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단상] 이름을 불러주세요!
[교육단상] 이름을 불러주세요!
  • 김애리
  • 승인 2012.06.06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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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것. 내 것이지만 다른 모든 이들의 것이기도 한 것. 내 것이지만 다른 이들이 불러줄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가지는 것. 바로 이름이다.

이름은 본래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을 일컫는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보다 더 많은 의미를 이름은 담고 있다. 오늘은 이 이름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

나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의 고유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는 말과 같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다정히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는 비록 그 행위는 단순할지언정 거기에 담긴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이름의 주인과 다른 사람을 구별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이름의 주인을 고유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이름의 주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이름의 주인과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만나고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에는 이렇게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학교에서도 이름은 관계 형성의 기준이 될 때가 많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묻는다. “선생님, 제 이름이 뭘까요?” “제 이름 아세요?” 내가 자신의 이름을 안다고 했을 때 아이들은 행복한 웃음을 보인다. 그 아이 역시 이름을 아는 것을 관계 형성의 기준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적은 수의 교사가 많은 수의 학생을 만나야 하는 학교 현장에서 하나의 인간 대 하나의 인간으로서 학생과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수업 시간에는 그러한 관계 맺기가 더욱 힘들다. 어쩔 수 없이 한 명의 교사와 삼십 명의 학생 간의 관계를 맺는 일이 많다. 이 과정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학생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일은 학교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업무를 중시 여기는 회사를 포함해서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생길 수 있는 문제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날 때 언제나 하나의 인간 대 하나의 인간으로 만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만약 그 만남이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 아니라 인간 대 단체, 인간 대 업무와의 만남이라면 소외감은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긴 소외감은 개인에게 큰 상처를 준다. 나아가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를 야기한다.

나는 그래서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을 지향한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그 사람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처한 현실상 그런 만남을 형성하고 유지·발전해 나가는 일이 힘들 때가 많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많은 사람과 만날 지라도,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는 그 순간만큼은 일 대 다의 관계가 아닌, 일 대 일의 관계가 형성된다.

이름을 부르는 그 순간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고유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소외감은 인간 대 단체의 관계 속에서, 인간 대 업무 처리자의 관계 속에서 생기는 것이지. 인간 대 인간의 관계 속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이제부터라도 이름을 불러주자. 친구를 대할 때에도, 회사 동료를 대할 때에도 다정한 목소리로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자. 자녀를 대할 때에도, 학생을 대할 때에도, 회사 직원을 대할 때에도 다정한 목소리로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자.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자.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삼십 명 중 한 명이었던 학생이 이름을 불러준 후에는 한 사람의 고유한 인간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시인 김춘수도 <꽃>이라는 시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고...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될 그 사람들을 위해 오늘부터 다정한 목소리로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자.

ㄴㄴ 21c부여신문

김 애 리
부여여자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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