 뇌종양 및 뇌수막염도 중요한 원인입니다.

섬망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인을 찾아내고 치료하는 것입니다. 섬망이 치매와 구별되는 중요한 점은 치매는 점차 진행하는 비가역적 질환이지만 섬망은 악화 후 원인이 교정이 되면 다시 정상으로 회복이 가능한 가역적 질환이라는 것입니다.

원인으로 지목된 내과적 질환, 외상, 뇌질환, 중독이나 금단에 대한 적절한 원인적 치료를 하면서 섬망이 악화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인을 제거해 주어야 합니다.

입원 후 익숙한 자극이 지속될 수 있게 가족이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하며 너무 시끄럽거나 너무 조용한 환경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이 어디이고 날짜나 시간은 언제인지에 대해 자주 물어보고 답해주는 자극이 필요합니다.

중환자실에 오래 있는 환자가 섬망 발생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에 대한 자극을 최소화하면서 원인질환을 신속하게 치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섬망 증상이 심하여 통제가 어려운 경우 항정신병 약물로 증상 조절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섬망은 급성의식혼탁으로 생기는 기질적 정신질환으로 원인이 존재하며 급성으로 발생하고 의식수준이 변하며 각성 상태가 변화할 수 있고 원인을 교정할 경우 경과가 가역적인 질환이라는 점이 만성적이고 의식수준이 변하지 않고 비가역적인 경과를 보이는 치매와 구별됩니다.

섬망 증상이 나타나면 원인질환이 반드시 동반되어 있으므로 원인을 찾아 치료함과 동시에 섬망 증상을 안정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가 필요합니다.

ㅇ 21c부여신문

정 대 성
건양대학교 부여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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