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제가 마음이 조급해져서 그러는데 어떻게 제 마음을 잘 다스릴 방법이 없을까요?”
세계적으로 경제가 안 좋다 보니 최근에는 취업의 문도 턱 없이 좁아지고 있다. 그 탓인지 해마다 고시나 공무원시험처럼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아마 질문한 청년처럼 몇 년째 더 나은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험 공부에 매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좋은 소식은 없었나요?”
“2차 시험에서 아깝게 떨어진 적도 있고, 면접에서 떨어진 적도 있어요. 그러니까 더 아쉽고 미련이 남아서요.”
“지금도 공부하고 있나요?”
“네, 올해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럼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두세요.”
내가 딱 잘라 말하자 이야기를 듣던 청년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음을 다스릴 방법을 묻는 사람에게 시험을 올해까지만 치르고 내년부터는 포기하라니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단 충격요법을 주었으니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보자.
“행정고시에 합격하면 직업이 안정적인가요, 불안정한가요?”
“안정적입니다.”
“그럼 이익이 많다는 뜻이겠군요.”
“예.”
“이익이 많은 걸 얻으려면 노력이 그만큼 있어야 하고, 또 그만큼 모험이 있어야 하겠죠. 안 그러겠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권을 사거나 경마장에서 마권을 사는 것에 비유해 보자. 복권을 사는 심리는 누구나 당첨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권이 당첨되면 돈도 많이 벌지만 반대로 떨어질 확률도 높다. 당첨되는 확률보다는 떨어질 확률이 훨씬 높다. 일종의 모험이다. 그만큼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 것이다.
행정고시 시험도 마찬가지 이치로 볼 수 있다. 자신이 합격을 목표로 세웠다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남들 놀 때 안 놀고 남들 잘 때 나는 안 자고 공부한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고시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남들보다 더 독하게 마음을 단단히 세우고 공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청년처럼 4년째 수험생활이 계속되면 처음에 마음먹었던 엄격함은 사라지기 쉽다. 결심이야 여전하지만 실제로 공부를 할 때는 머릿속이 복잡해서 하기 싫으면 공부를 안 하게 되고 남이 놀 때는 같이 따라 놀게 된다. 자꾸 이렇게 내 습관이 극복을 못 하더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만두는 게 낫다. 이미 아까운 시간을 4년이나 보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보낼 필요가 있을까? 그러니 올해까지만 해보고 그만두라는 얘기다. 미련을 남겨서 두 번 다시 하지 말고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단단히 마음을 먹으라는 것이다.
‘이게 마지막이다. 안 되면 이제 그만이다.’ 이렇게 목표를 세우고 남은 올해는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했는데도 결과가 기대와 다르게 안 좋게 나왔다면 그때는 두 손을 탈탈 털어버려라.
그렇다고 절망하고 좌절에 빠지거나 패배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젊은 시절 내가 세운 목표를 위해 5년 동안 정말 최선을 다 했다면 그 시간은 그냥 허비한 게 아니다. 행정고시 공부를 5년 동안 했다는 것마저도 내 인생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과를 좋게 받아들이고 털고서 다른 일을 시작하면 된다.
행정고시는 물론이고 공무원 시험부터 교사를 선발하는 임용고시도 마찬가지이다. 또 언론사 취업을 위한 입사준비시험도 언론고시라고들 한다지요? 어떤 형식의 시험이든 자격을 갖춘 사람을 선발하는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한 번 도전할 때 온 힘을 들여라. 그래서 결과가 기대한 것에 미치지 못한다면 한 번의 도전으로 그만두는 게 가장 좋지만, 미련이 남고 조금 아쉬우니까 두 번까지는 계속 도전해 봐라. 하지만 그 이상 계속 무모한 도전을 계속하는 일은 낭비다.”
내가 될 때까지, 합격할 때까지 계속 시험공부를 계속할 거라고 굳게 마음먹을 만큼 그 일은 가치가 없다. 해마다 새로 졸업한 졸업생부터 새로운 인력이 시험 준비를 위해서 뛰어드는데 뽑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정해진 숫자의 인원이 줄어들면 줄어들지 나를 위해서 늘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면 경쟁자만 늘어나니 시간이 흐를수록 합격할 가능성은 더욱 떨어진다.
이 단계에서는 마음먹고 안 먹고의 문제가 아니다. 갈수록 합격이 어려워지니 공부하는 강도가 점점 더 세져야 하는데 사람의 의지가 그다지 강하지 못한다. 나 역시 어릴 때를 되돌아보면 공부라는 게 처음 마음먹음과는 달리 두세 번 반복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생각과 의지가 달라서 아무리 결심을 해도 그게 잘 안 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공부’가 직업이 된다.
이 청년도 자칫 잘못하면 공부가 직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쉽게 말해 고시중독증이 생긴다는 말이다. 고시중독증은 고치기 어렵다. 우리가 중독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말은 마약이나 알코올 같은 물질만 있는 게 아니다. 정신적 중독도 그만큼 위험하다. 그러니 고시 중독증이 생기기 전에 그만둬야 한다.
시험공부를 그만둘 때는 아주 가볍고 기쁘게 그만둬라. 내가 청춘의 한 시절 하고 싶은 공부 실컷 해봤다, 원 없이 해봤다, 이제 다른 걸 해봐도 좋을 때다. 이렇게 ‘탁’ 놓아 버려야 한다.
반대로 시험에서 떨어졌으니 내가 실패했다, 고시에서 떨어졌다, 5년 동안 내 청춘만 버렸다. 이렇게 지나온 내 인생을 상처로 남기면 안 된다.
“그러니, 올해만 하고 그만두세요. 그렇게 하시겠어요?”
“예.”
“입으로 대답만 하지 마시고 지금 확실하게 결심을 하세요.”
“네, 스님 말씀처럼 올해까지 마지막으로 준비하고 떨어지면 완전히 그만두겠습니다.”
올해만 하고 그만둔다고 마음먹으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온 힘을 기울여라. 그리고 그만둘 때는 지금까지 고군분투 공부한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마라. 귀한 경험을 쌓았다고 여기고 아주 가볍게 머리의 짐을 내려놓고서 다른 일을 찾아 하면 된다. 세상에는 시험 말고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니...
![]() 법륜스님 평화재단 이사장 수행공동체 정토회 지도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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