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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아침] 백제의 신목(神木) 은행나무
[목요아침] 백제의 신목(神木) 은행나무
  • 이존길
  • 승인 2015.10.2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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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성태산 줄기 은산 새재고개 독수리와 같다고 하여 추령봉(일명 ‘충령봉’)이라 하는 산봉에 백제 때 왕이 가뭄인 든 해 올라가 기우제를 지냈다. 또한 백제가 망할무렵 의자왕의 종제 도천군(道泉君, 660년)이 국정에 실정하는 왕을 보고 국운이 기울어져감에 한탄하며 이곳 추령봉에 올라 국운을 기원했다.

추령봉 서남쪽 계곡에는 사슴이 물 먹는 형국의 지형이라하여 녹간(鹿磵)이라 하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 중앙에는 마을을 감싸고 있는 듯 웅장하게 서 있는 한 그루의 은행(銀杏)나무가 있다. 높이 약 40m, 둘레 약 9m의 이 은행나무는 은행나무 가지로 인해 주변 그늘진 땅이 논 세마지기가 된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320호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백제 26대 성왕(聖王, 845년) 16년 봄 공주에서 부여로 도읍을 천도할 때 조정 좌평 맹씨(孟氏)가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을에서는 신목(神木)으로 토속신(土俗神)으로 섬기며 매년 음력 정초에 마을사람 모두가 정결하고 엄숙하게 행단제(杏壇祭)를 마을 대행사로 지내고 있고, 음력 7월 7일에는 은행나무 주변의 제초작업과 청소를 하며 수호되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이를 알려주는 영험함이 있다고 한다. 백제와 신라, 고려 등 나라가 망할 때에는 칡넝쿨이 은행나무를 감았으며, 고려 시대 숭각사 주지가 암자를 증축할 때 사용하려고 큰 가지를 베려다가 급사를 당하는 변이 생겼으며, 숭각사도 망하여서 지금은 절터만 전해지고 있다.

동학난(1894년) 때에는 동편 가지가 부러지기도 했으며, 마을에서 기르는 소가 모두 병이 들어 사람에게 전염병이 돌았으나 이 마을은 화를 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행단제 전수자 이수복 등 홍산향교 유림들에 의하면 은행나무의 행단제를 지내게 된 계기는 ‘옛날 이 마을의 한 노인이 잠을 자는데 머리가 둘 달린 악귀가 마을에 침범하자 은행나무 동공에서 백발의 신령이 나타나 짚고 있던 지팡이로 악귀의 머리를 내려치자 악귀가 겁을 먹고 달아났다. 그러자 신령이 이제 마을에는 재앙이 없을 것이라고 하며 동공으로 사라지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또 고려가 망할무렵 고려 문하시중 이성계가 만수산 무량사 태조암에서 산신기도를 하는데 계룡산 등 유명한 산신령들이 은행나무의 목신을 찾아가 아미산에서 산신회의를 하며 다음 나라는 이성계에게 맡기자고 합의를 한 후 이성계가 조선의 나라를 개국하였다.’고 전하고 있어 은행나무에 대한 신격화로 행단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이러한 영험한 은행나무를 백제의 신목으로 더욱 받들고 있고 마을에 재앙이 없고 평화를 누리고 있으며 더욱이 해충도 없는 신목으로 백제의 문화유산 나무라고 추앙받고 있다.

ㄴ 21c부여신문


三亭 이 존 길
전 부여군재향경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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