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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늘 두렵고 불안한 마음입니다
[특별기고] 늘 두렵고 불안한 마음입니다
  • 법륜스님
  • 승인 2012.06.28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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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두려움이 많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조금 늦게 와도 불안하고, 택시 기사 아저씨 얼굴이 좀 험상궂어도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어젯밤에는 작은 아이가 자다가 숨이 막힌다 했는데, 코가 좀 막혀서 그런 것이었는데도 자꾸 불안한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들은 모두 제가 두렵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망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도무지 떨쳐지지가 않습니다. 사는 데 불편합니다.

우리가 늘 괴롭다 괴롭다 하지만 그 괴로움을 가만히 연구하고 분석해 보면 사실 괴로움이라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내 것’이라고 말하지만 과연 왜 내 것인가를 분석하고 탐구해 보면 사실은 내 것이라 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

질문자가 원인 모를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도 그런 환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꿈 속에서 강도를 만나 두려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이치를 알게 되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존재에는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고 선도 없고 악도 없고 잘생긴 것도 없고 못생긴 것도 없고 다만 그것일 뿐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 두려워할 것도 없고 두려워할 일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치를 알면서도 막상 경계에 부딪히면 여전히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이 단계에서 공부해야 할 것은 다만 알아차리는 것뿐입니다. 두려움이 일어날 때 ‘아, 두려움이 일어나구나’ 이렇게 알아차리면 됩니다. 두려움이 일어날 때 두려워해서 도망가지 말고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공포가 일어나는구나. 겁이 나는구나’ 이렇게 다만 알아차립니다. 이런 감정은 다 실제 하는 것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영 때문에 일어나는 겁니다.

뱀을 보고 두려운 마음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뱀이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게 아닙니다. 뱀은 다만 그렇게 생겼을 뿐입니다. 그걸 보고 내가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래서 장난감 뱀만 보고도 깜짝 놀라게 되는 겁니다. 뱀이 나에게 어떤 위해가 되기 때문에 놀라고 두려운 게 아니라 내가 마음 속에 두려운 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두려운 거란 말이에요. 이런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무의식 세계에 잠재되어 있다, 오랫동안 습관화되어 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계에 부딪히면 나도 모르게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 버리는 겁니다. 그럴 때 알아차려야 합니다. 알아차림이 바로 안 되어 놓쳐도, 지나놓고라도 알아차려야 됩니다. 이렇게 자꾸 그 순간에 알아차리도록 정진해야 됩니다.

우리가 명상할 때 호흡을 관하는 것은 호흡이 들어갈 때 들어가는 줄 알고 나올 때 나오는 줄 아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으로는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정좌하고 호흡을 관찰해 보면 호흡 관찰이 잘 되지 않습니다. 숨 쉬는 걸 안다는 것하고 실제로 숨 쉬는 걸 알아차리는 것하고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고 산만합니다. 현재에 깨어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조금 정신을 차리면 호흡이 관찰되다가도 또 금방 놓쳐버립니다. 망상을 피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늘 깨어 있지 못한 삶의 습관 때문에 잠시 깨어 있다가도 금방 또 원래 습관대로 가버려서 알아차림을 놓치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오랫동안 무지의 상태에서 이미 두려워하는 습관이 몸과 마음에 배어버렸습니다. 마치 담배 피우는 사람이 담배가 나쁘다는 걸 알았는데도 담배 냄새를 맡으면 그냥 피우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 버리듯이, 두려워하는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그런 상태를 알아차리면서 ‘내가 또 습관적으로 두려워하구나. 두려움이 있어서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습관적으로 두려워하구나’ 이렇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근심과 걱정이라는 것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가지고 마치 현재에 일어나는 일인 양 착각을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겁니다. 사람들은 늘 이미 지나가 버린 옛일을 기억하면서 그 기억 속에 살거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끌어와서 현재의 영상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숨이 들어갈 때는 들어갈 때 깨어 있고 나올 때는 나올 때 깨어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사로잡히면 괴로움이 생기고 미래에 사로잡히면 근심과 걱정이 생깁니다.

깨어 있는 훈련을 하면 두려움이 일어날 때 ‘어, 이건 내가 지금 경계에 사로잡히는 거야’ 이렇게 자각하면 됩니다. 놓치고 지나가 버리면 ‘아이고, 내가 놓쳤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다시는 놓치지 말아야지 하며 정진하면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상황이 일어날 때 딱 깨어 있으면, 그때 바로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지요. 그렇게 반복된 훈련이 필요합니다. 연습을 많이 하셔야 됩니다. 이것이 수행입니다.

ㅇㅇ 21c부여신문

법륜스님
평화재단 이사장
수행공동체 정토회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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