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용 회장은 흩어져있는 향우들에게 부여인의 자긍심과 군민회 참여정신을 가슴에 심어주며 향우들이 참여의 아름다움을 실천하게 했다.
이는 바로 이 회장 특유의 겸손과 더불어 본인을 낮추고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순순한 미덕에서 우러나오는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필자는 지난 8년여 동안 이만용 회장을 뵐 때마다 항상 곁에서 유심히 지켜보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이 회장의 사교성과 사람을 대하는 그 모습에 필자가 푹 빠졌다고나 할까?……
이만용 회장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든 향우들을 늘 자신의 앞에 또 자신의 위에 세웠다. 먼저 인사하고 먼저 손을 내밀며 밝은 웃음과 따뜻한 인사로 향우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간결하면서도 절제있는 사교성에 필자는 항상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만용 회장의 직업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또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았을뿐더러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 이유는 바로 아버지같이 포근하면서도 존경심을 갖게하는 그 자태에 매료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면 어떤 날에는 논산역으로 가 이 회장과 산악인 엄홍길 대장을 어떤 날에는 공주로 가 마중을 나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회장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검소한 모습으로 향우들에게 기억되고, 항상 공정하면서도 객관적인 신중한 판단으로 흐트러짐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항상 향우들과 마주하면서도 존경을 받고 있는 부여의 아버지였지 않았나? 하고 필자는 생각해 본다.
어쩌면 이 회장은 일생 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한 번 해본 기억이 있는지? 한 번 묻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
수년 전 문득 필자에게 담배를 찾던 이만용 회장의 표정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또 화가 치밀어도 강한 인내심과 순간 감정을 콘트롤하는 조절 능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참으로 궁금했던 기억이 있다.
바로 일생을 남을 위해 희생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어떠한 순간에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항상 변함없는 그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만용 회장은 부여출신으로 가장 두터운 인맥을 지닌 ‘마당발’이 아닌가 필자는 생각해 본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영어회화를 편안하게 구사하는 노신사의 모습은 8년 전 필자가 처음 이 회장을 뵈었을 때와 며칠 전 뵈었을 때와 변함없는 ‘영원한 부여인의 아버지’로서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황 규 산 21세기 부여신문 발행인 겸 대표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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