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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청산이 말을 하더냐?
[독자기고] 청산이 말을 하더냐?
  • 박철신
  • 승인 2015.10.13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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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초침이 저승사자처럼 똑딱똑딱 내 목숨을 가져가려고 자꾸 재촉한다. 우리가 어리석어서 갈 길을 잃었으니 이리저리 헤매고 허둥대다 한순간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다.

이것이 이생에서의 인연이 끝나는 죽음이다. 생과 사를 따르지 않는 이치, 오고 감이 없는 영원불변의 진리는 무엇인가? 이 화두가 마음공부의 동기와 목표이다.

갓 태어난 새끼 사자를 굶길 수 없어, 갓 태어난 새끼 영양을 사냥하는 어미 사자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같은 하늘의 별을 두 곳에서 바라보는 것 일뿐인데 도시에서 보다 시골에서 보는 밤하늘의 별은 유난히 밝고 또렷하게 반짝인다.

그 이유는 도시의 밤엔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이 너무 밝으니 밤하늘의 별이 상대적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다. 만물의 진리는 우주만물 속 어디에나 다 베어있다. 하지만 우리가 탐욕스럽고 분노하고 어리석어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홍수, 가뭄, 태풍, 지진 등 자연재해가 있을 때 인간은 하늘을 원망할 것인가? 아니면 하늘에 제를 지낼 것인가?

사마천이 사기(史記) ‘백이열전’에서 청빈하고 착했던 공자의 제자인 ‘안연’은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극악무도하고 온갖 나쁜 짓을 다한 ‘도척’은 천수를 누리는 것이 너무 약이 올라 ‘천도시야비야(天道是耶非耶)’ ‘하늘의 도(道)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라고 하늘을 원망했다.

도척은 전생에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선업의 복을 이생에서 누리는 것이고, 안연은 전생에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악업의 과보를 이생에서 받는 것이다. 제 아무리 도를 깨쳤다 해도 전생의 업보는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도척이 전생의 복덕을 이생에서 모두 소진하고, 이생에서 악업을 쌓아왔다면 내생이 심히 걱정된다. 반면에 전생에서 지은 악업의 댓가를 이생에서 모두 치루고 참회한 안연의 내생은 밝을 것이다.

이젠 ‘천도유야무야(天道有耶無耶)’ ‘하늘의 도(道)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세상만물은 그저 여여(如如)할 뿐인데 하늘의 도(道)가 따로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하늘의 이치를 옳고 그름으로 분별할 수 있을까?

분별하지 않는 것이 깨달음의 방편인데 지능지수가 높을수록 더욱 더 분별심만 커져가고 언어 자체가 사물과 이치의 분별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이다 보니 깨달음을 언어로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묵언정진이 좋은 방편이다.

있고 없음, 옳고 그름, 착하고 악함,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 증오와 사랑… 세간법과 출세간법, 유위와 무위… 이 모든 양변을 완전히 떠난 중도의 자리가 무념, 무상의 깨달음의 자리이다. 진리는 세상만물에 평등하게 베어있는 것이니 인간만을 따로 특별대우해 주진 않는다.

청산이 말을 하더냐?

ㅇ 21c부여신문

박 철 신
충남의사협회 부의장
부여현대내과 원장
21세기 부여신문 독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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