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영원한 扶餘人④
[발행인칼럼] 영원한 扶餘人④
  • 황규산 기자
  • 승인 2012.09.13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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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갑병 회장은 그 어느 누구 못지않게 부여인으로서 자긍심이 강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것이다. 앞서 이만용 회장이 ‘영원한 부여인의 아버지’라고 필자가 소개했다면 천 회장은 ‘영원한 부여맨’이라 할 수 있다.

천 회장은 경기도청과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공직생활을 했으면서도 기업의 경영인으로 성공한 입지적 인물이다. 공직생활 도중 과감히 직장을 옮길때도 천 회장은 고향기업인 삼부토건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쩌면 당연하고 운명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천 회장의 삼부행 결단은 당시 수자원공사 사장의 적극적인 권유와 또 천 회장의 고향사랑과 바로 한국건설업의 산증인인 숙재 조정구 회장과 조남욱 회장에 대한 강한 존경심이 어우러진 결과라 생각된다.

필자가 10여년 전에 처음 뵈었을 때도, 또 얼마 전 뵈었을 때도 천갑병 회장의 모습은 늘 변함없는 반듯한 영국신사의 모습이었다.

천 회장은 재경 석성면민회장과 부여 중·고등학교 총동창회장, 재경 동문회장을 6년 이상이나 이끌어오면서 향우들과 후배들에게 영원한 선배의 모습을 남겼다. 특히 천 회장은 심상기 회장과 더불어 그 누구보다 부여출신 인재들을 육성하고 또 부여출신 인사들을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데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왔다.

삼부그룹의 조남욱 회장의 마음을 가장 정확히 읽으면서 조 회장의 경영철학과 효심을 경영에 접목시키면서 조남욱 회장이 보이지 않는 부여출신 인맥을 지원하는 가교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또 삼부건설공업(주) 대표이사 사장으로서 탁월한 경영 능력을 보여주면서 재계에서도 보기드물게 고희를 넘긴 CEO로 큰 화제를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천 회장은 수년 전 부여지역에서 최초로 석성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훌륭히 치뤄냈다. 부여에서 가장 오래된 석성초등학교 출신으로서 그 명예를 지키며 모교를 빛내기도 했다.

천 회장이 총동창회장 시절 서울에서 부여로, 때로는 대전으로 한 달에 수차례씩 오고갔던 일화는 지금도 동문들 사이에 회자가 되고 있다. 바로 고등학교 강당 신축과 급식실 시설개선, 또 부여출신 교육장을 배출하기위해 천 회장이 부여와 모교인 부여 중·고교를 대표해 목소리를 높이며 그토록 갈망하던 부여출신 아니 모교출신 교육장을 처음으로 배출했을때 당시 천 회장의 얼굴을 필자는 지금 이순간에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조유연 부여교육장을 배출하면서 부여교육이 발전하고 부여인의 긍지가 살아났으니 이는 모두 숨은 공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천 회장은 고향에 올 때면 가장 먼저 고향 석성의 봉두정을 들러 노인회관에서 인사를 올리는 습관을 20여년 넘게 실천하고 있다. 75세인 천 회장은 본인의 나이를 잊은 듯 몸에 베인 그의 효 실천은 모두가 부모님의 영향과 삼부 조남욱 회장과 심상기 회장에게로부터 영향을 받은 부여인의 얼굴이라 생각된다.

천 회장은 간혹 행사에서 축사를 할때도 ‘儉而不陋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의 내용을 자주 인용했다. 그만큼 천 회장의 가슴엔 1400여년 전 화려했던 해상강국 백제의 혼과 부여인의 자긍심으로 가득차 있는 부여인의 명예를 지키는 ‘영원한 부여맨’ 일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ff 21c부여신문

황 규 산
21세기 부여신문
발행인 겸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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